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들어 낸 기적에 대한 이야기, 아이유의 LILAC
아티스트 본인이 언급하듯, 신작은 그야말로 '20대를 닫는' 앨범이다. 흔히 가장 찬란하다고 여겨지는 연령대를 거치며 느낀 사랑과 삶의 태도, 이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다짐을 빼곡히 채워 놓았다.
글ㆍ사진 이즘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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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로 만든 꽃'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가수로서의 10년을 담아낸 이 앨범이 나의 10년 또한 되돌아보게 만드는 탓이다. 이번까지 그의 작품을 글로 남기는 것도 벌써 여섯 번째. 선율로 수놓은 언어들에 대한 답장을 꽤나 꾸준히 써내려 온 셈이다. 그리고 한 챕터를 정리하는 소회를 마주하니, 이제서야 그의 노래들이 결코 적지 않은 삶의 실마리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 나만이 느끼는 감상은 아닐 것이다. 환호의 데시벨은 달랐더라도, 그의 음악이 새겨져 있는 인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티스트 본인이 언급하듯, 신작은 그야말로 '20대를 닫는' 앨범이다. 흔히 가장 찬란하다고 여겨지는 연령대를 거치며 느낀 사랑과 삶의 태도, 이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다짐을 빼곡히 채워 놓았다. 자신의 메시지나 의도를 강하게 심어 놓는 음악적 지향점도 여전. 감상이 반복될수록 듣는 이의 자아에 개입되며 여러 갈래의 공감 및 해석을 낳게 하는 속성은 이전과 일맥상통하다.

그렇다고 표현방식까지 반복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부 인재 중심의 작업방식에서 탈피, 외부스탭을 대거 영입해 다채로움을 더했다는 점이 포인트. 특히 아이돌 그룹에서 흔히 쓰는 다인 협업 기반의 트렌디한 사운드 이식이 가장 큰 변화라 할 만하다. 이는 선공개곡 'Celebrity'를 통해 어느 정도 예고되기도 했던 내용. '화려함'을 더하고 싶었다는 말처럼, 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사운드 메이킹이 우선적으로 캐치되는 부분이다.

부족하다 싶을 정도의 미니멀한 비트와 호흡을 적절히 활용한 보컬 간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이색적인 'Flu', 두아 리파의 'Don't start now'가 떠오르는 밴드 편성의 그루브한 디스코 넘버 'Coin' 등은 그런 절치부심이 꼼꼼하게 구현된 트랙들. 더불어 발음이나 억양에 강조점을 둔 보컬 운용 또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케이팝 프로덕션의 스탠다드를 자신에게 맞는 옷으로 재단하기 위해, 가창의 주안점을 가사 전달보다는 곡 무드와의 조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초면에는 굳이 아이유까지 이러한 작업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끝끝내 인정할 만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역량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두 번째 챕터는 바로 동료 뮤지션과의 협업. 이번에 호흡을 맞춘 파트너들의 면면을 보자면, 확실히 블랙뮤직에 포커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빈티지한 키보드 루프로 현실감 있는 연출의 연인관계를 투사하는 '돌림노래'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얼의 취향이 전면에 드러나는 '봄 안녕 봄'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고전적인 악기 구성과 중저음 위주의 단단한 목소리로 완성한 레트로 소울 발라드가 큰 여운을 남기는 덕분이다. 인트로를 듣자면 휘트니 휴스턴의 여느 넘버가 생각날 법도. 이처럼 리듬이 부각되는 결과물의 비중을 높여 생생하고 역동적인 음악상을 그려내고자 했으며, 듣는 입장에서는 전작 과의 구분점으로도 인식이 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역시나 그가 남기는 메시지들이다. 특히 전하고자 하는 심상과 이를 보조하는 음악과의 호흡은 놀라울 만큼 정교히 들어맞는다. 'LILAC'은 펑키한 곡조로 빚어낸 화사한 분위기 아래 열렬히 사랑했던 20대와 작별하는 '환희'를, '어푸'는 오마이걸이 부른 'Dolphin'의 답가 마냥 음절 반복을 통한 프레이즈로 현 시점에서의 '의연함'을 이야기한다. 모두 과거의 경험으로 성장한 지금의 자신이 반영된 자화상 같은 노래들.

그 서사의 절정을 상징하는 '아이와 나의 바다'의 드라마틱함은 가장 큰 소구력을 갖춘 지점이기도 하다. 장엄한 스케일 속 망망대해로 뻗어 나가는 울림이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된 지난 10년의 여정과 맞물려 큰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에 함께 해 온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에필로그'라는 이름의 엔딩 크레딧까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듣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하는 대중적 감각을 어김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양한 것들을 큰 계산 없이 수록한 느낌이라 다소 어수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커리어 기반의 스토리텔링이 부여하는 통일성과 몰입감이다. 많은 것을 이뤄온 10년. 누군가는 지금의 성과가 있었기에 '미련 없이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해주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쉬는 시간 없이 부딪힌 자기주도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꾸준히 쌓아 올려 구축한 '리얼리티'야 말로 이 작품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싶다.

흔들리더라도 결국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뚜렷한 자기주관. 안정을 피해 반보 정도 앞서 듣는 이들을 이끄는 파격. 이 두 축이 일궈낸 20대의 마지막. 일견 화려하게만 보이는 작품의 이면에는, 과거의 혼란을 딛고 기어이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 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피어난, 그리고 지금의 커리어를 다시금 갱신해 낼 인간 이지은의 실루엣이 투영되어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일어났던 기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노력으로 일궈낸 필연이었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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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