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특집] 지금 여기의 여성 아이돌을 위한 변명 - 대중음악평론가 최지선
아이돌도 팬들도 자기 자신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해요.
글ㆍ사진 정다운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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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 최지선

최지선은 한국 대중음악서의 ‘전설의 레전드’로 불리는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저자 중 한 명이다. 각각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다룬 두 권의 통사는 올해 말 1980년대와 1990년대로 이어질 예정이다. 대중문화 비평 황금기에 활동을 시작한 여성 대중음악 평론가 가운데 드물게 ‘현역’으로 활동 중인 최지선은 2019년부터 2년에 걸쳐 한국 여성 아이돌에 관한 책을 썼다. 『여신은 칭찬일까』라는 제목을 비롯해 네 개의 챕터 타이틀, 각 챕터를 구성하는 하위 주제까지 모두 질문형이다. 섣부른 단정은 오랫동안 여성 아이돌의 영역을 제한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 아이돌의 역사를 다룬 첫 챕터를 가장 마지막에 썼다고 들었어요. 

마지막 꼭지까지 쓰고 나니, 중요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성 아이돌(이하 ‘남돌’)이든 여성 아이돌(이하 ‘여돌’)이든, 아이돌도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여돌은 남돌에 비해 보다 개별적인 존재로 느껴지죠. 1세대 아이돌 하면 H.O.T.지, S.E.S.를 먼저 떠올리지는 않으니까요. S.E.S.는 ‘여자 H.O.T.’로, 2NE1은 ‘여자 빅뱅’으로 기획됐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돌들 역시 각 세대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해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1∼2년 사이 아이돌의 음악과 퍼포먼스에 대한 진지한 비평이 크게 늘었어요. 그럼에도 여돌 아티스트들을 한국 대중음악사 안에서 이렇게 집요하게 들여다본 책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여성 음악인 열전’을 쓰고 싶어요. 그 맥락의 끝자락에 여돌이 있고요. 

제목(『여신은 칭찬일까?』)의 의미가 첫인상과는 달랐어요. 외모, 혹은 외모 비평을 이야기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요정과 여신은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꼭지 타이틀을 보고 ‘아차!’ 싶었죠. 

요정, 또는 여신이라는 단어에는 타자화, 대상화하는 시선이 담겨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이런 말들이 여돌의 활동을 제한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요정과 여신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 인간이 아닌 존재, 즉 성적으로 순진무구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모르는 존재가 돼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투여해야 하고요. 나아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 더는 이 이미지가 유효하지 않은 순간 여돌은 폐기되는 현실로 이어지고요.

이 책은 요정, 여신의 대립항으로 읽히는 걸 크러시와 동시에 ‘남성 복제’를 이야기해요. f(x) 엠버의 ‘진정한 나’ 찾기라는 끝맺음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마마무와 블랙핑크를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걸 크러시는 여돌에게 덧씌워지는 형용사, 예를 들어 청순, 섹시, 발랄, 소녀성 등등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를 규정할 때 쓰여왔어요. 그런데 이 두 여돌 그룹은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을 강화시켰죠. 수용자들에게는 섣불리 재단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미디어를 비롯해 일반적인 수용 과정에서 특정 이미지로 재단되고, 거기에 회사가 원하는 그룹의 이미지라는 틀까지 더해지면 아티스트 자신의 본질은 다 가려지고 말아요. ‘소비’되는 단계에서 스스로를 보여주는 단계가 있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그걸 못 하게 되는 거예요.

BTS 이후 아이돌이 전하는 위로와 응원의 서사가 더욱 중요해졌어요. 그에 반해 여돌은 메신저로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여성의 연대와 우정의 노래가 됐지만, BTS가 가지는 상징성에 비하면 아쉬운 수준이고요. 

여돌들의 메시지는 남돌의 메시지에 비해 모호한 경우가 많아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예술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파급력은 약해요. 예를 들어, 오마이걸의 ‘비밀정원’은 “내 안에 소중한 혼자만의 장소”로 너를 초대하겠다고 말해요. ‘너 자신을 사랑해!’라고 명령하지 않죠. 다행히 ‘나’, 혹은 ‘나’이자 ‘너’인 ‘우리’를 이야기하는 여돌이 유의미할 정도로 많아졌어요. 태연이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불렀고, 화사는 자신의 세례명을 담은 “널 위한 말”을 ‘세상의 모든 마리아’에게 보냈죠. 또 청하의 ‘Be Yourself!’는 각자의 색깔로 너 자신을 보여달라고 말해요. 자기애와 자긍심이 전면에서 느껴지죠.

그럼에도 한편에는 여전히 선정성 논란이 남아 있어요. 특히 신체를 분할해 지시하는 가사나 퍼포먼스는 달갑게 받아들이기 어려운데요.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예요. 제 경우, 마마무의 ‘Hip’ 무대가 해답이 돼줬어요. 이 노래는 멤버 화사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곡이에요. 그런데 “머리 어깨 무릎 다 Hip해”라는 가사에 맞춰 자신의 신체 부위를 가리키며 노래하고 춤을 춰요. 그런데 화사는 여기에 카메라에 침을 뱉는 척하는 퍼포먼스를 더해요. 이 퍼포먼스 하나로 의미가 달라지는 거예요. 누가, 어떤 맥락으로 노래하고 춤추는지도 중요해요.

“아이유는 (안타깝게도) 당분간 여돌의 빛나는 예외가 될지 모른다”는 문장이 가슴에 콱 박혔어요. 작곡, 프로듀싱 영역에서 여돌의 미래를 어떻게 보세요? 

아이유와 브아걸이 보여준 성과는 로엔엔터테인먼트라는 창작 집단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조영철, 이민수, 김이나, 황수아 등 아이돌을 아티스트로 대하는 창작자들이 있었고 그 토양에서 성장했으니까요. 책에 RM이 프로듀서 피독과 놀다가 가사를 쓴 에피소드가 나오잖아요. 여돌은 상대적으로 그런 기회에 노출될 확률이 매우 낮아요. 많은 창작자가 남성이고 여돌이 그들과 편하게 어울려 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이런 환경도 달라지고 있어요. 아이돌 신에서 여성 플레이어들이 늘고 있으니까요. 아직은 멀었지만요. (여자)아이들 소연의 사례는 현실을 말해줘요. 소연은 앨범에 창작자로 참여한 과정을 담은 ‘직캠’ 영상을 직접 유튜브에 올려야 했어요.

김윤하 평론가가 추천사를 쓰셨더군요.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했어요. 마치 다짐 같았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려면 여돌의 음악과 퍼포먼스 수용자인 우리 내면의 변화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책의 마지막 꼭지 제목이 ‘떠난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에요. 혐오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해요. 아이돌도 팬들도 자기 자신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해요. 잘못에 대해서도 ‘왜?’를 물어봐 주고,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을 먼저 쳐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원론적이고 재미없는 얘기지만 그것만이 해결책이 아닐까요? 어려운 문제네요.



여신은 칭찬일까?
여신은 칭찬일까?
최지선 저
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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