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건 솔이가 나타나면 모든 바람의 방향이 한꺼번에 바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솔이의 주변에는 안개처럼, 느슨함과 무심함의 분위기가 어려 있었다.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설레게 했다. 멀리서 솔이가 보이면 심장이 평소와 다른 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은 쿵쿵쿵, 쿵쾅쿵쾅, 쿵쿵, 쿵쾅쾅쾅 뭐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날뛰었다. 중간중간 쉼표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이다.
조우리 소설가의 『오, 사랑』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조우리 소설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감각적인 문장으로 담아내는 소설가입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타인을 변화시키기고 나아지게 한다”고 믿고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고 말하는 조우리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제가 『오, 사랑』이 집에 있길래 표지를 봤더니 만화처럼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요즘 웹툰, 웹소설 같은 것도 표지가 만화처럼 나오잖아요. 그래서 ‘요새는 책도 이렇게 나오는구나’, ‘사계절문학상대상 수상작이기도 하고, 요즘 느낌의 책은 어떤 건지 훑어나 보자’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어요. 너무 재밌어가지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우리 : 고맙습니다.
김하나 : 그리고 준비를 하면서 전작인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작가님의 첫 책이죠, 이 책도 너무 즐겁게 재밌게 읽었는데요. 두 책을 읽다 보니까 작가님의 학창시절이 되게 궁금해지더라고요.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의 작가의 말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고1 담임 선생님께서 ‘교사 생활 20년 만에 너처럼 별난 애는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대체 어떤 행각을 벌이셨길래, 20년 경력의 선생님한테 이런 말씀을 듣게 되었는지.
조우리 : 저는 별로 학교에서 한 건 없고요. 일단 출결이 되게 안 좋은 학생이었고...
김하나 : 아, 한 게 없는 것 중에 출결 안 좋은 것부터 들어가는 거네요(웃음).
조우리 : 잘 안 나갔고(웃음). 일단 가면 조례 시간에 엎드려서 종례 시간에 일어나는, 계속 엎드려 있거나 아니면 깨어있는 시간에는 그냥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아무튼 좋은 학생은 아니었죠. 왜냐하면 그때 저희 집이 완전 쫄딱 망했을 때여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였고...
김하나 : 고등학교 들어가서요?
조우리 : 고등학교 1학년 3월부터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김하나 : 그 전에는 뭔가 잘사는 집이었고요?
조우리 : 그냥 중산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망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심하게 망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어요. 엄마아빠도 하시던 일을 못 하시고 식당일 나가시고 일용직으로 일하시고, 집도 다 이사를 가고, 이런 상황에서 되게 심한 우울감이랑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던 시기예요. 고등학교 1~3학년이. 그래서 학교에 가면 뭐하나 싶으면서도 집에만 있으면 엄마아빠가 마음 아파하니까 학교를 가기는 했는데, 가서 계속 엎드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을 어떻게 견딜 줄을 몰라서 그렇게 무기력한 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의외로 저한테 아무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김하나 : 의외로요?
조우리 : 네. 왜냐하면 보통은 ‘일어나라, 앉아라, 수업 시간에 왜 엎드려 있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쟤는 원래 저렇게 엎드려 있는 애’라고 생각하시는지 ‘쟤 또 저러네’ 이런 분위기여서 건드리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제가 엎드려 있는데 등을 토닥토닥 하면서 지나가셨어요, 처음에는. 그러더니 제가 한 번은 깨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제목을 보시더니 ‘좋은 책을 읽고 있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 뒤로 저한테 계속 말을 걸어주셨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마치 기압이 빠지는 것처럼, 학교에서 긴장감이 조금씩 없어지면서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조금씩 나아졌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 선생님한테 정말 큰 영향을 받으셨나 봐요. 잊지 못할 말이죠. ‘너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부끄럽게도 오늘 작가님이 제 책(『말하기를 말하기』)을 갖고 와주셨잖아요. 거기에도 나와 있는데,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김순득 선생님한테 들었던 말씀이 ‘김하나, 너는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였거든요. ‘너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때 당시에는 바로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조우리 : 전혀, 전혀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러면 당시에 작가님이 쓴 글이나 낙서하신 걸 선생님이 보신 적이 있어요.
조우리 : 음... 아뇨, 그런 건 거의 못 보셨을 거고요.
