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회원으로 받아주는 그 어떤 클럽에도 가입하고 싶지 않다.”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그루초 막스의 가장 유명한 경구로 꼽히는 이 문장은 우디 앨런의 영화 <애니 홀>(1977년)에서 중요한 테마로 다뤄졌고, 더 유명하게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마르크스주의’에 인용되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나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으면서 다시금 저 경구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독서 모임 회원이었던 적이 없지만 이런 모임이라면 한번쯤 슬그머니 참석해보고 싶은 마음이 절반,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면 그런 모임은 안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절반이다.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너 같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클럽이 재미있을 거 같니? 그래도 나와 내 안의 나끼리만 속엣말로 대화하면서 집에서 맨날 혼자서 읽는 것보단 나랑 비슷한 나‘들’을 만나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는 쪽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나… 사실은 회원 가입하고 싶은 거구나. 나 같은 사람을 받아준다면 울면서 평생의 사랑을 맹세하고 싶은 거구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전체 구조는 너무나 유명한 맥조휘, 유위강의 영화 <무간도>(2002)에서 가져왔다. 경찰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폭력조직에 잠입해 들어가 2인자의 위치에까지 올랐지만, 이젠 스스로가 경찰인지 범죄자인지 알 수 없어 늘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영인은 어느 독서 모임에 가입한다. 별명을 하나씩 지어야 한다는 말에 그는 ‘경찰’이라고 불러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안녕, 경찰”라고 인사하자 ‘듣고 싶었다, 이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경찰’은 그리스 비극을 즐겨 읽는다고 스스로를 소개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경찰’과 함께 이날 새로 들어온 회원 ‘노마드’는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저도 여러분처럼 독서 중독자로, 자기개발서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가 그대로 추방당한다. ‘경찰’은 매주 꼬박꼬박 모임에 참석하면서 기존의 회원들 ‘슈’, ‘고슬링’, ‘사자’, ‘예티’, ‘선생’의 개인적 성향과 그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양서 선택 기준을 배워나가며 점점 더 하드한 독서의 영역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여기서는 “‘저자 소개’보다 ‘역자 소개’가 긴 책은 재고의 여지 없이 무시”하는 태도라든가 “‘저자 소개’ 문체로 책 전체를 예단”하는 태도가 당연시되고 심지어 권장된다. ‘개인의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라고 용감하게 저항해봤자 ‘노마드’처럼 뻥 차여서 쫓겨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이 모임이 점점 좋아진다. 조직 내에서 언제나 초긴장 상태로 정체를 감추는 삶이 지긋지긋해졌고, 가끔 동료들 앞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을 ‘두 발로 걷는 배은망덕한 존재’라 정의한 적이 있지”라고 살그머니 취향을 드러내봤지만 “그냥 때리고 말지 왜 어려운 소리를 해요?”라는 격렬한 반발만 듣는 게 지겨워졌다. ‘경찰’은 직장에서의 피로보다는 그래도 익명의 독서 중독자 모임에서 강요하는 독서 교육이 그나마 견딜 만하고 유익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굿하게, 또 다른 익명의 독서 중독자가 되어간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한국어로 만들어진 각종 픽션 중에 가장 웃긴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싶긴 한데, 사실 그렇게 단언하기에는 내가 한국어로 만들어진 코미디를 그렇게 많이 안 읽었다는 게 좀 걸린다. 그런데 여기까지 말하면 항상 지쳐버린다. 이렇게 단서를 달고, 한계를 짓고, 나의 모자람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나의 사사로운 추천에 불과하다’라며 속삭이는 게 언제나 온당한 태도일까. 그냥 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도 내에서 내 편견에 맞춰서 그냥 막 던지면 안 되나. 이건 걸작이야! 여러분도 당장 읽도록 해! 작가들도 “혼종과 변종이 그득한 21세기 한국 만화계에서 고고하게 왕도를 걷는 정통파 개그 만화를 선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책 제일 앞머리에 수줍게 쓰지 않았냔 말이다. 나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시간차를 두고 이 정통파 개그 만화를 다섯 번쯤 정독했는데 그때마다 매번 계속 웃는다. 심지어 웃음의 순도가 높다는 게 이 책의 정말 큰 장점이다. 인문사회과학서의 근엄하고 오롯한 세계로부터 이런 정도의 농담을 끄집어낼 수 있다니 가히 천재의 영역이고 말이다.
게다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는 다채로운 레퍼런스와 인용과 재인용이 난무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 자체에 미쳐버리는 독자에게라면 훌륭한 독서 가이드북으로 작동할 것이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독할 필요가 없으며, 책에 메모와 낙서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주석마저도 개의치 말라는 안내가 곁들여진다.(참고로 나는 미주보다는 각주 처리를 단연코 선호한다. 정보가 많을수록 좋긴 한데, 그게 한눈에 들어오기 쉬워야 한다. 그리고 본문과 각주를 왔다갔다하는 그 수직의 안구 운동까지도 독서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주 사랑을 꾸준히 지켜갈 생각이다.)
여기서는 인문사회과학서를 책들의 분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숭배하는 이들이 주인공이지만, 다른 모임에서는 소설이 그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모임에서는 예술서가, 또 다른 모임에서는 자기계발서가 유일한 목표일 수 있다. 각 모임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지독한 편견과 엄격한 기준의 칼날을 들이대며 서로를 무시하고 혹은 서로에게서 의외의 배울 점을 발견하며 모임을 아슬아슬하게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서는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읽는 이들이 주인공일 뿐이고, 그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편견과 경멸과 환상은 어차피 그들의 세계 안에서만 통용되는 주문일 뿐이니 이걸 두고 진지하게 화를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토마스 아 켐피스,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서문에서 재인용-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재-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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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범죄소설』, 『문학소녀』 등을 썼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죽이는 책』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