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다시 하게 되는 집안 정리. 흔히 ‘버리기’를 정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청소가 공간을 깨끗이 하는 일이라면 정리는 물건의 자리를 찾는 일.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를 쓴 정희숙 정리컨설턴트는 “물건에 주소를 부여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정리는 마음을 풀어내는 일’이라며 지금 삶이 괴로운 모든 이에게 ‘정리’를 권한다.
집을 최대한 비우는 것이 최고의 정리라 생각하거나 눈에 안 보이게 물건을 어딘가에 잘 넣어놓으면 정리가 된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줄 것이다. 진짜 정리는 물건을 버리고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가야 할 곳을 정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_(7p)
평범한 주부였던 정희숙 정리컨설턴트는 마흔 살에 정리컨설팅을 시작하고 2,000여 개의 집을 정리하며 경험을 쌓았다. SBS <생방송 투데이>, MBC <기분 좋은 날>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했으며 한혜연, 박명수, 화사의 집을 정리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유튜브 <정희숙의 똑똑한 정리법>을 운영 중이며 한국정리컨설팅협회장을 맡고 있다.
정리는 ‘나’를 돌보는 일
집 정리를 마음과 연결해 설명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정리컨설팅을 하다 보니 점점 사람이 보이더라고요. 정리를 의뢰한 사람이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궁금해진 거죠. 얼마 전에 어느 집에 갔는데 유통기한이 2015년인 라면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무심코 “2015년에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봤어요. 갑자기 우는 거예요. 알고 보니 2015년에 아이가 떠난 거죠. 그때 이후로 그 고객의 시간이 멈췄고, 정리를 못 한 거예요.
정리하면서 그 사람의 역사를 알게 되는군요.
그냥 물건만 정리하는 게 아니에요. 월세인지 전세인지 재혼인지 이혼인지 다 알게 돼요.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20년간 자기를 힘들게 한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거나 하는 등의 사건을 계기로 정리컨설팅을 의뢰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왜 정리해야 하는지, 정리의 의미를 강조하셨더라고요.
아마 현장에 안 갔다면 몰랐을 거예요. 회장님 사모님인 어떤 고객은 과거에 몇억을 부도 맞고 힘들어서 죽으려고 했대요. 그때 이후로 알뜰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겨서 지금도 물건을 잘 못 버리더라고요. 정리는 마음과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중요하고요.
정리로 저자님의 인생도 달라졌다고요.
결혼하고 마흔 넘어서까지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굉장히 무기력해졌어요.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고 아이들은 내 마음처럼 안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자주 화가 나고 눈물도 많아졌고요. 그래서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일을 하라고 해서 한 달에 딱 30만 원만 벌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죠. 재미있었어요.
원래 정리를 잘하셨나요?
강박적으로 열심히 했어요. 아이들 장난감을 컬러, 종류별로 분류하고 온 집안을 소독할 정도로요. 주변에서 피곤하게 산다고 할 정도로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정리컨설팅이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일을 시작하고 언제부터 반응이 왔나요?
2013년에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정리컨설팅에 대한 인식이 없었죠. 저도 커리어가 없었고요. 최근 2~3년 전부터 유망 직업이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처음 일을 시작하고 해외 자료를 보면서 공부하셨다고요
미국, 캐나다, 일본 자료를 주로 봤고요. 일본에서 정리컨설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지만,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봤는데 코칭 위주의 내용이더라고요. 버리기를 강조하고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이 이른바 ‘핫’ 했잖아요. 그런데 버리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하셨더라고요.
어떻게 설레는 것만 남겨요. (웃음) 쓸 것도 있어야죠. 일본에서는 자꾸 버리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정(情)이 많고, 한(恨)도 있고, 덤을 좋아해서 못 버려요. 무조건 버리라고 하지 말고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죠. 그냥 꺼내놓고 쓰라는 게 아니라 예쁘게 꾸미면 누구든 쓰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가령 서재를 예쁘게 만들면 책 읽고 싶듯이요. 그렇게 정리해야 해요.
집의 크기와 정리는 상관없다고요.
집이 크면 밖에 나와 있는 물건이 적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건 정리가 잘 된 게 아니라 한쪽에 모여 있는 것뿐이에요. 그냥 안 보이는 곳에 치워 놓은 거죠. 이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는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침대, 소파, 식탁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가구를 점령하는 거죠.
가구가 제 기능을 잃는 거네요.
