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사려 깊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읽었다. 이다혜 작가의 인터뷰집 『내일을 위한 내 일』. 전작 『출근길의 주문』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필요한 말과 글을 이야기했던 그는 『내일을 위한 내 일』에서 각별한 성취를 쌓아 온 7인의 여성을 만나 일에 관한 생각을 들었다. 7명의 인터뷰이는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 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작가 정세랑, 경영인 엄윤미, 고인류학자 이상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인터뷰이의 선정 기준은 가능한 한 연령과 분야를 다양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다혜 작가는 “동시대에 한창 일하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진행형의 커리어를 쌓는 이들의 여정을 가능하면 과대 포장하지 않고 전하는 것으로 본분을 다할 수 있다고 믿으며.(10쪽)”, 『내일을 위한 내 일』을 집필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 청소년,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진로에 관한 고민이 사라지지 않는 직장인, ‘일을 잘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이다혜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모두가 불확실성을 갖고 시작한 일
창비 청소년출판부로부터 제안을 받고 기획한 인터뷰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책을 쓰고 싶으셨는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진로를 정할 때 무엇을 보고 성장했느냐의 영향을 주로 받습니다. 부모님의 직업, 친척들의 직업, 친구 부모님의 직업, 동네 유망 업종, 시대 유망 업종에 따라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비를 부모님이 내니까 진로를 정할 때 아무래도 부모님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되기도 하는데 부모님도 본인 경험 말고는 잘 모르는 일이 흔하고요.
『내일을 위한 내 일』을 쓴 가장 큰 목적은, 10대와 20대 독자분들께(그리고 사실은 제 자신에게도) 너무 한 번에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내일을 위한 내 일』에 실린 사람들의 경험을 보면, 애초에 원하던 일을 한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는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일을 잘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안전한 길을 확인하느라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보는 것이 확실한 해결책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간 인터뷰를 많이 하셨지만, 단행본 인터뷰집 출간은 처음입니다. 다른 에세이를 쓸 때와 어떻게 달랐나요?
매체에 소속되어 일하다 보니 인터뷰 진행을 오래했는데요. 매체에서 진행하는 인터뷰는 ‘근황’과 ‘신작’에 관련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일을 위한 내 일』 인터뷰는 일하기, 진로, 커리어에 관련한 이야기를 담으면서 일 중심의 삶을 글로 옮긴 경우입니다. 50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으로 골랐고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자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자신이 드러나는 글쓰기에 대해서는 늘 부담이 있었습니다. 에세이라는 글의 양식이 제가 전달하려는 많은 이야기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져 선택하기는 했지만, 더 큰 틀에서 데이터나 자료, 이번처럼 인터뷰를 바탕으로 저보다는 다른 사람을, 세상을 보여 주는 방식의 글쓰기에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드러내는 또 다른 방법일 테고요.
책에 실린 7명은 모두 여성입니다. 인터뷰를 하며 작가님이 느낀 7명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내일을 위한 내 일』에서 만난 7인의 가장 큰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여성들이 진로를 정할 때는 첫 번째 질문에서 답한 것에 문제가 하나 추가되거든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해라”라는 말이 여성들에게는 “가정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 될 때가 많습니다.
남편이 싫어하지 않을 일,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 그 말은 결혼할지 생각도 안 해 본 젊은 여성들의 직업 선택의 폭을 확 줄여 놓습니다. 범죄자를 만나는 일은 아니라고 봐. 애 키우면서 회사 경영은 어렵지. 집에서 서포트 안 하면 미국 유학은 안 돼.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시집가기 좋은 진로도 많은데 왜 커피숍 일을 직업으로 삼아? 여자 프로 리그가 돈이 되나? 영화감독은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하는 거라며? 소설가가 되면 굶어 죽기 딱이라던데. 여자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끼어들어서 한마디씩 합니다. 걱정하는 말에 압사당할 지경이 되고, 어느 순간에는 결정도 책임도 남에게 미루고 싶어지거든요.
그러지 마시라는 뜻에서 『내일을 위한 내 일』의 여성들을 선정했습니다. 저렇게 멀리까지 가 본 사람들도 여러분과, 나와 똑같은 불확실성을 안고 시작했고, 수많은 걱정 오지랖의 말들과 달리 자기 일을 만들었다고 ‘보여 주고’ 싶었어요.
직업인으로서의 태도가 읽히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성과를 이야기하는 내용보다 어떤 일을 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많았는데요. 작가님이 집중해서 담고 싶은 것은 인터뷰이의 어떤 면들이었나요?
책에 실린 일은 일곱 가지뿐입니다. 일곱 사람이 거쳐 온 일을 합하면 더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직업을 아우를 수 없어요. 게다가 『내일을 위한 내 일』 인터뷰이들은 모두 자기 직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의 성공은 일반화되기 어려워요. (제가 꼭 해 보고 싶은 인터뷰 프로젝트는 보통의 여자들이 하는 보통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엮는 것입니다. 뉴스 검색해서 나오는 사람들 말고, 처음으로 이름이 매체에 언급되는 사람들의 삶과 일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하지만 뛰어난 성취를 거두었다고 해서 『내일을 위한 내 일』의 일곱 사람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양손에 든 것 중 무언가를 택하는 결정을 하는가 하면 버리는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은 그런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민하고, 책임지고, 용기 내고, 버텨 낸 시간을 담고 싶었습니다.
녹취를 풀면서, 정말 기억에 남는 문장, 말 한 마디가 있나요?
