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술치료사로서 관계들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상담하고 중재하는 일을 해온 저자가 부부나 연인,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이 더 자주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지, 싸움을 통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고, 부득이 싸우게 된다면 상처를 입거나 입히지 않으면서도 싸울 수 있는 방법이나 기술이 있는지, 기술이 있다면 어떻게 연마하면 되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싸움을 넘어서서 자기를 들여다보고 관계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 등 ‘가까운 이들과의 반복되는 싸움’으로 인해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치료적이고 실용적인 ‘싸움 안내서’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배웠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 책 『싸움의 기술』은 관계 맺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책을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스스로 사람들하고 싸우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주도 시골동네에 살게 되면서 어릴 적부터 그토록 바랐던 마을 친구가 생겼는데 그 친구랑 너무 많이 싸우는 거예요. 그 싸움을 통해서 이전에 회피했던 싸움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계속 부딪치는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부딪치면서도 항변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또 이해와 사랑을 받고 싶어서 계속 애를 쓰고 울고불고하는 저를 만나게 되었죠. 저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해하는 오래된 습관이 있는데, 싸움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그림의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보면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어요.
연인이나 부부, 친구처럼 누구보다 가깝다고 여기는 사이에서 특히 더 많이 싸우는 이유가 뭘까요? 부제가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다”인데, 사랑과 싸움이라는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랑과 싸움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쓰면서 새삼 깨닫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이었어요. 가까운 관계 안에서의 싸움은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나라는 존재가 납득이 되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어서 하는 싸움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우리는 평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갑옷을 입고 살아가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갑옷과 같은 표면의 자아를 내려놓고 내면에 있는 연약한 모습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서로에게 당황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비이성적인 자기를 만나는 것 또한 매우 불편한 일이죠.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상처를 주었던 부모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선택하는 일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이런 일은 흔하죠.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지만 내 문제를, 내 결핍을 해결하고 싶어 싸움의 대상을 찾는지도 몰라요. 극복하고, 치유하고, 온전해지고, 나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어서요.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는데도 그것을 표출하는 일이 두렵고 불편해서 참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화가 사라진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싸움이 왜 이렇게 불편할까요?
많은 경우 싸움을 두려워해요. 아니 싸움 이전에 우리에게 있는 공격성과 ‘화’라는 감정을 두려워해요. 하지만 공격성은 누구를 해치는 데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 나를 일으켜 세울 때나, 두려움에서 용기로 넘어갈 때, 자신을 구할 때 필요한 힘이에요.
화는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적인 작용이고, 공격성은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는 방어기제이기도 해요. 단 이 힘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자라면서 화나 공격성을 ‘잘’ 쓰는 사람을 보지 못한 채 자랐어요. 타인을 무너뜨리거나 해치거나 하는 방법으로만 쓰이는 것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거나 아니면 싸우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부모, 선생님, 어른들한테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책에 나오는 싸움의 기술들이 재밌어요. 급소는 피하고, 경멸하지 말고, 개싸움은 피하고, 사람으로 보지 말고, 축지법을 써서 이도 저도 아닌 곳으로 가고…… 이런 싸움의 기술들은 어디서 힌트를 얻었나요?
몇 개는 싸우다가 개발했어요. 내가 무슨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뱉었는데 상대방이 노발대발하거나 너무 상처받아 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왜 그럴까를 고민하다가 깨닫게 된 것들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싸움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분석을 한 것도 있고, 인터넷에서 도는 악플을 분석해서 싸움의 유형을 분류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태권도 도장을 하셔서 제가 어린 시절을 도장에서 보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낙법을 배우고, 기합을 넣는 것을 배우고, 도복을 바로 입는 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무술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축지법’ 같은 기술이 나왔어요.
책에 소개된 여러 가지 싸움의 기술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혹은 이것 하나는 꼭 익혀뒀으면 하는 싸움의 기술이 있다면요?
마법을 쓰는 기술이요. 싸움이 일어나는 그 상황이나 그 논리나 그 어법에서 순간적으로 완전히 나가버리는 것이 방법이죠. 제 친구는 제가 화가 나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으면 저의 화에 반응하는 대신 “얼굴 펴져라 뿅~” 하기도 하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제 미간 주름을 펴주기도 해요. 그게 웃기기도 하고, 진짜 괜찮아지기도 해요. 일종의 마법이죠.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반면 식구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밀접해지고 중요해진 것 같아요. 가까이 있다 보니 더 잘 싸우게 되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정말 요긴한 역할을 할 것 같은데,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오랜 시간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좋은 팁이 있을까요?
복종의 관계나 상하주종의 관계가 아닌 이상 관계가 갈등 없이 유지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부부나 친구처럼 평등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아웅다웅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갈등이 일어날 때 몸서리치고, 도망가고,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충격 먹는 대신에 호기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추리소설을 읽듯이, 세상의 놀라운 미스터리를 발견한 것같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진다면, 갈등이 그렇게 괴롭지만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서문에 나오는 마을 친구와 많이 싸우면서 배우고 성장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두 분은 타협을 하게 되었나요?
아니요. 우리는 끝끝내 타협하지 않았어요. ‘타협’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쪽과 저쪽을 섞어서 중간 어디쯤에서 싸움을 멈추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는 싸움을 통해서 그 친구도 저도 더 자기답게 살게 되었어요. 자꾸 싸우다 보니 오해를 만드는 서로의 다름에 대한 해석과 반응이 없어졌어요. 그 대신 그냥 싸우고, 금방 끝나고, 서로의 다름을 유지하면서, 친구는 친구답게, 저는 저답게 타협하지 않고 잘살고 있습니다.
*정은혜 예술가이며 치료사이다. 캐나다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 속에서 ‘다름’의 다채로움을 배우고, 대자연 속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시카고의 정신병원과 청소년 치료센터에서 미술치료사로 지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것을 보았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꽃 피우는 예술의 힘이었다. 10년 전부터는 곶자왈 숲이 있는 제주도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미술치료사로, 생태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둔 상처와 슬픔, 두려움, 분노를 마주하며 그 고통이 가장 가까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싸움은, 그것이 의도적이든 충동적이든 서로의 다름을 드러냄으로써 시작된다. 싸움은 칼을 쥐고 추는 춤, 즉 검무(劍舞)이다. 칼로 상대를 벨 수도 있고, 아름다운 어울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그동안 쓴 책에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나에게 잘하자』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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