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살아남은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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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의 성장을 그린 소설 『유원』, 경영과 관련된 단어를 정의하는 책 『나의 첫 경영어 수업』, 톨콩이 ‘압도적으로 사랑하는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유원』

백온유 저 | 창비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유원’은 주인공의 이름이에요. 유원은 열여덟 살의 소녀입니다.

“나는 미안해하며 눈을 떴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데요. 이 날은 12년 전에 죽은 유원의 언니의 생일이에요. 언니의 생일이 기일과 사흘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유원의 가족들은 생일만 챙기고 있어요. 언니의 생일을 맞아서 생전에 관계 깊었던 사람들이 유원의 집에 모이게 됩니다. 언니가 다니던 교회의 지인들, 유치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 그리고 저녁에는 ‘아저씨’라는 인물도 찾아옵니다. 

언니가 죽던 날, 유원은 언니와 단둘이 집에 있었어요. 그런데 집에 화재가 발생했고 빠져나가기에는 불길이 거세졌어요. 언니는 물에 적신 이불 안에 동생을 넣고 창문 밖으로 던졌습니다. 언니는 결국 죽게 됐고, 유원은 지나가던 아저씨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려서 생명을 구하게 돼요. 그 일 때문에 아저씨는 오른쪽 다리가 부서져서 장애를 갖게 됐고,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직장도 잃었고,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됩니다. ‘은정동 화재사건’, ‘11층에서 떨어진 이불 아기’ 등으로 이야기 되고요. 당시에 여섯 살이었던 유원을 기자들이 둘러싸고 인터뷰를 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얼굴이 노출됐어요. 유원의 어머니가 사진을 내려달라고 했지만 이미 캡쳐가 돼서 인터넷에 퍼진 뒤였습니다. 사람들이 남긴 댓글들을 보면 ‘너는 언니 몫까지 두 배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너도 남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라면 저 아저씨한테 전 재산을 다 주겠다’ 같은 것들이에요. 

유원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당시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친구들은 ‘쟤, 걔 아니야?’라고 반응하고, 어른들은 ‘그래도 잘 자랐구나’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언니 몫까지 잘 살아야 돼’라고 말하는데, 그러면서도 막상 유원이가 또래 아이들과 별다를 것 없이 까르르 웃기라도 하면 당황하는 거예요. 

이런 환경에 놓인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인지하면서 자랄까요? 자신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할까요? 그 이야기를 『유원』은 굉장히 세심하게 살피고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단호박의 선택

『나의 첫 경영어 수업』

유정식 저 | 부키



경영과 관련된 단어를 정의하는 책이에요. 미션, 전략, 혁신, 조직문화, 생산성 같은 단어들을 정의하는 작업을 하는데요. 유정식 저자는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여러 기업의 컨설팅을 맡았고 『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 같은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저자가 컨설팅을 하면서 보면, 의외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대요. 조직에서는 AI와 빅데이터 이야기를 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해야 된다는 등 거창한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정말 중요한 단어에 대한 생각을 안 하더라는 거예요. 그게 저자의 문제제기였던 거죠. 

머리말에 나오는 일화가 있는데요. 저자가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면서 면접을 보는데 첫 질문이 ‘자동차란 무엇입니까?’였대요. 자동차를 이동 수단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은 ‘어떻게 더 빠른 이동 수단으로 만들까’,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한 이동 수단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겠죠. 자동차를 ‘집이 아닌데 집처럼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 ‘내 공간’으로 정의내리는 사람들은 자동차라는 공간의 편안함을 더 중시하게 되겠죠. 저자도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경영의 본질이 바뀔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 머리말에서 이야기하는 게 ‘이것은 나의 정의다’라는 건데요. ‘기업에서 무언가를 정의내릴 때는 기업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 정의에 대해 얼마든지 딴지를 걸어도 좋고 오히려 딴지를 거는 것이 권장된다’고 이야기해요. 예를 들어서 ‘기업’에 대해서 정의를 하면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다’라는 게 가장 정언명령으로 많이 회자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고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기업은 고객 혹은 팬을 창조하는 조직이다’라고 바뀌고 있는 추세가 있어요.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다 보니까 ‘기업은 미션을 추구하는 조직이다’라고 많이 정의를 내린대요. 

이 책은 경영 일선에서 자주 쓰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벤치마킹’은 원래 ‘벤치마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토목 공사에서 강물의 높이를 정하는 기준점을 의미한데요. 벤치마킹을 그냥 ‘남의 것을 다 베껴다가 좋아 보이는 것들을 들여오는 것’으로 정의하는 곳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고 ‘이 업계 전체의 기준점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전체적인 면을 보는 곳에서는 벤치마킹의 정의가 또 달라지겠죠. 


톨콩(김하나)의 선택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저 | 문학동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추천사를 썼는데 이렇게 시작을 했어요. “‘정세랑, 하와이, 그리고 제사’라니” 이 세 단어의 조합이 이미 재밌지 않나요? 하와이와 제사가 만나는 것도 생뚱맞기 때문에 웃긴데 이것을 연결하는 사람이 정세랑 작가입니다. 이미 게임은 끝난 게 아닌가 싶죠(웃음). 저는 이 책의 소재를 들었을 때도 아주 유쾌한 소설이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읽고 난 뒤에 유쾌함은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그 유쾌함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또는 이 책의 설정에서부터 들어가는 무게감이 너무나 엄청나고요. 사이사이에 푹푹 찔러 넣은 성찰의 깊이가 너무너무 좋아서, 저는 이 책을 사랑합니다. 저는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은 다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 이 책이 되었어요. 

‘시선’은 사람 이름이에요. ‘심시선’이라고 하는 할머니의 이름이고요. 책의 처음에 ‘심시선 가계도’가 나와 있습니다. 심시선의 첫 번째 결혼도 있고 두 번째 결혼도 있고요. 책을 읽어 보면 가계도에 등장하지 않는 ‘엠앤엠’이라고 불리는 독일 아티스트도 있어요. 심시선의 아이들이 아빠도 다르고 다종다양한 배경으로 가족이 구성되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핏줄로 이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핏줄로는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이상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연대감 같은 것들도 배어있는데요.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미 심시선 여사는 돌아가신 뒤예요. 돌아가신지 10년이 됐습니다. 심시선 여사의 첫째 딸인 ‘명혜’ 씨가 가족들을 불러 모아 놓고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심시선 씨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아티스트입니다. 화가예요. 이 분이 생전에 아주 다양한 활동들을 했어요. 글을 쓴 것도 많고, 이 분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에도 많이 응했고, 대담 같은 인터뷰들도 있고, 그래서 이 사람을 재구성할 수 있는 거리들이 아주 많은 거예요. 이 책의 형식적인 재밌는 특징은 각 챕터가 시작할 때마다 그런 심시선의 조각조각들을 붙여놔요. 그게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사람인데도 심시선의 존재감이 너무 커져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한테 마구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너무 신기한 점이었죠. 

생전에 심시선 여사는 제사에 대해서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무덤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유골을 뿌렸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서 첫째 딸 명혜 씨가 생각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10주기이니까 우리가 모여서 일종의 제사를 갖도록 하자, 그것을 하와이에서 하자’고 제안하는 거죠. 가계도에 나와 있던 모든 가족들이 하와이로 떠나게 됩니다. 숙소에서 명혜 씨가 발표를 하는데 ‘기일의 저녁 8시에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텐데, 이곳에 와서 느꼈던 좋았던 경험 같은 것을 물건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해도 되고, 심시선 여사와 관련된 기억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해요. 그때까지 가족들이 하와이에서 제사에 가지고 갈 물건 또는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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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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