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책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책은 위로와 공감을 내세운 에세이 트렌드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서점 꿈꾸는별책방의 책 소개를 빌리자면, “무언가에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만한 책이다. 선택, 최선, 인내, 삶과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가슴 덜컹거림으로 다가갈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책의 조태호 작가(인디애나대학교 연구 조교수) 이야기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명제를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 준다. 미국에 거주 중인 조태호 작가와 이메일을 통해 만났다.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작입니다. 대상을 수상한 10명의 작가 중 작가님은 (송구하지만) 팔로워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요, 대상작 발표 이후에 작가님 브런치북에 정말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브런치북 대상작 발표와 그 이후의 감회가 궁금합니다.
제 브런치 계정 팔로워 수는 80명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페이스북 친구들이었고요. 지금까지 써 왔던 글들을 하나로 묶고 싶어서 브런치북을 발행해 봤고 이왕 만든 거 응모도 해 보자 싶었는데, 정말로 제가 선정될 줄은 몰랐습니다. 수상 직후, 하루 2만 5천여 명이 제 글을 읽는 걸 보고 나서야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라 걱정도 되었고요. 하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따뜻하고 응원이 되는 댓글들을 남겨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저한테 벌어진 일들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은 살면서 늘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삶을 사는지 결정한다.” 이 말은 제가 책에 쓴 말이기도 해요.
책 전반에 걸쳐 작가님은 여러 개의 직업을 거치고, 거주지도 한국, 일본, 미국으로 바뀌어 갑니다. 기회도 많았지만 고민도 많았고요. 그런 선택의 순간들에 작가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기준은 무엇인가요?
수많은 선택의 과정을 거치며 제가 갖게 된 생각은요, 선택 하나 하나의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이 인생의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방향만 틀리지 않다면 말이죠. 예를 들어, 책에 재판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어쩌면 그 대목이 읽는 이들에게 고구마를 잔뜩 안겨준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만일 이게 소설이었다면, 주인공이 멋지게 한 방을 날렸어야 할 장면이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소설이 아니더군요. 삶은 탁하고, 앞이 잘 안 보이고,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상황일 때가 참 많아요. 아쉽고 모자란 선택도 하게 되고요. 그럼에도 저는 결국엔 있어야 할 곳에 도착해 있더라고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을 따라서요.
책 초반에 일본인 지도교수가 매일같이 작가님 자리로 와서 위안부는 매춘부고, 한국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같은 폭언들을 쏟아내는데요, 읽는 사람도 분노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요?
사람이 진짜 미우면 그 사람이 세상에 없는 모습까지 상상해 보게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할까요. 한 사람이 그토록 미워진 적이 또 없었던 듯싶습니다. 어떤 분이 최근에 브런치에 댓글을 달아 주셨어요. 자신도 이런 류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고, 게다가 지금도 그는 변함이 없다고요. 제 글을 읽으며 그때 대항하지 못하고 비겁했던 자신을 다독여 주고 싶어졌다고요. 저는 누구든 살다 보면 만나는 ‘그’가 한 명씩은 있는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그 일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 마음도 소중하다고, 힘내시라고 응원해 드리고요.
책에는 작가님의 이야기와 맞물려 ‘자동분류기’, ‘허구적 이상형’ 등 정체 모를 두려움이나 화를 이해하기 위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무척 흥미롭게 읽혔는데요,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
다리가 부러졌을 때 상황 파악을 한 뒤 소리를 지르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지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거실에서 뛰다 넘어지면 일단 주위를 둘러봅니다. 엄마가 있으면 목청껏 울고, 아무도 없으면 탈탈 털고 일어납니다. 우리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의 선택에 기대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가진 ‘화’의 문제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로봇처럼 자동으로 화를 내며 발생합니다. 이런 작용을 두고 저는 ‘자동분류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충격적인 목격담이 책에 등장했던 이유는 이런 자동분류기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의식을 사로잡은 그 사건이 저에게 어떤 흔적을 남겨 놓았는지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자동분류기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깊은 곳에 자리한 이 흔적을 저는 ‘방어적 이상형’이라고 이름 붙였고요. 이 두 가지로 제 지난날들의 선택이 설명되더군요. 이 책은 결국 자동분류기와 방어적 이상형, 이 두 가지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기나긴 증언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단숨에 읽었다”는 독자 리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 상당히 입체적인데요,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글 쓰기 비결이 궁금합니다. 원고 작업하시면서 참고했거나 도움을 받은 작품이 있나요?
저희 가족이 온통 빠져들었던 드라마로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습니다. 그중 <응답하라 1988>은 ‘주인공이 멤버 중 누군가와 결혼한다’라는 결과를 먼저 보여 주고 그 과정을 하나씩 풀어 주는 구성이었는데요, 저의 이야기 역시 죽음의 문턱에 놓인 장면을 먼저 보여 주고, 이후에 그렇게 된 과정을 하나씩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건 아마도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님이 이야기를 풀어 내신 방식이 저에게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 “아주 쉽게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을 선택해야 하는 당신의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작가님에게 같은 질문을 드린다면요?
어떤 건 답을 하는 순간 언어로, 또 단어로 그 의미가 제한되어 버리더군요.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너무 아까운 생명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반대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살아가는 이들에게, 왜 사는지를요. 이 질문이 어쩌면 죽음을 택하려는 이들에게 죽지 않을 이유를 생각해 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라면서요. 죽음 직전에 제가 만난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도 아니고, 어떤 훌륭한 가르침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선택하는 거예요. 사는 쪽으로. 해 봐야 해낼 수 있다는 말처럼요. 제발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진심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꾸준히 걸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만나요. 그때까지만, 아무리 작은 이유라도 당신만의 그것을 잡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는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한 사람의 분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 19 사태도 우리 모두에게 예기치 못한 초유의 사건인데요, 한국의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인터뷰를 하는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400만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15만 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상상도 못 할 어마어마한 숫자지요. 세상이 우리 편한 대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동일본 대지진도 그랬지요. 당시 일본에 있던 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놓고 원망만 하는 일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있든 없든 세상은 잘 흘러가지요. 잠시 있다 갈 우리에게 세상은 빚진 게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신이 없는 현실 속에서 제어하기 힘든 코로나 바이러스를 탓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집에 돌아와 손을 씻어야 하는 것처럼요. 제가 힘든 과정을 겪으며 알게 된 것을 가만히 담고 있지 않고 지인들에게 전하려 했던 것도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는 거지요. 그 결과가 이렇게 책이 될 줄 처음엔 알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것,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 보면, 무언가를 이루게 됩니다. 한국에 가서 독자분들을 만날 수 없는 현실이 아쉽지만, 어떤 길을 걷고 계시든, 마음을 모으고 두 손을 모아 가시는 길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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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고꿈꾸고 경애
202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