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카피라이터의 ‘인생 한 줄’은?
문장 한 조각을 붙잡아뒀을 뿐인데 그때의 기억까지 저장해놓는 느낌이라 문장을 모으는 일은 멈출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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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만난 문장들과 사람들이 30대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TBWA 카피라이터 오하림. 『나를 움직인 문장들』은 저자가 오랜 시간 모아왔던 수천 개의 문장들 중 각별했던 것을 고르고 골라 그만의 생각을 덧붙여 담은 책이다. 긴 시간 살아남은 문장들이 7년 차 카피라이터인 작가의 감정, 생각, 행동, 일상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들여다보며 이 책 어딘가에서 당신을 움직이는 문장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처음 문장을 모으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실 첫 순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마음에 ‘쿵’ 와닿는 대사를 들었을 때일 거예요. 가끔 그런 문장들을 만나면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거든요. 그런데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러니 기록하기로 한 거죠.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는 걸 좋아했어요. 드라마, 예능, 영화, 광고… 사실 누구나 보고 자랐던 것들인데요. 자세히 보면 각자가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더라고요. 드라마는 누구나 알기 쉬운 대사로, 영화는 거기에 미장센과 웅장한 음악과 함께, 예능은 못다 한 이야기를 자막으로, 광고는 짧은 시간 내에 치밀하게 계산된 메시지로 말이죠.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주제 의식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모두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거기서 유독 좋았던 문장들을 조금씩 모아나갔던 것 같아요.

정식 출간 전 매년 생일마다 문장들을 엮어 지인들에게 선물하셨어요. 내 생일에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선물이라니, 지인들의 반응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문장을 모으고 모으다 보니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처음엔 가끔 꺼내서 감상하는 수준에 그쳤는데, 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거죠. 읽어보면 하나하나 의미 있고 소중한 문장들뿐이었어요. 어떤 문장은 저의 생각을 바꾸기도 했고, 어떤 문장은 삶의 지침 역할을 해주기도 했고, 어떤 문장은 저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거든요. 생각해보니 서른의 나를 만든 건 이 문장들이더라고요. 그때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천천히 해봤어요. 이 문장들도 나를 만들었지만, 내 주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혼자 보기 아까운 이 문장들을 지인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마침 그런 생각을 했을 때가 제 생일 즈음이라, 나의 생일에 남에게 생일 선물을 주기로 했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가 되었죠. 내 생일인데 남한테 선물을 주다니, 처음엔 왜 그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취지를 설명해주니 모두가 응원했고, 문장을 받은 친구들은 더 큰 선물로 생일을 축하해줬어요. 『나를 움직인 문장들』을 처음 선물했던 2년 전 생일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은 생일로 기억해요.

그리고 1년 후, 다시 생일 즈음이 되자 놀랍게도 친구의 친구들이 DM을 보내왔어요. 혹시 올해도 『나를 움직인 문장들』이 만들어지는가 하고요. 해가 지날수록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에게서까지 연락이 왔어요. 모르는 사람들까지 기다리는 나의 생일, 그리고 나의 문장. 이렇게 특별한 생일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감사했고, 행복했고, 또 이렇게 정식 출판으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문장을 전할 기회까지 생기다니 아직 꿈꾸는 것 같아요.

책, 드라마, 예능, 커뮤니티, 대화 등 정말 많은 곳에서 '나를 움직인 문장들'을 포착했어요. 문장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모으는 방식도 궁금합니다.

저는 바쁜 집순이에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둘러보고, 넷플릭스를 보고, 티빙, 왓챠, 웨이브까지 모두 구독하는 사람이거든요. 집순이지만 집에서 하는 일이 정말 많죠. 보는 장르는 다양한데 책에는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두면 되지만,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각자 다른 방법을 이용해요. 예능은 주로 맥락 이해가 필요해서 해당 부분을 녹화해두었다가 나중에 텍스트로 받아적고, 영화는 문장 이외에 장면이나 연출 기법, 배경음악이 문장과 어우러졌을 때가 좋아서 휴대폰 메모장에 따로 적어둡니다. ‘길 위의 셰프들 - 오사카 - 29분 마무리 멘트, 연출’ ‘you 너의 모든 것 - 7화 뒷부분 대사’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땐 한 곳에 폴더로 정리해서 모아둬요. 모아두고 싶은 문장이 많기 때문에 정리해두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으로 잘 정리를 해두는 편입니다.

그렇게 모아둔 문장은 가끔 꺼내어 보면 지친 하루에 큰 위로가 되기도 해요. 그 콘텐츠의 스토리가 다시 머리에 펼쳐지기도 하고요. 모아둔 문장을 다시 읽을 땐 문장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 재생되는 느낌이에요. 한 조각을 붙잡아뒀을 뿐인데 그때의 기억까지 저장해놓는 느낌이라 문장을 모으는 일은 멈출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문장에 더해진 작가님의 섬세한 생각들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문장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던 경험이 있을까요?

