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구미가 당기는 동시에 살짝 입맛이 쓰다. 여성이 주인공인 정치 드라마가 반갑긴 한데 굳이 ‘여총리’라니, 그냥 ‘총리 비르기트’로는 한국 시청자의 흥미를 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여총리 비르기트>의 원제 ‘Borgen’은 덴마크어로 ‘성(城)’을 뜻하며,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자 의회 의사당으로 쓰이는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안스보르성을 가리키는 동시에 정부를 의미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덴마크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하게 된 온건당 대표 비르기트 뉘보르(시세 바베트 크누센)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며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의 본성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쥐여줘 보라”는 링컨의 말은 많은 정치 드라마 주인공이 오르는 시험대와 같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랜시스 프랭크 언더우드 정도를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웨스트 윙>의 제드 바틀렛이나 <지정생존자>의 톰 커크먼처럼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문제는 정치판이 세상의 모든 이해관계가 모여드는 세계라는 점이다.
게다가 다당제 국가인 덴마크에서는 단일 정당이 내각을 구성하기보다 복수의 정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소수당 대표이면서 소속 정당이나 자국의 이익을 넘어 정치의 사회적 책임을 깊이 고민하는 비르기트는 매 순간 딜레마에 부딪힌다. 여성임원 할당 법안과 경제적 타격, 독재자로부터의 투자 유치와 반독재인사의 인권, 법을 어긴 관료와 실수를 저지른 동지 등 최소한 둘 중 하나의 패는 버려야 한다. 이 성에 ‘친구’란 없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도 정보와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비르기트는 “때로는 그저 자신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거든요”라는 오랜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정치적 선택으로 인한 자기혐오는 그가 견뎌야 하는 괴로움 중 하나다.
비르기트가 총리로 활약하는 동안 그의 가정에는 계속 균열이 일어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자서전 『동행』에 이렇게 썼다. “정치는 배우자에게 최대의 경쟁자였다. 그리고 자녀들에겐 최대의 적이다.” 비르기트의 남편 필리프(미카엘 비르키에르) 역시 대학 강의와 가사노동, 육아를 병행하며 배우자를 헌신적으로 지원해왔지만, 혼자 가정을 지키며 총리의 그림자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점점 지쳐간다. 어린 아들은 문제 행동을 일으키고, 사춘기인 딸도 반항적으로 굴기 시작한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비르기트에겐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다. “의회의 우리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현대의 가정을 대변하는데, 정치가의 배우자는 집에만 박혀 살아야 해요”라는 비르기트의 측근 벤트(라르스 크누트손)의 말대로 “끔찍한 모순”이다. 그런데 이것이 뚜렷한 갈등으로 서사의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남성이 여성 배우자를 ‘내조’하는 상황의 긴장감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비르기트와 필리프 사이의 갈등은 그동안 남편의 정치 인생을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여성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나? 그들은 각자 원하는 삶이 없었을까? 그 여성들도 필리프처럼 분노를 폭발시켰을까? 정치가 가정생활에 결코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미셸 오바마 역시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TV를 보거나 신문을 읽다가 정치에 삶을 바친 가족들의 모습을 접하면-클린턴, 고어, 부시 가와 옛 케네디 일가-나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들의 뒷이야기는 어땠을까 궁금해했다. 다들 멀쩡했을까? 행복했을까? 저 미소는 진짜였을까?” (<비커밍>)
2010년에 방송된 드라마인 만큼 지금 기준으로는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지점도 있지만, 한 국가의 수장이자 일하는 여성,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인간의 삶을 정공법으로 그려낸다는 면에서 <여총리 비르기트>는 찬찬히 따라가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방송된 다음 해인 2011년, 덴마크의 첫 여성 총리 헬레 토르닝 슈미트가 취임했다는 사실을 알고 본다면 좀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비르기트의 모델은 당시 덴마크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현 EU 반독점 집행위원장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2013년 정계를 은퇴했다가 돌아온 비르기트가 외무부 장관직을 얻어내며 시즌 3이 마무리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2022년에는 드디어 새 시즌이 방송될 예정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만나지도, 어딘가로 나갈 수도 없어 그 어느 때보다 한가해진 2020년의 마지막을 비르기트와 함께해보자. 세상 온갖 걱정거리와 마주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대책을 찾아 나가는 그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를 둘러싼 문제 또한 조금은 견딜만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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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칼럼니스트)
대중문화 웹 매거진 <매거진t>,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의 책을 썼다.
gripyce
2021.01.01
제 개인적인 생각에 '여'를 붙인 이유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호사를 이야기할때 '남자 간호사'라는 말을 많이하는 것처럼, 특정 성별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때 그의 성별이 그 절대다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그 성별을 붙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어떤 명사 앞에 '여' 또는 '남'을 붙이는 것에 누군가에게 쓴맛을 주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제가 여유증을 가진 남자들을 위한 브레이지어를 판다면 분명히, 남브레이지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