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한 두 명인의 영적 결합, 안드라 데이의 빌리 홀리데이 OST
감정적인 만족에서 자연스레 데이의 음색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는 음악을 통해 관객들은 극의 이야기가 전하는 깊이와 뉘앙스, 명쾌하고 진솔한 감흥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글ㆍ사진 이즘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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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음악과 인생을 스크린에 투영한 영화 <빌리 홀리데이>(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는 2021년 2월에 개최한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에서 안드라 데이(Andra Day)가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품에 안음으로써 크게 조명받았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까지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공 후보 자격을 얻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15년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로 데뷔해 활약한 안드라가 홀리데이의 애칭인 “레이디 데이”(Lady Day)에서 영감받아 자신의 예명을 지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영화를 통한 두 명인의 영적 결합은 예고된 운명이자 당연한 성과였다.

사실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 인생을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2년 전기 음악 드라마 <블루스를 부르는 여인>(Lady sings the Blues), 2016년 TV에서 방영한 바이오 뮤직 드라마 <에머슨 바 앤 그릴에서 레이디 데이>(Lady Day at Emerson's Bar & Grill), 2020년 다큐멘터리 <빌리>(Billie)가 공개된 바 있기 때문. 1972년 여가수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로 분신한 전설의 빌리 홀리데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2016년 애칭 “레이디 데이”(Lady Day)로 극에 등장한 오드라 맥도날드(Audra McDonald)는 비평가들로부터 찬사 세례를 받았다.

안드라 데이에 의해 다시금 부활한 빌리 홀리데이는 감독 리 다니엘스(Lee Daniels)가 연출한 <빌리 홀리데이>에서 그녀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던 194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활동한 시대적 정황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엄밀히 영화는 두 가지 영역을 탐구한다. 첫 번째는 '마약과의 전쟁'의 중심에서 그녀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홀리데이가 어떤 유혹에 끌려 마약중독자가 되고, 연방 정부의 표적이 되었는지, 그리고 잠입한 FBI 마약 요원 지미 플렛처(Jimmy Fletcher)와 연인관계로 발전해나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줄거리.

다른 하나는 그녀가 무대에 설 때마다 불러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지만, 미연방수사국에서 금지곡으로 묶은 노래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를 둘러싼 사연에 관한 진실의 폭로이다. 이 노래 제목은 실제 나무에 매달린 흑인의 시신을 비유해 지칭한 것으로, 1930년대 젊은 흑인 남성이 백인에게 린치를 당해 죽는 내용의 가사이며, 불법적 폭력에 의한 사형에 대한 응답으로 반인종차별을 울부짖는 홀리데이의 가창이 압권. 당시 재즈를 죄악시하고, 흑인사회를 마약 소굴로 규정하고 탄압한 미연방 정부의 인종차별주의에 노래로 저항한 재즈 레전드의 실상이 또 하나의 맥락이다. 결국 흑인 여성이 거대 국가조직의 차별과 모함에 맞서 투쟁하다 44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는 슬프지만,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양심과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내는 모습은 감동을 불러낸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쓰인 노래는 주로 홀리데이로 분한 데이가 공연하는 시대극에 집중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Strange fruit'를 필두로, 'Lover man', 'God bless the child', 'Lady sings blues'와 같은 고전 명곡을 포함해 홀리데이의 위대한 유산이라 할 시그니처 송이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사운드트랙에는 데이가 래피엘 서디크(Raphael Saadiq)와 공동 작곡한 'Tigress & Tweed', 워렌 오크 펠더(Warren Oak Felder)와 콜리지 틸먼(Coleridge Tillman)이 작곡한 'Break your fall'을 비롯해 새로 작곡된 노래들이 실렸다. 1970년대 R&B 펑크 그룹 더 갭 밴드(The Gap Band)의 리드 보컬이었던 찰리 윌슨(Charlie Wilson)이 동참한 트랙 'The devil & I got up to dance a slow dance'도 주목할 만하다. 'Tigress & Tweed'는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상 후보에 최종 지명을 받진 못했지만, 두 곡 모두 클래식 블루스, 재즈, 초기 R&B에 근거해 쓴 곡으로 영화의 시대적 감성을 관통한다.

스코어는 로스앤젤레스 태생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크리스 바워스(Kris Bowers)가 맡았다. 줄리어드 음악 출신인 그는 2011년 셀로니어스 몽크 국제 재즈 피아노 경연대회(Thelonious Monk International Jazz Piano Competition)에서 우승한 경력자로, 2018년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그린 북>(Green Book)의 스코어를 썼으며,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전기영화인 <리스펙트>(Respect)의 음악을 스코어링해 2021년 두 편의 음악 전설 영화에 함께 했다.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재즈와 블루스 양식의 배경음악을 피하는 대신 주인공 빌리의 내면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표출해 홀리데이의 노래들과 병치하는 방식을 썼다.

크리스가 쓴 악보는 주로 몇 가지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으뜸은 피아노 독주를 위한 클래식 왈츠로 연주된 춤곡, 현과 오보에를 교차하며 사랑스럽고 풍부한 화음으로 보강된 'Billie's Waltz'이다. 왈츠풍의 선율은 실제로 데이가 영화에서 공연하고 악보 후반부에 기악으로 등장하는 1931년 노래 'All of me'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재즈 피아노와 풍부하고 감정적으로 통하는 현을 위해 편곡되었다. 빌리를 위한 보조 테마는 'Don't cause a fuss', 'Walk in the park/Levy frames Billie'와 같은 지시 곡(cue)과 함께 스코어의 나머지 대부분에 퍼져있다. 이 지시 악곡들에 내포된 보조적 주제선율은 제각기 현악과 피아노 합주에 의해 부드럽고 은은하게 연주되며, 빌리의 인생에 스며든 비애와 감정의 깊이 더욱 풍부하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 음악에서 스코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매우 미미한 편,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분신으로 역할을 다한 안드라 데이의 호소력 짙은 보컬 송들과 결합해 조화를 이루면서 지속적인 매력을 더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여가수인 한편, 그녀를 둘러싼 정서적 고뇌와 법적이고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짧은 생을 살다간 “레이디 데이”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바워스의 간명한 음악 터치가 미친 영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안드라 데이의 레이디 홀리데이가 부른 불멸의 명곡이 더욱 가슴 깊이 사무치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만족에서 자연스레 데이의 음색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는 음악을 통해 관객들은 극의 이야기가 전하는 깊이와 뉘앙스, 명쾌하고 진솔한 감흥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미국 vs. 빌리 홀리데이 드라마 음악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OST by Kris Bowers / Andra Day)
미국 vs. 빌리 홀리데이 드라마 음악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OST by Kris Bowers / Andra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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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