책에는 싣지 못한 문장인데, 제가 신입사원일 때 늘 붙여두던 문장이 있어요. 그 문장을 붙여놓은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였어요. 신입사원이라 부족하고 못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때는 그걸 견디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나도 선배들처럼 잘하고 싶고, 한 사람분의 일을 해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고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마음가짐을 바로 잡아준 건 "천 번의 실패 후, 한 번을 성공시키는 기쁨을, 프로는 알 수 없겠지"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외국 뉴발란스의 카피인데요, 아마추어 선수의 굳은 마음가짐을 볼 수 있는 문장이었죠. 당시의 저도 아마추어여서 이 문장은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신입사원 시절, 힘들었던 이유가 비교 대상이 프로인 선배에게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불행했던 거죠. 그런데 위 문장을 보고서는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해야 맞는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그때부터는 덜 힘들었죠. 내가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해내려고 노력했어요. 어딘가의 스포츠 브랜드의 문장이 한국의 초보 카피라이터의 가치관을 바꿔놓은 거죠.

그 자체로 멋진 문장도 좋은데, 일상 속에 녹아 있는 평범한 문장들이 더 와닿는 경우도 있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미디어를 타고 나오는 문장들은 표현이 유려한 문장들이 많아요. 광고 쪽으로 가면 더욱 그 완성도와 아름다움은 커지죠. 그런데 우리가 매일 주고 받는 말은 수수하고 꾸밈없는 살아 움직이는 단어들의 연속이잖아요. 그래서 가끔 정제된 문장을 보다가 일상의 문장을 보면 오히려 생경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문장의 힘도 좋지만, ‘툭’ 하고 무심히 던진 말 속에 담긴 메시지는 또 다른 파괴력이 있더라고요. 그런 문장들은 계속 머리에 맴돌아요. 기억하기도 쉽고요, 이해하기도 쉬워요.

그래서 가끔 영화나 드라마 속 문장들보다 누군가의 대화나 길을 걷다 만나는 어느 가게 앞 무심한 알림 문구에서 더 큰 감동을 받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아래는 숭실대학교 앞에 있던 가게 주인 할머니께서 붙여 놓은 폐업 인사입니다. 읽어보시면 제가 말하는 일상 속 문장의 깊이와 따뜻함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할매 → 집으로. 모든 것이 미흡했음에도 꽉차고 넘치도록 시골집을 성원해준 여러분, 고마웠읍니다. 여러분과 함께한 긴 세월 참으로 행복했읍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나마 밥 잘먹고 건강하고 추구하는 일에 골인하기를 빕니다. 나는 손자들과 노닥거리며 세월을 보내겠어요.

 _시골집 할매



자기만의 취향, 삶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그때 문장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많은 미디어로 송출된 콘텐츠를 보고 자란 만큼, 보여지는 것에 익숙했고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어요. 유행이라고 하면 유행인가보다, 요즘 다들 이 노래를 듣는다고 하면 그걸 들어야 되나 보다. 이렇게 흘러가는 흐름에 그대로 몸을 맡기는 편이었죠. 그런데 그게 정말 무서운 일이라는 것도 최근 제가 모은 문장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BBC 인터뷰에서 김이나 작사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열된 것들로부터 취향은 지켜내야 하는 것이었고, <대화의 희열> 지코 편에서 지코가 했던 말처럼 취향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어요. 세상의 흐름을 좇아가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 기준으로 자신의 영역과 취향을 구축해나가는 건 결정권이 나에게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누가 좋다고 추천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힘. 취향 결정권이 스스로에게 있는 주체적인 삶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해 더 오래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즐겁고 싶을 때 즐거울 수 있는 삶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취향을 떠나 무엇이든 나를 힘내게 할 수 있는 결정권이 내 안에 있다는 건 인생의 즐거움을 판가름할 사소하지만 커다란 차이라고 봐요.

마지막으로 올해 생일에 맞춰 정식 단행본을 출간하게 된 소감 부탁드리고, 책 속 문장 중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 딱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생일마다 지인에게 선물했던 책이 편집자님과 출판사의 도움으로 정식 출판도 11월 15일, 제 생일에 맞춰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사실 이건 저만 아는 기쁨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주시다니 정말 지독한 ‘세계관 지킴이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웃음) 생각해보면 이 책의 탄생에서 생일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의미 있는 배려를 해주신 것 같아요. 그런 배려로 만들어진 이 책이 가능한 많은 분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제 이름 하나만 써 있지만,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데에는 수많은 저의 친구들과 수많은 제작자의 노고가 있었음을 저는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은 문장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문장이에요. 앞서 말한 주체적인 취향의 힘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답을 멀리서, 남에게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나를 다독일 힘과 나를 나아가게 할 답은 우리 안에 있는 지도 모르니까요.

‘우리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지?’라는 질문은 정답이 정해져 있어요. 의미 없어요. ‘내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라는 질문은 각자의 답이 있는 문제예요. 그러니까 답을 찾을 수 있어요. 허무한 답이 있는 잘못된 질문으로 오랜 시간 고민하기엔 인생은 짧아요. _예능 <대화의 희열> 시즌2 유시민 편



*오하림

무언가를 깊게 좋아하진 못하지만, 그 힘으로 얕지만 많은 것에 관심을 쏟는다. 그걸 모두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메모를 시작했다. 그렇게 모아놓은 수천 개의 문장들이 나를 이 직업으로 이끌어준 것 같다. 현재, 훌륭한 선배들이 많은 광고회사 TBWA KOREA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나를 움직인 문장들
나를 움직인 문장들
오하림 저
자그마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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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