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소설가 ‘고요한’이라는 이름이 사뭇 낯설게도 느껴질 것이다. 가을태풍이 세상을 할퀴고 간 9월 어느 날, 작가는 거짓말처럼 고요하게 우리 앞에 소설집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마치 그야말로 이 세상에 없는 어떤 계절에서 온 손님처럼 그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라는 당황스런 제목만 보면 꼭 무슨 판타지 소설 같고 유화로 그려진 표지화의 분위기는 입체적이면서 깊은 명암 탓인지 공포소설, 혹은 엎질러진 와인잔과 흐트러진 식탁 때문인지 로맨스에 실패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 소설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이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소설”이란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종이비행기』를 번역해 번역문학 저널 『애심토트』에 발표한 역자 브루스 풀턴과 윤주찬의 평이다. 그렇다면 현란한 수식을 그림자처럼 거느린 신간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의 저자인 소설가 고요한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먹음직스런 스테이크가 놓인 식탁 앞에 앉은 듯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소설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단편은 무엇인가요?
『 종이비행기』 입니다. 실질적으로 쓴 기간은 한두 달 정도였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제 안에 있는 열정을 다 쏟은 작품이죠.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 남자의 마음이에요.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결혼한 후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 여자를 영원히 붙잡기 위해 종이비행기를 접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거든요. 여자에게 날아가기 위해 자신마저 접어야 했던 한 남자의 쓸쓸한 이야기입니다. 『종이비행기』는 브루스 풀턴과 윤주찬 씨의 번역으로 『애심토트』 에 실리는 행운도 누렸어요. 두 번째 좋아하는 작품은 『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 입니다. 이 소설은 얼마나 많이 고쳐 썼는지, 다섯 가지 버전이 있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다섯 편의 단편을 쓴 것과 같죠. 지긋지긋하도록 고쳤지만 지겹지 않았고 재미있었습니다. 집필한 시기도 비슷해요. 『종이비행기』 를 쓰고 난 뒤, 일 년도 안 돼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 를 썼으니까요.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들었는데, 기자와 소설가라는 전혀 다른 일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쉽지 않았지만 두 가지 일 모두, 즐겁게 했습니다. 원래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화장실에 갈 때마다 한 손에는 기사를 들고, 한 손에는 A4용지에 뽑은 단편을 읽으면서 볼일을 보곤 했죠.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집중이 잘 되거든요. 그렇게 화장실에서 퇴고한 소설이 『 몽중방황[夢中彷徨]』 과 『오래된 크리스마스』입니다. 두 작품에는 담배 냄새가 깊게 배어 있죠.
작품을 보면 두 가지 경향이 보이는 것 같아요. 한쪽이 낯설고 새로운 서사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갈래는 무척 서정적이거든요.
글을 쓸 때 많은 생각과 상상을 합니다. 상상력을 많이 발휘한 것은 『종이비행기』와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예요. 종이비행기에서는 여자를 접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죠. 『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에서는 화자인 남자가 신과 거래를 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어요. 실제로 뒷산을 오르면서 얼마나 많은 나뭇가지를 바라봤는지 모릅니다. 재밌는 건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려고 후배를 데려다 나뭇가지에 제 푸른 와이셔츠를 걸고 사진을 찍었어요. 나뭇가지에 푸른색 와이셔츠를 놓은 후 저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후배는 사진을 찍은 거죠. 그래선지 아직도 저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기분이에요. 제 몸통만한 나뭇가지에 푸른색 와이셔츠가 걸려 있는 꿈을 아직까지도 꾸곤 합니다. 이에 반해 『몽중방황夢中彷徨』과 『오래된 크리스마스』는 서정적이죠. 초창기 단편이 서정성이 강해요.
