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심채경 천문학자의 에세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심채경 천문학자 편>
오늘 모신 분은 <네이처>가 주목한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어갈 세계 5인’에 선정된 천문학자입니다. 20여 년간 목성, 토성, 혜성, 타이탄, 성간과 달과 수성을 누볐고, 그렇지만 우주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 자신의 방식으로 우주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심채경 천문학자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제가 이 책을 너무 좋게 읽었는데요. 어디서 이런 분이 나타나셨는가, 이게 일단 너무 궁금해요.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뭐였나요?
심채경 : 외부의 강압에 의해서 쓰게 되었고요. (웃음)
김하나 : 그 외부의 강압의 주체는 누구였나요?
심채경 : 저의 담당 편집자님이신데...
김하나 : 지금 담당 편집자님이 나와 계시기도 한데, 어떻게 담당 편집자님이 신통하게 글을 잘 쓰는 이런 박사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시게 됐을까요?
심채경 : 제가 신문에 화성에 관련해서 기고를 할 일이 한 번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연구자였기 때문에 제 전공 분야를 물어 물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혹시 있느냐’ 해서 연결이 되어가지고 한 번만 나가는 칼럼을 썼는데요. 그걸 우연히 지금의 편집자께서 보시고 무작정 저한테 메일을 보내셔서 문학동네 출판사인데 한번 만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다가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척하면서 나가서 만났죠. (웃음) 저한테는 ‘문학동네 출판사입니다’라는 메일이 거의 네이처에서 인터뷰하자는 메일처럼 들렸거든요. ‘이게 스팸일까?’를 생각해야 되는 메일이었어요. (웃음) 그래서 일단 만났는데, 왜냐하면 저는 책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책벌레한테 큰 출판사의 이름이 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만나러 나갔는데 저한테 책을 쓰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해주셨어요. 저는 약간 겁이 없는 스타일이어서 기회가 되면 또 ‘해보지, 뭐’ 이런 성격이기는 해요. 그래서 ‘기회가 왔는데 해보지, 뭐’ 이러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고민을 많이 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죠.
김하나 : 일단 하겠다고 얘기를 해놓고 이후에 고민을 하시는 타입이로군요.
심채경 : 네, 그렇습니다.
김하나 : 책에도 보면 천문학자가 되셔서 타이탄을 전공하시기까지 여러 가지의 우연이 겹쳤는데, 이 말도 너무 재미있어요. 스케일이 너무 큰 거죠. (교수님이) ‘누가 타이탄을 좀 할래?’ 이렇게 물었을 때, 두 글자로 대답을 하셨죠. ‘저요!’라고 대답을 하셨죠. 그때도 그게 어떻게 될지는 모르고 일단 대답을 하셨던 거겠네요?
심채경 : 네, 저의 타고난 성격인 것 같아요. ‘해보지, 뭐’, ‘어떻게 되겠지, 뭐’ 이런 성격이어서. 약간 이런 성격이어서 그때도 ‘타이탄 누가 할래?’를 했을 때 ‘저요!’ 그랬고, 사실은 그때 교수님께서 ‘누가 목성 할래?’, ‘토성 할래?’ 했어도 똑같이 ‘저요!’ 했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아, 얻어걸린 거군요. (웃음)
심채경 : 그렇죠. (웃음)
김하나 : 타이탄을 하게 된 것도, 카시니 탐사선이 1997년에 출발을 해서 7년 동안 항해를 해서 타이탄 근처까지 가서 어떤 자료들을 보내왔고, 그게 마침 대학생으로서 연구소에 출입을 하고 계실 때 그 시기가 맞았던 거였죠?
심채경 : 네. 제가 담당 교수님이랑 진지하게 뭔가를 해봐야겠다, 대학원을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카시니 탐사선이 도착을 해서 임무를 시작하던 때였어요. 저한테는 굉장히 우연이었죠.
김하나 : 그런 우연이 작동을 한 것인데, 저는 책에서 표현을 해두신 방식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퀴즈 보기 4개를 제시를 하시면서 ‘천재다’, ‘어떤 성격 때문이다’ 이런 것 중에 4번이 ‘모든 것은 다 운명이었다’라고 쓰셨어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되게 다르겠죠.
심채경 : 네. 그렇죠. 이게 우연이었다고 생각하고요. 그 우연들은 돌이켜 보면 마치 정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잖아요. 당시에는 다 우연이었을 텐데 뒤돌아서서 옛날에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 마치 그게 다 나를 위해서 막 짜여져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도 그 영화를 볼 때는 그 생각을 잘 못했는데, 운전하고 가면서 라디오 듣다가 어느 소설가께서 라디오 프로그램이 출연해서 그 대목을 읽어주셨어요. 소설가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너였는데 그거 읽어주시는 걸 딱 들었는데 갑자기 그때의 생각이 딱 나면서 ‘이건 뭔가 나를 위해 읽어주신 것 같다’, ‘그 소설가의 라디오를 들은 것도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했죠.
김하나 : 문학동네 편집자님이 신문에 딱 한 번 글 쓰신 거를 보고 만나자고 제안을 했던 것도 운명적이죠.
심채경 : 그렇지 않을까요. (웃음)
김하나 : ‘주간 문학동’에 연재를 하셨습니다. 이미 연재를 하실 때 반응이 너무 좋았죠. 여러 반응들을 받지 않으셨어요?
