이희영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부모의 자격은 누가 주는 거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그 자격은 아이들이 주는 것이더라고요.
글ㆍ사진 성소영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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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118쪽)”

만약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을까. 사춘기 시절, 남몰래 해봤음직한 상상이 소설로 탄생했다. 이희영 작가가 펴낸 『페인트』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미래 사회가 펼쳐진다. 

지금보다 저출산이 더욱 심화되자 국가는 육아를 부담스러워하는 국민을 대신해 아이를 키우기 위한 양육공동체 NC센터를 설립한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해 NC센터로 들어온 아이들은 13세가 되면 직접 면접을 본 후 마음에 드는 부모를 고를 수 있다. 각기 다른 조건을 내세우며 부모 면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꿈은, 좋은 부모를 만나 평범한 삶을 사는 것. 과연 아이들은 어떤 부모를 선택하게 될까. 

제1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페인트』는 ‘아이들이 부모를 면접 한다’는 당찬 설정으로 청소년과 학부모 독자를 모두 사로잡으며 판매 부수 10만 부를 돌파했다.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관계인 가족. 그 안에서도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의 사이를 비트는 상상을 통해 소설은 독자에게 묻는다. 좋은 부모란 무엇이고, 좋은 가족은 우리 삶의 어떤 의미냐고.



나는 자격 있는 부모인가

‘부모를 면접한다’는 설정이 재밌어요. 어떻게 기획하신 건가요? 

제가 2018년 6월부터 『페인트』를 쓰기 시작했는데, 같은 해 5월에 가정의 달 특집으로 게재된 ‘학대 받는 아이들’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서 아동학대 사건은 늘 가슴 아프게 지켜보는데 그런 기사에는 항상 고정적인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이래서 부모 자격 있는 사람만 아이를 키워야 돼’라는 거죠. 그 댓글을 보면서 ‘부모의 자격은 누가 주는 거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그 자격은 아이들이 주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구체적인 기획을 하고, 2주 만에 초고를 완성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빨리 완성된 소설이네요. 

저는 초고를 빨리 쓰고 퇴고를 여러 번 하는 편이거든요. 6월에 쓰기 시작해서 창비 청소년문학상 마감인 9월 마지막 주까지 계속 다시 보면서 고쳤던 거 같아요. 정말 큰 기대를 안 하고 투고했었어요. 

막상 수상 소식을 들으니 어땠나요. 

사실 작품을 응모하고도 잊어버렸었거든요. 그만큼 수상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창비입니다”라고 하는데 ‘창비가 나한테 전화를 왜 했지? 이벤트 신청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수상했다고 해서 너무 놀랐죠.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들이 워낙 쟁쟁하잖아요. 좋은 작품인 건 물론이고,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이 받았던 상이기 때문에 저는 그저 독자로 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도 꿈같아요. 

평소에도 부모의 자격에 대해 종종 생각하세요? 

그렇죠. 살면서 연습을 절대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육아잖아요. 저희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육아 관련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이론과 실전에는 늘 차이가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집필 직전에 기사를 보고 첫 번째로 든 생각이 ‘나는 과연 자격 있는 부모인가?’였어요. 깊이 생각해봤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저희 아들이 소설의 주인공 ‘제누301’처럼 제게 면접 점수로 15점을 준대도 저는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해요. 

아마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 것 같아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가면 그 마음을 느끼죠. 보통 학생들은 『페인트』를 읽고 ‘재밌다,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학부모님들은 ‘나는 몇 점짜리 부모지?’라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몇 점짜리 부모인 것 같았냐고 여쭤보면 50점 이상을 주는 분이 안 계세요. 그런데 신기한 건 아이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선 이 책을 읽고 ‘우리 엄마 아빠는 몇 점이지?’라는 생각을 했다는 아이들이 거의 없고요. 오히려 부모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엄마 아빠도 부모가 된 게 처음이구나. 엄마 아빠도 나를 선택하지 못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면서요. 강연을 가면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 배울 때가 많죠. 