물건이 너무 많아서 집에 못 들어가는 분도 있었어요. 집이 창고가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정리가 필요해요. 소비 방식도 점검해야 하고요.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저도 잘 몰라서 최대한 버리지 않고 물건을 많이 넣어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남의 물건이고 아까우니까 상자나 압축팩 가지고 다니면서 최대한 많이 넣었죠. 그런데 그건 정리가 아니더라고요. 다 버릴 순 없지만, 버릴 건 버리고, 버리지 않는 물건은 쓰게 만들어야 해요.
제1원칙 ‘눈에 보이게 하라’ ’
정리할 때는 큰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고요.
공간에 이름을 부여하고 공간의 목적을 정한 다음 물건이 따라가게 해야 해요. 어떤 물건은 특정 공간 외에는 없어야 하고요. 예를 들어 가족이 함께 쓰는 거실에는 개인 물건을 두지 말아야죠. 그런데 많은 분이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거에 연연해요. 양말, 수건 예쁘게 접는 것부터 하는 거죠. 그건 정리의 단계가 높아졌을 때 하는 거예요.
‘현재’에 집중해서 정리해야 한다고도 하셨죠.
사람이 자라는 만큼 물건도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학창 시절에 입었던 교복, 어릴 때 읽은 동화책, 과거에 주고받은 편지 같은 걸 다 가지고 있는 거예요. 물론 사람에 따라 추억의 물건에 부여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물건 때문에 현재의 내 공간을 제대로 못 쓴다면 문제가 있죠. 반대로 지금 당장 쓸 물건이 아닌데 미리 사 놓고 쌓아두는 분들도 많은데요. 정작 그 물건을 다 쓰느냐? 그렇지 않아요. 공간만 차지하는 거예요.
컨설팅하면서 가장 많이 버리는 물건이 있나요?
비디오, 삐삐, 옛날 핸드폰 충전기요. 주로 쓰지 않는데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죠. 버리기 힘들어하는 분들께는 사진으로 남겨 놓으라고 해요.
역시 주로 추억의 물건이네요.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는데 비디오를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결국 창고로 가게 돼요.
한 번에 못 버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설득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일단 모든 물건을 다 꺼내야 해요. 물건의 양이 한눈에 보이게요. 다 꺼내 놓으면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정해지거든요. 어떤 걸 버리고, 어떤 걸 써야 하는지 고객이 먼저 알아요. 예를 들어 텀블러가 여러 개면 사은품으로 받은 건 버리고 스타벅스 텀블러는 남기는 식이죠. 그런데 고객이 직접 자기 집을 정리할 때는 다 꺼내 놓으면 안 돼요. 하루에 한 품목씩 해야 다 정리할 수 있어요.
순서대로 할 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품목이 있다면요?
내가 관심 있는 품목부터요. 책에 관심이 있으면 책부터 하고, 옷에 관심이 있으면 부피가 큰 패딩이나 코트부터 정리하는 게 좋아요. 관심 있는 물건부터 정리해야 재밌거든요. 부피가 큰 것부터 버려야 하고요.
물건이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요..
정리는 버리기가 아니에요. 재고 조사고 분류예요. 내가 가진 걸 알아야죠. 그래야 버릴 수 있고, 안 살 수 있어요. 가진 걸 모른 채로 버리면 잘못된 버리기를 해요. 만약 가위가 10개 있으면 하나 정도는 버릴 수 있겠죠. 그런데 집에 가위가 몇 개 있는지 모르는데 ‘오늘 비도 오고 우울하니까 이걸 확 버려?’ 싶어서 버리면 나중에 다시 그걸 찾는다니까요. (웃음)
그러면 최대한 상세히 분류하는 게 좋을까요?
기준이 많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대분류부터 순서대로 정리하는 게 중요한데요. 의류, 주방용품, 문구류로 시작해야지 처음부터 지우개, 칼 이렇게 하면 골치 아파요. 카테고리를 크게 묶어야 하고, 의류는 사용자별로 분류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남편 패딩, 엄마 코트부터 정리하는 거죠. 부피 큰 거부터 해야 하니까.
부피별로 옷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계절별로도 구분되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한국은 사계절이라서 계절별로 구분하면 기준이 모호해져요. 얇은 재킷부터 두꺼운 재킷, 긴 패딩부터 짧은 패딩처럼 종류별로 정리해야 해요. 종류별로 정리한 다음에는 색상, 소재, 길이별로 다시 나누고요.