김하나 : 선생님이 약간 신기 같은 게...(웃음)
조우리 : 그건 아니고(웃음). 제가 되게 예민한 성정이었는데 ‘작가는 예민한 게 병이 아니고 되게 좋은 요인이라고, 그렇게 촉수가 길어야 주변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라고’ 그런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김하나 : 이렇게 쓰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이 작가가 되기 위한 좋은 자질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전 존재는 그때 단숨에 구원받았다.” 너무 드라마틱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바로 작가가 되신 건 아니고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죠. 그런데 그 말씀이 뇌리에 남아있었어요?
조우리 : 그렇기도 하고, 졸업하고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선생님이 계속 저한테 ‘너는 작가가 될 거야’라고 하셨어요.
김하나 : 제가 『오, 사랑』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는 ‘여학생이랑 남학생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했다가 읽어봤더니 둘 다 여학생이었고, (표지의) 밑에 그림 그려져 있는 ‘이솔’이라는 친구는 보이시한 여학생이었죠. 게다가 이 둘이 사랑에 빠지는데 가출을 하나 싶더니 다른 나라로 가출을 합니다. 너무 스케일이 큰 거죠(웃음). 이런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드신 거예요?
조우리 : 맨 처음에는 그냥 십대의 첫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출발했어요. 저도 이 아이들이 가출을 하고 런던까지 갈 거라고는 처음에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김하나 : 걔들이 가던가요? (웃음)
조우리 : 네, 말릴 수가 없었어요(웃음).
김하나 : 처음에는 ‘솔이(이솔)’가 여자 아이도 아니었다고, 작가의 말에도 쓰여 있었는데요. 이 이야기가 두 여학생의 사랑 이야기가 되면서 여학생과 남학생의 사랑 이야기에서 나올 수 없는 부분들이 아주 크게 이 소설에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그러면 처음에 생각하셨던 이야기와 많은 부분이 달라졌는지 궁금해요.
조우리 : 첫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했을 때 인물에 대해서 고민하고 다니던 시간이 있었어요. 작가의 말에도 쓴 것처럼, 집 앞의 토스트 집에 갔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여학생이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저런 느낌이라면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까, 심장이 쿵 해가지고(웃음). ‘치인다’는 말 아시죠? 저런 인물이라면 치이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사고처럼 치여서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삭 토스트에서 영감을 받고(웃음) 주인공 한 명이 정해졌는데, 약간 제가 치인 상대잖아요. 그러니까 화자인 ‘나’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나를 집어넣어서 더 평범하고 잘 반하고 조금 줏대 없는 인물로 하면 균형이 맞을 것 같아서 두 사람의 캐릭터는 그렇게 정해지게 된 거죠.
김하나 : 『오, 사랑』이라는 제목은 루시드폴의 노래에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오사랑’은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죠.
조우리 : 네.
김하나 : 처음에 이 소설을 쓰실 때,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실 때 이미 루시드폴의 음악을 생각하고 계셨나요? 주제곡처럼?
조우리 : 이걸 쓸 무렵에 노래 <오, 사랑>을 많이 들었는데, 그 노래를 책에 실을 생각은 안 했거든요. 저작권 문제도 있고 조금 어렵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데 다 쓰고 나니까 마지막에 그 곡이 딱 들어가면 찰떡궁합일 것 같아서 마지막에 넣었고,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김하나 : 그 부분은 화룡점정입니다. 그것을 그렇게 떠올리신 순간, 셀프칭찬 하셨나요?
조우리 : 네, 매우 잘했어! (웃음)
김하나 : 칭찬하실 만합니다. 저도 그 노래를 좋아하고 가사가 참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새 드라마나 웹소설에서 주인공 이름을 흥미롭게 재밌게 짓잖아요. 그래서 ‘오사랑’도 재밌는 주인공 이름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오’가 감탄사이기도 하니까 중의적으로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재밌게 읽고 나서 맨 마지막에 그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는데...
조우리 : 가사가 너무 찰떡이죠?
김하나 : 너무 찰떡이고 ‘이 가사가 이랬었나?’ 싶고, 저는 진짜 울었어요. 저도 ‘사랑교 신자’라는 말을 듣는데, 사랑이야말로 정말 어떤 사람의 경계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변화를 가장 강력하게 이루어내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냥 사랑 예찬도 아니고 그 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가사를 읽으면서 그게 너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셀프칭찬 하셨지만 다시 한 번 더 드리겠습니다(웃음).
조우리 : (웃음) 이 두 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세트와도 같은 것이니, 꼭 책을 읽고 <오, 사랑>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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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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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