철저히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였어요. 쓰면서 어린 아이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무리하게 요즘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진 않았어요. 2020년을 사는 아이들과 저는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억지로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하는 건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주인공 제누301을 제 과거의 모습에 빗대 보았죠. ‘내가 십대일 땐 어떤 부모를 원했지?’ 생각하며 과거의 제 목소리로 소설을 쓴 거예요. 그래서 힘든 점도 있었어요. 현실에서는 아이의 엄마인데 소설 속 자아는 10대 아이였으니까요. ‘나는 이런 부모를 원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자아가 ‘그럼 너는 그런 부모니?’라고 묻더라고요.(웃음)

‘페인트’라는 제목이 독특해요. ‘Parents Interview(부모 면접)’의 줄임말로 만든 제목인데요. 

저는 원래 제목을 생각하지 않고 내용을 먼저 쓰는 편이거든요. 소설이 중간쯤 완성됐을 때 문득 ‘Parents Interview’를 줄여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NC센터가 있는 미래의 세대에서도 줄임말을 쓸 것 같았거든요. 특히 10대들은 중요한 말일수록 줄여서 은어로 사용하잖아요. 그에 착안해 ‘페인트’라고 바꿔봤죠. 중의적인 표현으로 그 안에 담긴 의미도 잘 표현이 됐다고 생각해요. 모든 가족은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는데, 그 색깔들이 서로에게 물을 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탁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없는 점이 독특했어요. ‘박’ ‘최’ ‘제누301’ 등 호칭은 있지만, 고유명사로서의 이름은 없는데 유일하게 주인공 제누301을 입양하기 위해 찾아 온 ‘서하나’와 ‘이해오름’만 이름이 있었어요. 

클리셰이긴 하지만, SF는 차갑고 기계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그 느낌을 살려서 등장인물을 최대한 건조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NC센터라는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박’ ‘최’ 등 성을 이름처럼 부르거나 ‘제누301’ ‘아키505’처럼 독특한 호칭을 만들었죠. 그 건조함을 순화시키는 게 ‘하나’와 ‘해오름’이었어요. 어른과 아이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가장 한국적인 한글 이름을 지어줬던 거예요. 아이처럼 철이 없으면서도 어른인 두 사람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생부, 생모가 NC센터를 찾아오는 장면도 인상적이더라고요. 까다롭게 부모를 심사하는 NC센터에서도 생부, 생모에게는 친자확인만 거친 후 아이를 바로 보내줬어요. 

청소년 대상 강연을 가면, 중학생 또래 아이들이 제일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에요.(웃음) 아무리 낳아준 부모라고 해도 무작정 아이를 보내면 어떡하냐고 화를 내더라고요. 사실 우리 사회가 혈연을 중요시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잖아요.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아도, 단지 친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제도적으로 둘 사이를 떨어뜨려놓을 수 없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을 비판하고 싶었어요. 

소설에는 여러 유형의 부모가 등장해요. 그중에서도 ‘하나’의 엄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모의 모습이었어요.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지만 그게 정작 아이를 위한 건 아니었는데요. 

특히 한국에 유독 그런 부모가 많은 것 같아요. 말로는 “너를 위한 거야”라고 하지만 사실은 본인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아이로 대리만족 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봐요. 사실 저조차도 그런 면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수학을 정말 싫어했거든요. 숫자만 나와도 두려워서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수학 공부를 강요하고 있더라고요. 꼭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나올 정도로 욕망이 큰 부모들만 아이를 자신의 틀에 가두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바람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경우가 무척 많죠. ‘하나’ 엄마의 이야기는 사실 저의 반성문이었어요. 

쓰기 어려웠던 장면이 있나요? 

‘박’이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연민을 털어놓는 장면을 쓸 때 울컥했어요. 흔히 작가가 소설 속에 너무 들어가면 작품을 망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래서 작품과 거리를 두고 글을 쓰려고 항상 노력하는데, 박의 이야기를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과할 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

강연으로 독자들을 많이 만나시잖아요. 독자들이 들려준 말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가끔 제가 강연에서 “이 책 읽고 부모님 점수 매겨본 친구 있나요?”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럼 한두 명 정도 손을 들거든요. 몇 점을 줬냐고 물으면 대개 90점 이상 줬다고 해요. 그런데 한 친구가 강연 끝나고 사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작가님, 그렇게 공개적으로 물어보면 아무도 얘기 안 할 거예요.” 그 순간 깨달음이 있었어요. 요즘 마음 아픈 아동학대 사건이 특히 많이 보도되는데, 얼핏 생각하면 ‘아이들은 왜 학대를 당하면서도 주변에 말하지 않았을까’ 싶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에게 진짜 상처받은 것들은 말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부모가 꼭 고쳐줬으면 하는 점이 있어도 겉으로 그걸 표현하지 않죠. 하지만 부모들은 여럿이 모이면 “우리 애는 이런 게 문제야. 이것 좀 고쳤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잖아요. 그때 그 아이의 말을 듣고 뜨끔했어요. 이제 공개적으로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요. 

