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소개할 사건은 내년이면 국민학교에 간다고 부풀어있던 때의 일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던 해에 초등학교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했으니 꽤 옛날이다.
동네 골목에서 놀고 있었던가 아니면 슈퍼마켓에서 콩나물 500원 어치를 사오는 심부름 중이었던가. 익숙한 길을 따라 집으로 오다 자동차 범퍼에 허벅지를 부딛혔다. 상가에 주차하려고 서행하던 차였지만 꽤 커다란 타격음을 내며 나를 쳤다. 소리에 놀 라 다리를 내려다보니 굉장한 무게가 들어왔다 나간 듯 얼얼했다.
소리와 촉감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전달되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우락부락한 운전자의 얼굴. 40대 중후반의 아저씨였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를 원망하는 눈코입에서 금방이라도 욕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왜 거기 서 있었냐고 혼날 것이 분명했다.
나의 선입견이었을까? 하지만 분명 일곱 해, 아니 온전한 분별 능력을 갖추고 세상을 관찰한약 2, 3년의 경험에 의하면 그런 상황에서 아저씨들은 보통은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온전한 분별 능력을 갖추고 세상을 관찰한 약 2, 3년의 경험에 의하면 그런 상황에서 아저씨들은 보통은 화내며 욕을 했다.
아저씨에게 혼날 것 같다는 이유로 나는 잽싸게 집을 향해 달렸다. ‘달릴 수 있을 정도였으면 크게 안 다쳤나 보다?’라고 그 시절 나에게 물어봤는데, 소녀는 당시 감각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아팠는데, 거기 서 있었다고 혼나는 게 더 무서웠다.’라고.
피해자가 뺑소니해버린 초유의 사건. ‘화난 어른’이 주는 공포는 아픔도 잊고 내달리게 하는 힘이 있었던가. 집으로 돌아와 얼얼한 다리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불안했다. 이번엔 또 다른 경험을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엄마에게 혼날 일이 두려웠다.
‘그러게 주변을 제대로 살피고 다녀야지.’ ‘왜 도망쳤냐. 아저씨, 우리 엄마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그런 말도 똑바로 못 하냐. 그래서 내년에 학교는 어떻게 가냐.’ 등의 꾸중이 대충 그려졌다. 이 또한 본격적인 훈육이 시작된 지난 2, 3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확률은 99.999%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벅지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놀이터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진 것과 자동차에 부딪힌 것은 사건의 크기가 엄밀히 다르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게 했다. 이 크고 무거운 사건이 혼자만의 비밀이라니. 힘에 부쳤다. 결국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엄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예견한 시나리오대로 혼났다.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하냐.” 까지 덤으로.
나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읽어내고 두려워했다. ‘아저씨 저 방금 부딪친 거 너무 아파요.’라고 말하며 멀뚱멀뚱 서 있었어도 됐을 나이. 아니, 그 자리에서 냅다 울었어도 자연스러웠을 나이.
사람들의 표정과 지난 경험으로부터 뭘 그리 읽어내려고 했을까? 아마도 소란을 덜 일으키고, 모두가 행복한 방법을 꾀했던 것 같다. 비록 내가 아프다는 말을 못 하더라도 말이다. 이 사건은 내 기억 속에서 금방 잊혀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말을 못 했는지도 잊은 채 잘 살았다. 어린 시절이었으니 살았다기보다는 자랐다고 하는 게 맞겠다.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불현듯 이 사건을 꺼내보게 된다.
여름이었다. 가족 모두 가까운 바다나 계곡으로 피서를 하러 갔다. 하지만 나는 방학에도 보충 학습을 하러 학교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며 자연스레 열외가 됐다. 부모님은 초등학생인 동생만 데리고 여전히 바다로 산으로 다니셨다. 하루는 집에 와보니 엄마가 팔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표정을 하고 있으니 동생이 재잘댔다. 가족 모임으로 계곡에 놀러 갔는데, 엄마는 물에 들어가지 않았단다.
“그래도 이까지 왔는데 발이라도 담가 보이소.”
아빠 친구가 엄마를 물가로 끌었고, 엄마는 정말로 물에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 한사코 내뺐다고 한다. 그러다 휘청하며 넘어졌는데 그때 돌을 잘못 짚어 손목이 삐끗한 거란다. 나는 바로 알아챘다. 엄마가 생리 중이라 물에 안 들어갔다는 걸. 엄마가 참 안됐다고 생각하던 찰나 아빠가 넌지시 덧붙였다.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느그 엄마가 얼마나 울던지….”
