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는 없고 어른에게는 있는 것, 조급함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면 별것도 아닌 것을, 하필이면 바로 그때 가르치려 들다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시적인 표현을 사라지게 만들었을까. 혹시 또 어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보자.
글ㆍ사진 오은경(초등학교 교사)
20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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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1,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년 말 즈음 어김없이 따라오는 걱정이 있다.

‘글씨를 더 예쁘게 쓰도록 가르쳐야 했나?’

‘아직도 맞춤법 틀리는 아이들이 많은데 어떡하지?’

이런 우려가 드는 걸 보니 나도 뭔가를 ‘가르쳐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교사인가 보다.

1, 2학년 교육과정은 대개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내용들이라 눈에 띄는 학습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다. 1학년에서 배우는 교과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한글의 원리를 알고, 간단한 글과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짧은 책을 읽을 줄 알며,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이해하여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고, 학교생활을 건강하고 즐겁게 해나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부가 쉽고 학교가 좋아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으면 된다.

그렇게 1년을 즐겁게 지내다 보면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봤던 꼬물꼬물하던 유치원생이 어느새 의젓한 초등학생으로 자라나 있다. 책도 곧잘 읽고, 쪽지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보내주기도 하고, 질서도 지키고, 놀이도 할 줄 알게 된다. 이런 행위들은 아이들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큰 성장을 이룬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학년 말이 되면 교사인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원래 이 아이들이 글을 이만큼 쓸 줄 알았던 것 같고, 친구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던 것 같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꽤 긴 책도 가만히 앉아서 읽을 수 있었던 것만 같다. 그래서 깜박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그리고 얼마나 애썼는지를 말이다.

1년 사이 아이들이 제법 능숙해지고 의젓해져도 어른이 볼 때는 1, 2학년의 성장이 너무 쉬워 보이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게 많다고 느낀다. 그러니 아직도 자주 틀리는 ‘맞춤법’과 여전히 엉망인 ‘지렁이 같은 글씨’만 눈에 띄는 게 아닐까. 그즈음 ‘내가 덜 가르쳤구나’ 하는 미련이 직업병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그 때문인 듯싶다.

부모들도 그럴 것이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그저 감격스럽고 건강하게만 자라주었으면 하는 감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 하고 입을 떼기만 해도 놀라웠던 마음이 이젠 “엄마 좀 제발 그만 불러라” 싶고, 혼자 발을 옮겼을 때 박수 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아이가 혼자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어 보여서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이 역시 자식을 더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부모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다. 그저 한 번쯤 돌아보자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눈앞에 보이는 것에 우선순위를 빼앗겨서 더 큰 것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하고 말이다.

글쓰기 교육도 다르지 않다. 1년 내내 아무리 열심히 글쓰기를 가르치고 지도한다 해도 1학년 아이들 글이 헤밍웨이 같은 대문호의 글이 될 수는 없다. 또 아이가 쓴 글의 내용보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틀린 맞춤법이 눈에 먼저 들어올지도 모른다. 다만 어른들이 그것만 봐버리면 1년 동안 열심히 써온 아이의 글쓰기에 대한 노력과 글에 담긴 아이의 진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 하나는 기억해야 한다.


닭 

                        김서원


닭은 맨날 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고 운다.

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배고프다는 것 같다. 

다음 날 풀을 줬다.

이번에도 또 운다.

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알을 낳으려나 보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또 운다.

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꼬오옥! 꼬오옥!

이번에는 쪼기도 한다.

알을 지키는 것 같다.

닭은 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서원이는 학교에 오면 틈 날 때마다 닭장에 가서 닭을 쳐다봤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종종 늦어서 “닭장 가서 공부할까?” 하고 혼내기도 했다. 글쓰기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닭은 어떻게 쓸지 궁금했다. 아이 옆에 가서 가만히 쳐다봤더니 ‘꼬오오오오오오’ 하고 ‘오’를 지나치게 많이 적고 있었다. 쓰기 귀찮아서 장난으로 쓰는 줄 알고 이번에는 잔소리를 좀 해야겠다 싶었는데, 참지 못하고 잔소리했으면 정말 부끄러울 뻔했다.

서원이는 닭의 소리를 적을 때 ‘꼬오오오’ ‘오’자 개수를 신중하게 헤아려가며 썼고, 우리에게 글을 읽어줄 때도 ‘꼬오오오오오’ 하며 다르게 읽었다.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닭을 지켜본 서원이는 그때그때 다른 닭의 울음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구별하고 있었다. 닭을 멀찍이서만 바라본 나는 서원이의 글에서 비로소 생명력 가득한 닭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면 별것도 아닌 것을, 하필이면 바로 그때 가르치려 들다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시적인 표현을 사라지게 만들었을까. 혹시 또 어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보자.



여덟 살 글쓰기
여덟 살 글쓰기
오은경 저
이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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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초등학교 교사)

경북 울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25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글쓰기 공책에 쓴 이야기를 혼자만 보기 아까워 문집을 만들고 책으로 묶어주는데, 그럼 부모님들이 글을 쓴 아이들보다 책을 만들어준 나를 더 고맙게 생각해주어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