청소년 강연과 학부모 강연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를 텐데요. 각각 빼놓지 않고 전하는 말이 있나요?

저는 학부모 강연에 가서는 아이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청소년 강연에 가서는 부모님들께서 주로 하시는 말씀을 들려 줘요. 보통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굉장히 작은 점수를 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막상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돈 많은 부모 필요 없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엄마 아빠를 택하겠다”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그걸 학부모 강연에서 얘기해드리면 위안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반대로 부모님들의 마음을 전하죠. 학부모님들은 늘 아이들에게 잘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고, 본인은 좋은 부모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 얘기를 하면 아이들이 놀라는 것 같아요. “우리 엄마아빠는 그 정도로 부족하지 않은데”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반대로 이야기를 전하면 강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져요.(웃음) 여자 친구들은 종종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항상 엄마에게만 짜증을 부렸던 것 같아 미안하다고요. 

하나와 제누301의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엄마 역시 나로부터 독립이 필요했다(180쪽)’고 했는데, 작가님도 자녀와 나를 분리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시나요? 

거리를 최대한 많이 두려고 노력하죠.(웃음)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글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요즘은 남편과 그런 얘기도 자주 해요. 우리 아들이 며느리를 데려올지, 사위를 데려올지, 아니면 평생 혼자 살지 모르는 거라고요.(웃음) 그 친구가 성인이 돼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삶이 아니라,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니까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으세요? 

제일 어려운 질문인데요. 정말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요. 친구 사이에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니까요. 아주 가깝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는 인간관계가 친구 사이인 것 같아요. 그런데 가족은 종종 그 선을 넘잖아요. 타인에게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도 아이에게는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하기도 하고요. 저는 아이와 무척 친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꼭 지키려고 하는 육아 원칙이 있으세요?

딱 하나 있어요. 잘 지켜지진 않지만, 제가 잘못했을 때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 부모님께 그런 사과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저희 세대 어른들은 대부분 그러셨잖아요. 설령 부모가 잘못한 일이어도, 아이가 언짢은 기색을 내보이면 “어디 어른한테 대드냐”고 혼을 내곤 하셨으니까요.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요.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꼭 말하려 노력해요. 제가 먼저 잘못했다고 하면, 아이는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더라고요. 

한 인터뷰에서 아이가 작가님 책을 절대 안 읽는다고 하신 이야기를 봤어요.(웃음)

제가 글을 쓸 땐 워낙 예민해지니까 제 책들은 저희 집 금서예요.(웃음) 그런데 요즘은 종종 봐요. 『페인트』도 읽었는데 보면서 피식피식 웃더라고요. 책에는 좋은 부모가 갖춰야할 것들만 다 써놨는데, 정작 저는 잔소리하고 그러니까요. 실제 엄마와, 엄마가 쓴 소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읽으면서 “엄마는 내가 제누301처럼 똑똑했으면 좋겠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내 유년은 회색이었다

글을 늦게 쓰기 시작하셨다고요. 

서른다섯 살에 처음 글을 썼어요. 아이 낳고 산후우울증이 있었거든요. 계속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보다가 우울감이 정말 심해질 땐, 아이를 그냥 베란다에 두고 나오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산후우울증은 정말 무서운 게, 우울감과 죄책감이 함께 밀려온다는 거예요. 이걸 어디에 토해내고 싶은데, 육아 때문에 우울하다고 말하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집 근처에 문예창작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고, 그냥 복잡하고 어지러운 감정을 토해내고 싶었죠. 

돌파구로 글쓰기를 택했던 이유가 궁금해요. 

글은 접근이 멀면서도 가깝잖아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 같은데, 물리적인 접근은 또 무척 쉬워요. 컴퓨터만 있으면 쓸 수 있으니까요. 그림 같은 건 시작하려면 준비물이 굉장히 많잖아요. 글은 그렇지 않다는 게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글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작가의 꿈이 있었거나, 문학을 전공했다면 감히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까요. 