화들짝 놀랐다. ‘울었다고? 울어도 된다고? 봉변을 당하면 울어도 되는구나. 상대방이 어른이어도 내가 어른이어도 상관없는 거구나.’ 머릿속에 불꽃이 확 튀었다. 그리고는 차에 부딪히고도 냅다 집으로 도망간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그때 나도 울었어야 했는데. 갈 수만 있다면 아저씨 표정이나 살피던 어린 나에게 가고 싶었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프면 울어. 지금은 우는 게 맞아. 아저씨가 너를 혼내는 상황이 아니라 네가 아저씨를 혼내는 상황인 거야. 울어, 울어.”
너무 늦어서 전할 수 없는 불발언은 거의 계몽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우리만치 귀엽지만, 당시에는 너무 대단한 걸 깨달아 온 세상이 훤해진 것 같았다. 내가 거기서 주저앉았어야 아저씨가 비로소 “많이 아프니? 걸을 수 있니? 부모님께 전화해서 오시라고 할래?”라고 물었겠구나. 엄마도 곧장 달려와서 나를 안았겠구나. 그래 울어도 되는 거였어!
아프면 울어도 된다. 아픈 만큼 누워도 된다. 다른 이의 표정을 살피느라 나의 공포, 아픔, 불만을 꿀꺽 삼키며 불발언을 남겨선 안 된다. 이건 기억 속 어린 소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통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곁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노리니까. 어떻게 그 불편함을 해소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렸다. 날벼락 같은 아픔을 다르게 처리한 두 친구의 발언을 소개한다. 하나는 통쾌한 명발언이고 하나는 슬픈 명발언이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나란히 하교하던 중이었다. 아니, 보충 수업을 째고 놀러 가던 길이었나? 아무튼 우리는 길을 걷고 있었고, 10미터 앞에는 주차된 차와 한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는 차 실내를 정리하던 중이었다(의도한 건 아닌데 이런 기억 속의 객체는 늘 아저씨다. 그들은 내가 살아오며 부딪혀야 했던 어떠한 ‘대상’이었던 건 분명하다).
아저씨는 지나가는 우리를 미처 못 봤는지, 차 안에 깔아 놓은 시트를 밖으로 꺼내 확 털었다. 공중에 흩날린 온갖 먼지와 쓰레기가 우리 얼굴을 강타했다. 다음엔 더 불편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알아서들 피해서 지나가지 왜 이리로 걸어왔냐는 듯한 아저씨의 표정. 다들 경황없이 캑캑 댈 때 한 친구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
“아저씨!!! 사람 다니는 길에서 이런 걸 털면 안 되죠!!!”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친구가 멋있어서 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어른한테 저렇게 말해도 되는 거구나. 하긴 잘못은 아저씨가 했으니까.’라는 깨달음과 함께. 당시엔 몰랐는데, 곱씹어 보니 친구는 우리를 사람이라고 칭했다. 어른 대 아이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 구도에서 생각하고 분노한 거다. 친구의 말에 그저 감탄할 뿐인 나와, 사람으로서 마땅히 화를 낸 친구. 불발언과 명발언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또 다른 발언은 대학생 시절 전해 들었다. 광고회사에 입사하길 희망하는 학생들은 철마다 공모전에 참여했다. 전략을 세우고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를 도출해 이를 PPT로 완성해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소개할 발언의 주인공 역시 형들과 함께 공모전에 참여했다. 당시 시각디자인 전공이었던 그는 PPT 디자인을 도맡았다. 이런 부류의 작업이 늘 그렇듯, 마감 시간에 쫓겨 허덕였다. 며칠은 잠도 못 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계속 바뀌는 전략을 따라 디자인도 이리저리 수정해 달라고 주문해대는 형들. 그는 조금 쉬자는 말은 차마 못 하고 계속 디자인을 손보다 이런 발언을 남겼다.
“형, 저 속이 안 좋은데 토하고 와서 계속해도 될까요?”
나도, 아이도, 어른도, 누구도. 부디 이런 못 말리게 슬픈 발언이 나올 때까지 참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아프다고, 좀 쉬자고, 무섭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타박하지 않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괴로움에 대해 발언하지 못하는 곳에서, 공동체가 무엇을 거머쥔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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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미(작가)
어려서부터 글이 좋았다. 애틋한 마음은 말보다는 글로 전해야 덜 부끄러웠고, 억울한 일도 말보다는 글로 풀어야 더 속 시원했다. 그렇게 글과 친하게 지내다 2006년,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2011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에세이 <오후를 찾아요>를 썼다.
rlaxhd
202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