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임금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어린이 동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런 세종 임금이 누군가의 음모로 피를 빨아먹는 귀신, 흡혈귀가 되었다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상상력이다. 『조선 흡혈귀전 : 흡혈귀 감별사의 탄생』은 역사 속 인물과 고전을 화소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인 설흔 작가의 역사 판타지 동화로, 세종이라는 역사 인물과 열두 살 흡혈귀 감별사 ‘여인’을 통해 피와 욕망에 굶주린 흡혈귀를 물리치는 조선 흡혈귀 감별사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작가님 하면 뒤따라오는 수식어가 ‘고전을 공부하는 작가’, ‘고전에 상상력을 더하는 데 뛰어난 작가’인데요, 이번에 출간한 『조선 흡혈귀전 : 흡혈귀 감별사의 탄생』은 기존 작품의 연장선 상에 있으면서도 판타지 동화라는 점에서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지 들려주세요.
고전하면 아무래도 낡은 것, 오래된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가장 새로운 것의 집합처가 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파고 또 파면 언젠가는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이지요. 보물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된 장소를 파거나 발굴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늘 파던 곳이 아닌 다른 곳을 파다가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찾아낸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종 임금은 역시나 우리들의 영원한 멋진 왕인데요, 그러면서도 고기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 인간적인 매력을 더해 줍니다. 역사 속 여러 왕 중에 세종 임금을 선택한 작가님만의 이유가 있을까요?
세종은 세종이라고 불리지 않지요. 세종대왕, 혹은 성군 세종입니다. 지극히 보통 사람인 저는 그런 호칭이 왠지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세종의 결점을 찾기 위해 여러 자료를 뒤적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고기를 참 좋아하는 세종의 이미지입니다. 고기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그 느낌이 어렵고 고리타분한 자료 속에서 슬며시 고개를 들고 웃음 짓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이거다, 라고 생각했지요.
지금까지 어린이 문학에서 어린이 영웅을 만났지만 이 책 속 주인공 ‘여인’만큼 파격적이고 당돌한 인물이 있을까 싶습니다. 백정 신분에 파란 눈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한 열두 살 흡혈귀 감별사라는 주인공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여인’은 조선이 가장 무시했던 유형의 인물입니다. 신분은 천민, 그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백정이고, 남성이 아닌 여성이며, 부모도 없는 고아이며, 게다가 혼혈입니다. 그야말로 생존 자체가 기적인 인물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여인’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인물을 만들어 낸 이유는 역사는 이름 없는 이들이 만들어 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인’ 외에도 이 책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은 세종을 제외하면 모두 다 하위 계층입니다. 그 이유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여인’은 낯설고 기이한 모습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괴물 취급을 받았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는데요, ‘여인’의 이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특별히 ‘여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어린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판타지적인 요소는 ‘여인’의 활약이겠지요. 판타지라는 용어를 쓴 건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물의 모습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냉정한 판단,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럼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성격 등등. 앞서 말한 ‘여인’의 온갖 어려운 환경을 생각하면 있기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믿어 보고 싶습니다.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우리 모두 ‘여인’처럼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린이 독자보다는 오히려 제가 더 힘을 얻는 느낌이 드네요.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저도 언젠가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역사 판타지는 역사와 인물에 대한 지식과 이해만큼 ‘세종이 흡혈귀가 되었다’라는 기발하면서도 파격적인 상상력도 중요해 보입니다. 작가님은 어릴 때도 역사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였는지, 상상을 즐기는 아이였는지, 작가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참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상상보다는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반발심이 생기더군요. 이게 과연 재미있게 사는 걸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고, 흡혈귀 이야기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책 속 흡혈귀는 저주 받은 짐승의 고기를 먹고 흡혈귀가 된다는 점, 고기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흡혈귀가 된다는 점 등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동물에 대해, 그리고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특별히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성호사설』이라는 책을 쓴 이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은 사람과 동물이 똑같은데 어찌 차마 해칠 수 있습니까?”
저는 고기를 먹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마다 짐승의 마음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짐승이 과연 우리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걸까요?
이 책은 『흡혈귀 감별사의 탄생』이라는 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흡혈귀 감별사의 활약 그리고 성장이 기대되네요. 앞으로의 계획을 나눠 주세요.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여인’의 활약이 더 두드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두드러지면 질수록 ‘여인’의 앞을 막는 세력들의 힘도 더 커질 것이겠고요. 그 과정에서 세종 또한 깜짝 엑스트라로 등장할 예정이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설흔 고전을 공부하는 소설가.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지루한 회사 생활을 하던 중 박지원의 글을 읽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뒤로 우리 고전에 관한 책들을 읽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역사 속 인물의 삶과 사상을 들여다보고, 상상력을 보태어 생생한 인물 묘사를 바탕으로 글을 쓴다. 매일 밥 먹듯, 잠을 자듯 자연스럽게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꿈꾼다. 언젠가는 전 세계의 야구장을 돌아본 뒤 책으로 쓰려는 야심 찬 목표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공부의 말들』, 『우리 고전 읽는 법』, 『북학의를 읽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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