수록된 작품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는 전주와 진안 간 도로인 모래재입니다. 학교 다닐 때 늘 그곳을 지나갔는데, 워낙 길이 꼬불꼬불해서 사실 모래재를 지날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되뇌곤 했죠. 제가 태어난 진안을 배경으로 쓴 소설은 『오래된 크리스마스』입니다. 읍내와 마이산을 배경으로 썼죠. 또 『몽중방황夢中彷徨』은 전주 인근인 소양 송광사를 배경으로 썼어요. 그 절로 들어가는 벚꽃길이 엄청 아름답거든요. 제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단편이 바로 이 작품이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며 맨 처음 쓴 소설이거든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현재 살고 있는 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은 『나는 보스턴에서 왔습니다』입니다. 그곳에 (소설에서 등장하는) ‘버거킹’은 없지만 늘 걸어 다니는 생태공원과 가게가 있어요.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의 배경이 된 곳은 목동입니다. 이 소설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욕망의 끝은 파국이죠. 파국으로 가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결국 파국을 맞는 부부 이야기를요. 『도마뱀과 라오커피』는 루앙프라방이 배경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늘 그곳 풍경을 생각해요. 그때 본 장면이나 풍경을 고스란히 소설 속으로 들어와 앉히려고 노력하죠.
평소 성격도 유머러스한 편인가요? 소설의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어요.
소설을 쓸 때는 서사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에 중점을 두죠. 고등학교 때부터 방에 혼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며 즐거워하곤 했죠.
아마 그런 상상력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도 작품 속의 화자를 극도의 상태까지 몰아붙여서, 그 끝을 보여 주기 위해 고민하는 편이거든요. 늘 이 작품의 끝은 어디인가 생각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어머니가 말씀을 아주 재치 있게 하세요. 시詩적으로. 때론 제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문장을 만들어 내시곤 해요. 노래도 구성지게 잘 해요.
단편을 쓸 때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지독히 합니다. 『몽중방황夢中彷徨』 같은 경우는 오천 번도 넘게 했죠. 그건 아마 오래 전에 쓴 소설이라 그럴 거예요. 보통의 경우에 최소한 삼백 번을 합니다. 지겹지는 않아요. 심지어 해외에 나갈 때도 원고를 들고 가서 퇴고해요. 낯선 곳에서 퇴고를 하면 글이 더욱 새로워지거든요. 물론 국내에서도 글을 쓸 때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퇴고를 합니다. 차 안이나 산에서 하기도 하고 공원 벤치나 누구를 기다리면서도 퇴고해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몰입도가 엄청 높거든요.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해요.
현재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웃의 이야기, 그 이웃의 또 다른 이웃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현실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소설도 쓸 생각이에요. 『프랑스 영화처럼』 에서 오리가 남산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환상적인 장면도 소설 속에 넣을 생각이고요. 아무튼 이웃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생각이에요.
*고요한(소설가)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단편소설 『종이비행기』가 번역 소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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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하늘사랑
2020.09.13
8편의 작품 모두 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들이었다.
어느 하나 허술하지 않았다.
상처 받은 인물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들은 담담했다.
그의 담담한 문체에 빠져들면서 어느새 나도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특히, 몽중방황은 나에게 위로가 된 작품이다.
어둠이 나를 집어 삼키고 아버지마저 집어 삼키려고 쫓아 올 때, 나는 아버지를 향해 달렸다.
아버지는 그것을 듣고 어둠이 밤을 몰고 온 것이라고, 밤새 꿈 속을 헤매고 다닌 거라고 했다.
당신은 무엇을 하든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내가 그것을 이해하기 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던가...
한참 성장통을 겪을 때는 모른다. 아니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 그리운 작품이다.
누군가 그리워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손 내밀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고요한 작가는 사람을 이해하게 한다.
나는 벌써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맑은호수
2020.09.12
소설 속 인물들은 다 착해요. 모든 걸 다 포용합니다. 잔인함 뒤에는 따뜻함도 있어요. 그 여운 참 오래갑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 거기엔 희망도 보입니다. 결코 절망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아내를 위해 스테이크를 먹고,
꿈 속에서 있었던 일로 아버지와 화해 하고,
나뭇가지에 걸려 신을 향해 절규 하고,
여자를 위해 동거남을 집에 들이고,
사랑하고픈 여자를 접고,
시차 적응을 위해 몸부림 치며 여자를 탐하고,
도마뱀처럼 색깔을 바꾸는 혼란스러움에도 어렵게 정체를 찾아가고,
크리스마스에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내려 놓음을...
잔잔한 이야기들이 가을날 초입,
선선한 바람으로 다가옵니다.
작가님의 소설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