책에서는 뺐는데, 이수정 교수님이 인터뷰를 하면서 “뚝심이 있는 게 중요한 거 같아. 뚝심 있게 가다 보면, 흘러 흘러 어디 가서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는 거지. 당신도 마찬가지잖아.”라고 말씀해 주신 부분이 있습니다. 팟캐스트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녹음 때를 제외하고는 문자 한번 주고받는 일이 없는 이수정 교수님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라고 하신 말씀이 엄청난 부담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했어요.
충분히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만성적인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지금까지 해 온 것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이제야. 전주연 바리스타 인터뷰는 사람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요. 좋은 것을 좋은 식으로 해 왔을 것처럼 보였던 전주연 바리스타가 과거 가족의 반대 등에 대해 언급하며 인터뷰 중에 몇 번이고, “보여 주겠어, 바리스타가 얼마나 대단한 직업인지.”라는 말을 반복하던 단호함을 잊을 수 없어요. 상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죠. 내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것.
흐름을 읽어 내면서 틈새를 잘 찾는 사람들
책에서 소설가 정세랑 작가님은 “글을 쓰는 사람이 모두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의 업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나 자신도 안 해치고 타인도 안 해치면서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편집자로서 얻은 제일 큰 교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작가님도 편집 기자로 일하시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기자라는 경험을 통해 작가로 데뷔하셨는데, 이점이 있었을까요?
『내일을 위한 내 일』의 정세랑 작가님 인터뷰는 저랑 생각이 같은 부분이 많고 많은데, 인용하신 대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편집 기자로 일을 할 때는 왜 다들 원고를 늦게 쓰는 것인지 분노를 느끼지만, 저 역시 글 마감을 제때 못 할 때가 있단 말이죠. 내가 하는 일의 티끌 모아 태산 같음은 잘 보지만, 남이 하는 일은 늘 중간 단계 없이 완성되는 듯 확신하는 일을, 경력을 쌓으며 하지 않게 됐어요. 주간지 편집 기자로 일을 한 경험의 가장 큰 장점은 기획하는 법과 타이밍의 중요성을 배운 것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글을 다루는(읽고, 쓰고, 편집하고) 법을 익힌 것 역시.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작가로서, 7명의 여성과 인터뷰를 한 일이 큰 도움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새롭게 알게 된 점이나 인사이트를 준 내용이 있었을까요?
인사이트를 얻은 부분은 C프로그램의 엄윤미 대표님과 한 인터뷰인데요.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소통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정해 놓고 정확하게 사용하는 편이 좋다는 것. 때로는 그것이 가치에 대한 모호하고 추상적인 단어라 하더라도, 같은 가치를 반복해 공유하고 언어화하는 습관이 조직원 모두에게 중요해요. 한국에서는 이런 사실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어서 기분대로 말한 뒤 서로 다른 단어를 그게 그거라면서 뭉뚱그려 사용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팀이나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특히 정확한 언어를 선별해 반복해 공유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일을 잘한다는 것의 정의는 사람마다, 조직마다 다를 거예요. 하는 일의 성격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어느 일이든 오래 하다 보면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능력만큼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능력을 요구받게 되고, 사람을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오래 일한다는 건 내가 목표로 한 적이 없는 일들을 핸들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조직 내 소통이 안되는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은 소통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도 높아요. 소통해서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튕겨 나가니까.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은 직장 내 성추행에 대해서 묵인하고 차라리 퇴사하는 편이 공론화하는 것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았고요. 그런 때 일을 잘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의 팔다리를 묶는 말로도 쓰인답니다.
조직 내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따돌림을 당하는 동시에 일을 못한다는 낙인을 가장 먼저 받는다는 것도 기억하세요. 일을 잘한다는 말 자체가 때로는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직장인이라면 승진, 이직, 연봉 인상, 자영엽자라면 사업 확장, 프리랜서라면 소득 인상 등을 기준으로 일을 잘한다고 평가하겠죠. 제가 일을 잘한다는 기준은, 흐름을 읽어 내면서 틈새를 잘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건 제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일 거예요.
작가님께서 기자를 그만두시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면 작가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콘텐츠 기획과 관련된 일을 더 하고 싶어요. 영화나 드라마, 단행본 무엇이든지.
『내일을 위한 내 일』을 가장 추천하고 싶은 독자층은 누구인가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는 젊은 여성들에게 읽힐 수 있다면 가장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위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현역에서 일하는 여성분들께도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고요. 다른 여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일이 있어도 힘들고 없어도 힘든 여성들에게 권합니다.
같은 주제로 2권이 나온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2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있습니다. 정해진 게 없을 때는 말하지 않는 것이 기획의 기본!
그럼 확정된 출간 소식을 알려주세요.
지난해 완성해서 출판사에 넘긴 원고가 있고, 이제 시작해야 하는 원고가 있는데요. 어떤 책이 먼저가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감정에 대한 에세이가 여름쯤 나올 것 같습니다.
*이다혜 작가. 해가 갈수록 아침이 똑바로 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큰 변화 없이 살고 있다. 아직은 회사원. 주요 활동 분야는 글쓰기와 말하기다. 「한겨레」 공채 입사. 주간 영화전문지 「씨네21」, 주간 생활정보지 「세븐데이즈」, 월간 장르문화전문지 「판타스틱」의 편집, 취재기자를 거쳐 현재 「씨네21」에서 팀원 없는 편집팀장으로 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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