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의 어린 나이로 데뷔한 현아는 늘 관심의 한가운데 있었다. 2007년 원더걸스로 데뷔 이후 건강상의 문제로 탈퇴했을 때 한 차례 잡음이 있었고 이후 그룹 포미닛과 솔로 현아의 활동을 오가며 모종의 ‘선정성’ 혹은 ‘주체성’ 과 관련된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누군가는 짧은 상, 하의를 입고 골반을 튕기는 그의 대표곡 '버블팝'을 듣고 보며 눈살을 찌푸렸고 또 누군가는 환호했다. 전 비스트 멤버 장현승과 함께한 프로젝트 그룹 '트러블 메이커'의 ‘Trouble maker’ 도 그랬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현아가 파트너와 몸을 밀착시키고 추는 춤은 반응 이상의 반응을 이끌었다.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라는 의견과 ‘아티스트의 주체적 표현이다’ 라는 의견으로 갈렸다. 정숙한 매스컴들은 단정하게 옷깃을 매만지다가도 그의 곡을 코믹하게 패러디하곤 했다. 어쨌든 현아는 섹스 심볼로 소비됐다. ‘빨개요’, ‘Lips & hip’ 등 인기를 끈 노래들을 보면 그런 꼬리표들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한다.
1년 2개월 만에 발매한 이번 EP가 반가운 건 소모적이고 소비되는 스스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커리어 동안 그가 해석되는 대로 해석되는 위치에 놓여있었다면 ‘나답게 구는 게 왜 나쁜 거야’ 질문하고 자신이 굿 걸(Good girl)이 아니라고 말하는 수록곡 ‘Good girl’ 이 보여주듯 음반은 메시지의 진정성 여부를 따져 묻는 누군가를 촌스럽게 만든다. 그만큼 훌륭한 소화력과 매력적인 퍼포먼스가 가득하다. 타이틀 ‘I'm not cool’ 은 사실상 단순한 구조를 지녔다. 동양풍의 신시사이저라인이 주가 되어 1절과 2절이 무심하게 툭툭 떨어진다. 텅 빈 속을 채우는 건 퍼포먼스. 노래에 맞춰 표정을 바꾸고 곡으로 호흡을 당기는 탄탄한 댄스가 일품이다. 가사 속 은밀히 현재 애인을 끌어와 ‘새벽이 너무 좋아, Dawn dawn dawn’ 속삭이는 재치 역시 눈여겨볼 서사다.
그럼에도 또 누군가는 이 음반을 근래 경향의 일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있지(ITZY)의 '달라달라', 블랙핑크의 ‘Pretty savage’ 등이 외쳤듯 여자 아이돌들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발화를 음악을 팔기 위한 콘셉트로, 그리하여 상품 셀링 포인트로 지적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시선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작품 속 현아는 과거와 다르다. ‘나와 닮은 저 인형들이 왠지 모르게 슬퍼 보여’ 노래하는 발라드 ‘Show window’ 에서는 랩을 할 때와는 다른 목소리를 선보인다. 미드 템포의 ‘ Party, feel, love’ 역시 저음과 고음의 색감을 다르게 살리고 또 멋지게 그려냈다. 즉, 성숙했고 성장했다. 2014년 '빨개요'란 노래를 내며 원색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가 ‘Flower shower’ 에서 스스로를 다시 한번 ‘새빨갛다’ 호명하는 작품. 지저분하게 늘어지던 수식들을 밟고 서서 그간 쌓여왔던 시선의 권력을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여자 아이돌들은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이들의 음악을 즐길 때 간혹 찾아오곤 하던 찝찝함은 이 노래 속에 어쩌면 뮤지션의 소리가 지나치게 억압되고 착취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이유 있는 염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신보의 현아는 한층 자유로워 보인다. 심볼을 정면 응시하고 뮤지션으로의 자아를 위에 세워 힘 있게 권력을 쟁취해냈다. 어쩌면 파워를 얻어가는 과정 중의 주체일지도 모르겠다. 성적으로 덧대지던 심볼을 너머 다시 만들어 낸 심볼. 쿨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그의 현재를 계속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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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