심채경 : 네, 정말 깜짝 놀랐었고. 저는 사실 SNS에 가입은 다 했는데 활동은 안 하는 타입이거든요. SNS 하시는 분들은 항상 열정적일 때 에너지를 쓰시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SNS에서 ‘주간 문학동네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는 표현을 굉장히 열정적으로 해주셔서 저는 되게 깜짝 놀랐었어요. 이렇게까지 표현을 할 일인가, 이렇게까지 정말 좋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거에 힘을 많이 얻었던 것 같고. 그때만 해도 아직 책이 완성된 있지 않을 때였어요. 어떤 책이 나올지 여전히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을 때였고. 그런데 그런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이렇게 열정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데에 희망과 용기를 더 얻어서 ‘이 정도 써도 괜찮겠구나’, ‘나도 작가라는 거를 한 번쯤은 해봐도 괜찮겠구나’, ‘책 한 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런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김하나 : 언젠가 천문학에 대해서, 대중서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신 적이 없었는데...
심채경 : 네, 그런 생각은 해보지는 않았죠.
김하나 : 김상욱이 추천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천문학(天文學)은 문학(文學)이니까.” 저는 천문학이 앞의 하늘 천 자를 떼면 문학과 같은 한자를 쓴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천문학의 천 자를 대면 문학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작가는 지금으로서는 심채경 박사님이 유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채경 : 꼭 그렇지는 않지만, 추천사에 그렇게 적어주셨으니까 그런 걸로 할게요. (웃음)
김하나 : 일기를 많이 쓰시나요? 자주 쓰시나요?
심채경 : 요즘은 많이 못 쓰고요. 어릴 때는 많이 썼어요. 제 기억으로는 5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었고 매일 쓰지는 않았지만 항상 일기장이라는 공책이 있었어요. 힘든 일이 있거나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힘든 일이 있으면 일기 쓰면서 푸는 타입이었는데, 제가 항상 기분이 안 좋을 때 일기를 썼기 때문에 어느 날 보니까 일기에 다 안 좋은 이야기만 너무 많이 있는 거예요. 안 좋은 기억만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그리고 또 일기라는 것은 독자가 저 한 명뿐이잖아요. 이 유일한 독자가 이 일기라는 공책을 읽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다시 받는다면 이거는...
김하나 :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웃음)
심채경 : 그렇죠. (웃음) 그래서 스물두세 살 때쯤에 다 갖다 버렸어요. 그 다음부터는 인터넷에 아무 데나 쓰기도 하고 컴퓨터의 메모장에다가 쓰기도 하고 그냥 아무 데나 이면지에 쓰고 버리기도 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정기적으로 열심히 글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근데 이 책을 읽어보면 글을 많이 써오신 분 같다 또는 많이 읽으시는 분 같다고 누구나 느낄 것 같아요. 아까 책벌레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책을 읽는 취미는 예전부터 갖고 계셨던 건가요?
심채경 : 네, 거의 책을 읽는 게 저의 유일한 취미였던 것 같고 굉장히 오랫동안 책을 읽었고, 내용을 읽는 것보다 글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저한테 안식을 줘요. 그래서 어릴 때도 집에 책이 많지는 않아서 그냥 집에 있는 모든 책을 뭐든지 읽었어요. 부모님들의 어려운 책도 그냥 읽고,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읽고, 약병 뒤에 부작용 이런 거 쓰여 있잖아요. 샴푸 뒤에 화학제품 이름 이런 거 쓰여 있고. 그거 읽는 사람 꼭 있는데, 접니다. (웃음)
김하나 : 책의 제목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입니다. 이 제목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심채경 : 제목이 뭔가 반전을 주는 것 같다, 암시가 있는 것 같다, 재밌는 비유다, 이렇게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동료들은 ‘너무 사실을 적시했다’라고 했습니다.
김하나 : (웃음) ‘그렇지, 우리가 별을 보지 않지’ 이렇게요?
심채경 : 네. ‘당연한 거지’라고 이야기해주셨고요. (웃음) 천문학자들이 별을 보는 시간은 사실 1년에 며칠 정도밖에 되지 않고요. 관측을 주로 하는 관측 전문학자도 1년에 며칠밖에 별을 보지 않고, 나머지 시간은 그걸 분석하는데 또 다음 관측을 준비하는 데 씁니다. 시뮬레이션 같은 거 하시는 분들은 평생 망원경을 본 적이 없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그러니까 망원경이라는 물건은 보았지만 망원경으로 별을 본 적이 전혀 없는 천문학과 교수님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제가 책이 나오고 나서 저희 연구원의 윗분들한테 갖다 드렸더니 저를 보시면서 ‘안 그래도 내가 이 제목 이야기를 친구들이랑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국내에 별을 연구하는 학자가 별로 없대요. 천문학자 중에서 성단이나 은하, 저처럼 행성과학 혹은 태양 이런 걸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상하게 유독 우리나라 천문학에 별이라는 항성을 연구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편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또 ‘너무 사실을 적시했다’고. (웃음) 저는 모든 분들에게 너무 사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김하나 : 사람들의 반응이 각자의 전공 분야나 취향에 따라서 다 다르게 오는 거군요.
심채경 : 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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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