옷을 개어서 정리하는 것보다 걸어놓는 게 좋다고요. 이것도 옷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인 거죠?
정리 못 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책장이나 상자에 옷을 넣어 놓거나 압축해서 쌓아두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많은 옷을 보관할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정리법인데요. 저는 그렇게 안 해요. 쓰는 게 목적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옷은 걸어야 해요. 눈에 보이게요.
나와 물건을 알아야 해요
고객에게 ‘왜 정리하려고 하는지’ 물어본다고요.
SNS에서 비포&애프터를 보고 가격부터 묻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는 한 번만 할 사람이잖아요. 정리컨설팅을 통해 시스템을 갖춰도 고객이 정리에 관심이 없거나 유지할 의지가 없으면 의미 없어요. 부모님 집을 정리해 달라고 하는 자녀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께는 받지 마시라고 말씀드려요. 왜냐하면 잘 안 변하거든요. 청소가 치우는 거라면 정리는 잘 쓸 수 있게 자리를 잡아주는 거예요. 물건에 주소를 부여하는 거죠. 그런데 이걸 모르고 살던 대로 살면 소용없어요.
물건의 질서를 잡아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정리를 못 한다는 건 내가 물건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물건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많은 사람이 자기가 똑똑하게 소비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제가 여러 집을 컨설팅 하잖아요. 모든 집에 똑같은 물건이 있어요. 정리하면서 최신 트렌드를 알게 된다니까요.
그만큼 유행에 따라 물건을 산다는 거죠?
그렇죠.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대리만족한다는 걸 많이 느껴요. 예전에 연예인이 선망의 대상이었다면 요즘은 셀럽으로 바뀐 거 같아요. 요즘은 USM이라는 가구가 인기예요. 청담동 가면 이 가구가 있는 집과 없는 집으로 나뉠 정도로요. 그리고 집의 구조와 상관 없이 유행 따라 소비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패밀리 침대가 18평에도 있고 25평에도 있는 식이죠.
나와 내가 가진 물건을 아는 게 중요하군요.
정리는 선택이에요. ‘쓸 거야 말 거야?’, ‘버릴 거야 남길 거야?’, ‘보물이야 쓰레기야?’를 선택하는 건데 이걸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선택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한 거예요. 정리는 습관이고 대물림이거든요. 엄마가 하는 대로 아이가 따라 해요.
의뢰받는 일의 30% 정도만 수락하신다고 들었어요. 이유가 있나요?
정확히 30%는 아니고요. 상담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고객과는 일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고객이 모든 걸 다 정해 놓고 “이불 압축해주시고, 안 쓰는 물건 지하 창고에 내려주세요”라고 하면 “죄송하지만, 제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씀드리죠. 본인이 결정했는데 컨설턴트가 갈 필요 없잖아요. 수익이 남지 않아도 정리컨설팅이 필요한 고객에게는 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양하죠.
정리컨설팅을 받으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것 같아요. 업체를 고를 때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방문 견적 없이 평당 얼마로 시작하는 업체요. 방문 견적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제대로 정리하기 쉽지 않아요. 물건이 섞여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꺼내놓고 퍼즐처럼 맞춰야 하거든요. 그러면 최소 5~6명이 필요해요. 정리컨설팅은 단순 수납이나 청소와 달라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에요.
정리컨설턴트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정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분들이 하면 좋죠. 그런데 모든 분이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냥 일이 필요해서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최소한 이 일이 노동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몸 쓰는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은 못 해요. 활동적이어야 할 수 있어요.
SNS도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정리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모든 사람이 정리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정리는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고, 대물림이니까요. 저는 정리로 인생이 바뀐 사람이잖아요. 더 많은 사람이 저처럼 바뀔때까지 컨설팅하고, SNS도 하면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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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현준맘
2020.07.16
인터뷰 기사 보고 저도 큰그림부터 그려서 각 방마다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정하고 숨겨놨던 짐들도 끄집어 내어 선별작업을 해야겠습니다.
어린시절에 학용품 등이 늘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도 문구류만 보면 집에 있든없든 사모아놓는 버릇이 있어요.....아들 학용품들도 혹시 모른다며 2개 이상씩 쟁여두는....필요할 때 꺼내 쓴다고 하지만 외동아들 키우며 필요없는 물건들을 너무 쟁여뒀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안쓰고 버리거나하면 자원낭비고 환경오염 시키는 건데...반성하며 책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