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민 “『곰의 부탁』을 내고 가장 기대되는 것”
책을 많이 내고 싶다는 욕심은 별로 없는데, 나중에 돌아봤을 때 왜 썼을까 후회하는 책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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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창비 좋은어린이책 대상을 받은 이래 출간하는 동화마다 큰 사랑을 받아 온 작가 진형민이 청소년 독자를 위해 펴내는 첫 번째 책이다. 간혹 웹진이나 앤솔러지에서 그의 청소년소설을 만나 본 독자들이라면 손꼽아 기다려 왔을 소식이다. 총 일곱 편의 작품을 모은 이번 책은 독자들의 오랜 기대에 충실히 부응한다.

『곰의 부탁』 속 인물들은 모두 청소년이지만,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지칭되곤 하는 집단으로 획일화될 수 없다. 작가가 오랫동안 그 곁을 지키며 마음속에 층층이 축적해 온 한 명 한 명의 아이들 모습이 녹아 있기에, 이야기 속 아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고유하다.



동화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오셨고, 청소년 독자들을 생각하며 펴내신 책은 『곰의 부탁』이 처음이에요. 도대체 왜 이제야 쓰셨느냐는 팬들의 원성(?)도 들려옵니다. 첫 청소년소설을 내신 소감을 들려주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줄곧 동화를 써 왔는데요. ‘어린이’라는 외피를 걸치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왠지 용감하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데 재작년에 우연히 중학교 국어 선생님과 말씀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저를 보고 아주 반가워하시면서 학교 아이들이 토론 시간에 제 책 『소리 질러, 운동장』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중학생이 된 독자들을 위해 청소년소설도 좀 써 달라고 하셨어요. 생각해 보니 몇 년 동안 학교나 도서관에서 만났던 어린이 독자들이 진짜로 모두 중학생, 고등학생이 됐겠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청소년 독자가 비교적 또렷하게 그려졌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차츰 분명해졌어요. 『곰의 부탁』을 내고 가장 기대되는 부분도 예전의 어린이 독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나만 반갑고 정작 아이들은 “아, 뭐래.” 할 수도 있지만요.               

소설 속 청소년들은 제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작가의 말’에 쓰신 것처럼 모두 “변방”에 서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느껴집니다. 어떤 마음으로 일곱 편의 작품을 모아 엮으셨나요? 

특별히 이번 소설집에만 그런 이야기들을 모은 건 아니고요. 제가 동화를 쓸 때도 늘 비슷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곤 했어요.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여럿이 함께 버티고 있는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써 왔거든요. 예전에 제 책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에 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이런 문장을 썼더라고요. ‘끝내 변방으로 밀려난 아이들이 자신 혹은 부모의 게으름과 무능을 탓하지 않고 계속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들이 가까운 이들과 불화하지 않고 사회를 향해 가난과 실패의 이유를 물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마음이 여전히 제 안에 있고, 그래서 『곰의 부탁』도 이런 작품들로 묶이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해서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표제작 『곰의 부탁』에 나오는 이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곤 하는 퀴어 청소년에 대한 말로도 읽혔지만, 넓게는 『곰의 부탁』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것이 1948년이라고 해요. 인간은 오로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들을 갖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건데요. 그럼에도 다수 집단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지요. 낯선 존재들은 공동체 안에서 쉽게 부정당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자기 증명이 어디 있겠어요. 사회의 규범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들을 합리적으로 아우르는 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부정하고 배제하고 낙인찍으며 유지하는 공동체는 결국 퇴행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어른으로 살아갈 때쯤에는 지금보다 훨씬 유연한 사회가 되어 있겠지요. 꼭 그럴 거라 믿습니다.

표지의 세 아이는 작가님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캐릭터 이미지와 비슷한가요?

 제가 상상한 이미지보다 훨씬 귀엽고 친근해요. 그래서 좋았어요. 청소년 독자들이 선뜻 책을 집어 들지 않으면 어쩌나, 혼자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웹툰 주인공 같은 표지 아이들이 책의 문턱을 한결 낮춰 준 것 같아 반갑고 고마웠어요. 덕분에 청소년 독자들에게 좀 친한 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표제작의 배경은 한겨울이지만 『곰의 부탁』은 왠지 ‘여름의 책’이라는 인상입니다. 여름에 태어난 두 아이, 고운이와 경미에게 생일 선물로 주는 책이기 때문일까요. 마음속에 오래 품고 계셨던 아이들이니만큼 작품 곳곳에 기억이 묻어 있을 것 같은데요, 유독 두 아이를 많이 생각하며 쓰신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고운이와 경미는 안산 단원고 2학년이었어요. 2014년 4월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뒤 다시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지요. 그다음 해에 작가들이 모여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글 작업을 했고, 그때 제가 고운이와 경미 이야기를 썼어요. 두 아이의 부모님과 친구들, 연극반 선생님과 선배들을 차례로 인터뷰했는데 그 만남들이 아직도 봉인된 상태로 제 안에 남아 있어요. 「그 뒤에 인터뷰」는 꾹꾹 묻어 두었던 그때의 느낌을 처음 꺼내어 쓴 이야기예요. 인터뷰한 사람들의 기억은 미묘하게 조금씩 엇갈렸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맞추면서 ‘기억한다는 것은 뭘까?’ 계속 고민했어요. ‘고운이와 경미는 이 글을 마음에 들어 할까? 그건 진실이 아니야, 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고요. 그러다 문득, 어쩌면 이 인터뷰와 글은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에 인터뷰」에서도 모든 아이들이 정현이에 대한 기억을 말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오래 곁에 있을 거라 믿었던 누군가가 갑자기 떠나고, 남은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어 말하며 울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면서 마음 아파하고, 그런 일들은 결국 함께 애도하는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고운이와 경미에 대한 애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 보려고 해요.    

수록된 작품들이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 주고 있지만, 책이 마냥 무겁게 읽히지만은 않았어요. 마음 놓고 웃게 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작가님이 추구하는 유머러스함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 안에 빛나는 유머가 있다고 믿고 싶은데, 확신이 없어서 늘 불안하죠. 매번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이랄까. 나의 유머가 너무 낡은 것이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썼다 지웠다 반복하거든요. 저는 힘찬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웃음기 없이 힘만 넘치면 진위 여부를 떠나 약간 경계심이 생기잖아요. 웃음은 곧 유연함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웃음을 장착한 힘찬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런데 제 막내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좀 웃기기는 한데 아주 엄청 웃기지는 않다고. 십 년 전에 그 말을 들었으면 반성하고 자책하느라 힘을 뺐을 것 같은데, 이제는 좀 느긋해져서 ‘아이고, 조금 웃기는 게 어디야.’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잘해 보려고요.

어린이청소년 문학 작가로서 언젠가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도전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한 가지 있어요. 낡은 가치를 고집하는 꼰대가 되는 순간 스스로 글 쓰는 일을 멈추는 거요. 언젠가 그 일을 해야만 할 때 제가 의연히 잘 해내기를 바라죠. 책을 많이 내고 싶다는 욕심은 별로 없는데, 나중에 돌아봤을 때 왜 썼을까 후회하는 책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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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