그래서 저는 강연에 가면 이 얘기를 아이들에게 꼭 해줘요. 어떤 꿈을 이루려면, 어릴 때부터 탄탄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고요. 저희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한국문단은 정말 깨끗하다”고 말하곤 해요. 제가 상을 받고, 작가가 된 걸 보면 심사가 아주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거라고요.(웃음)

‘좀 더 일찍 작가가 됐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하세요? 

가까운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내가 20대 때부터 글을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요. 그런데 친구가 “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생활이 안정됐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던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저는 20대 작가 지망생 친구들에게 부채의식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재능이 없어서 작가가 되지 못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20대 때 글을 썼다면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글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저는 가정주부였고, 어쨌든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졌기 때문에 마음 편히 글을 쓸 수 있었어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작가가 되고 『페인트』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100% 운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나서, 작품을 잘 써서 그랬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아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이유가 뭔가요? 작가의 말에 ‘내 안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나에겐 글쓰기다.(224쪽)’라고 쓰셨는데요. 

우선 제가 철이 안 들었고요.(웃음) 저는 10대 때 제가 정말 지질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특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외모가 특출 났던 것도 아니라서 스스로한테 지질하다는 말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40대가 돼서 과거의 저를 돌아 보니, 그렇게 못나지만은 않았던 거예요. 나름대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나를 왜 그리 홀대했을까 싶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과거의 이희영에게 “너 그렇게 못나지 않았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의 말 첫 문장이 ‘내 유년은 회색이었다’였어요. 

아주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었거든요. 특히 아버지가 엄하고 가부장적이었어요. 여자도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의 말이 법이자 진리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셨죠.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으로 두려워하고, 억눌렸던 것들이 소설에 많이 녹아있을 거예요. 

먼 길을 돌아 작가가 된 게, 어린 시절의 영향도 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어릴 때 동화책을 읽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대화 속에서 그 말을 하신 건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글재주는 타고나야 하고, 선택받은 사람만 하는 거라는 게 무의식에 각인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아직도 제가 작가라는 게 실감이 안 나요. 사실 저희 아버지는 지금도 제가 작가라는 걸 모르세요.(웃음)

너무 좋아하실 텐데,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얘기하기가 좀 어색해요. 내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정장을 입고 고급스러운 파티에 참석한 느낌이거든요. 작가라는 게 어떤 면허나 자격증이라면, 그걸 땄다고 말하면 되겠지만 글을 쓰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작가는 독자에게서 잊히면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제가 소설을 쓰고 있고, 감사하게도 『페인트』가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모래성 같은 거죠. 저는 그냥 글쟁이라는 말이 편해요. 그래서 제가 작가라는 걸 아는 지인은 10명 남짓밖에 안 돼요. 한 번 얘기할 기회를 놓치니 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페인트』를 쓰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많이 치유됐을 것 같아요.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아마 저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그럴 거라 생각해요. 알게 모르게 자신의 상처를 글로 승화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상처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요즘도 매일 글을 쓰세요?

그럼요. 글도 근육이니까요. 운동하는 사람이 매일 운동을 하듯이 저도 매일 글을 써요.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겨우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가급적 매일 읽고 쓰는 걸 습관처럼 하려고 노력하죠. 보통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는 원고를 쓰는데요. 하루에 정해 놓은 분량을 웬만하면 다 채우고 일어나려고 해요. 그걸 안 지키면 하루를 허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독자들에게 『페인트』가 어떤 책이었으면 하나요?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읽으려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학부모님들을 만나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 부모일지 긴장하며 봤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렇다고 소설 속에 완벽한 부모의 상이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육아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부모도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이고, 아이들도 세상에 태어난 게 처음이니 모두가 서툴 수밖에 없죠. 때로는 삐걱거리는 게 정상이에요. 그러니 우리 모두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이며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해요. 

아마 『페인트』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소설이 될 텐데요.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펴낼 계획이에요.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으실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만약 NC센터의 아이들처럼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조건을 가장 중요하게 볼 것 같나요? 

음… 노른자 땅에 건물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농담이고요. 사실 강연을 가면, 아이들이 NC센터에 사는 아이들은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부모를 선택하려면 너무 머리가 아플 것 같은데, 지금의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나 다행이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아무리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고 해도 저희 부모님 외의 다른 사람은 생각이 나지 않아요. 



페인트
페인트
이희영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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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