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작가 인터뷰
"상실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글이 흘러나왔다고 생각한다. 캐럴라인의 죽음 이후 5년 동안은 이 책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고, 감히 시작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강물의 흐름처럼 거스를 수 없었다."
글ㆍ사진 이승민(번역가)
20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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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kos Szilvasi



한국어판 서문의 울림이 크다. ‘운이 좋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애도한다’라는 문장은 이야기의 첫 시작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는데?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잃은 뒤에야 비로소 배우는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캐럴라인을 잃고 슬퍼하던 초기에 나는 내가 느끼는 참담함이 곧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필요로 한 내 마음의 크기에 맞먹는 것임을 실감했다. 그러니 애도는 불가피한 일일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마땅히 내가 얻게 되는 무엇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채우는 친밀감, 결함, 약점의 고백 중에서 유독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 애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는 무지의 고백. 애도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최소한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일이 나로서는 절실했다. 나는 애도를 대면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고, 이전까지 내가 들은 것, 읽은 것이 아무 소용없었다. 작가로서 나는 그 수수께끼에 자연히 이끌렸고, 반드시 풀지 않으면 안 된다고까지 느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이 당신이 애도를 이해하는 과정과 겹치는가? 그래서 이 책을 쓰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상실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글이 흘러나왔다고 생각한다. 캐럴라인의 죽음 이후 5년 동안은 이 책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고, 감히 시작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강물의 흐름처럼 거스를 수 없었다. 

상실은 극복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며 우리 내면에 받아들이는 무엇이라고 했다. 상실이 당신의 안팎을 바꿔놓았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실감하는가?

모든 중요한 일들이 그렇듯, 이런 변화는 극히 미세하게 조금씩 진행된다. 애도 과정에는 부산물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타인을 향한 연민, 우선순위의 재배열, 낯선 이들에 대한 호의.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또 지속된다. 상실의 참담함이 처음 휩쓸고 지나고 나면, 비로소 애도하는 사람은 상실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는 것 같다. 상실은 나와 함께 머무는 것이며, 아마도 책에 쓴 것처럼 이제 캐럴라인 대신 캐럴라인의 죽음이 내게 남을 테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회고록의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이런 구조는 의식적 고민의 결과인가, 아니면 기억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 것인가? 왜 1997년 여름 초코루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했을까?

기억이 이끄는 대로 이야기가 따라갔다는 말이 맞겠다(멋진 표현이다).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잘 다져진 숲길을 따라가듯 마음에 확신이 생기고 행복감이 차올랐다. 초코루아에서 보낸 여름은 캐럴라인에 대한 나의 기억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가장 시각적으로 생생한 순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 그 기억이 “저요! 저요!” 외치듯 내 의식에 떠오르는 게 당연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상실의 징후를 망각이라고 당신은 본 것 같다. 그래서 ‘창작자의 행복한 중간지대’ 안에 캐럴라인을 온전히 되살려놓고 싶어했다. 그녀가 떠난 지 19년, 이 책을 쓴 지 11년이 지난 지금, 당신이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대로인가? 여전히 시간의 폭력성을 실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몇천 자의 글은 쓸 수 있을 텐데. 우선은 이렇게 말하련다.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캐럴라인에 대한 나의 기억이 달라졌다면 그건 아마 바위나 숲이 달라지듯 서서히 자연에 따르는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라는 실재, 그 얼굴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 Akos Szilvasi

애도의 궤적을 따라가며 당신은 시에서 위안을 얻는다. 시의 무엇이 심리학보다 유용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당신의 애도에는 어떤 시가 함께하는가?

나에게는 프로이트보다 시가 훨씬 더 유용했고, 그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마음을 치유할 때 지성보다 예술이 더 섬세하고 세심하다고 느낀다. 요즈음도 (최근 2년 동안의 이 힘든 시기에도) 여전히 옛 거장들이 크게 의지가 된다. 예이츠, 셰이머스 히니,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시인들을 읽고 있다.   

이 책의 중심에는 상실 못지않게 관계가 놓여 있다. 인간과 동물과 맺는 관계는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를까.

역시 이 주제에 관해서라면 책을 한 권 (더) 쓰고도 남는다. 여기서는 이 말을 해두고 싶다. 인간과 동물이 맺는 관계의 깊이를 사람들은 종종 과소평가한다. 캐럴라인과 나는 이 점을 이해하고 있어서 서로에게 고마워했고, 아마 그 덕분에 우리의 우정이 더 깊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캐럴라인의 부재가 남긴 ‘끊임없는 대화의 부재’를 어떻게 견디고 있나? 세상에 대한 당신의 의심이 발동할 때 누가 당신을 붙들어주는가? 여전히 ‘캐럴라인 예배당’을 찾는가?

인생에서 어떤 것들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그 사실이 비통하고 참담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위로가 된다. 모든 상실과 관계가 그 자체로 유일무이하다는 의미이니까.

캐럴라인의 독자들은 그의 책을 되풀이해 읽으며 그리워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이 즐겨 찾는 캐럴라인의 책이나 글이 있다면?

캐럴라인의 책 중에 한동안 읽지 않은 글을 찾아 읽으며 깜짝깜짝 놀라는 경험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럴 때면 그녀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드링킹』과 그녀의 마지막 책 『욕구들』에 담긴 솔직함과 지혜로움을 사랑하지만, 유머가 가득한 다른 에세이들도 많이 아낀다. 

상실을 겪은 뒤 당신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혹시 지난 2년의 시간이 바꿔놓았는지? 여전히 걷고 수영하고 로잉하는지? 지금도 당신 옆에 누군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실제로 하루하루 의식처럼 지키는 일상이 나한테는 더 중요해졌고,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25년이 넘도록 개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그 부분만은 마음이 충만하다. 매일 산책하고, 할 수 있을 때마다 수영이나 로잉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보다 더 집요한 것이 시간이라서 요즘은 예전만큼 튼튼하진 못하다. 

비평가로 오래 일한 뒤 계속 회고록을 쓰고 있다. 왜 기억의 이야기에 끌리는가? 지금은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항상 최고의 회고록이 인생에 관한(경험과 투쟁과 인간의 감정에 관한)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 기억은 우리를 과거로 돌려보내 이야기를 수정하고 가능성이라는 프리즘에 비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에게는 기억이 단순한 경험보다 더 큰 것을 아우른다. 특히 과거를 떠올리며 내 안에서 생성되는 언어도 마음에 든다. 내가 써볼 수 있는 다른 어떤 형식보다 더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언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고록에는 한계가 있겠지. 이야깃감이 바닥나지 않았을까, 내 삶에 대해 쓸 만큼 쓰지 않았나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휴지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낙담이 들곤 하는데, 에이전트에게 듣기로는 내가 새 작업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게일 콜드웰(Gail Caldwell) 

미국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1951년 미국 텍사스 애머릴로에서 태어났다. 텍사스 대학교에서 미국학 석사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1981년 서른 살에 작가가 되고자 보스턴으로 향했다. 1985년부터 2009년까지 <보스턴 글로브>의 북 리뷰 편집자로 <빌리지 보이스>,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글을 기고했으며, 2001년 현대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관찰을 인정받아 퓰리처상(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 발표한 『먼길로 돌아갈까?』는 2002년 42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친구 캐럴라인 냅을 추억하며 두 사람이 나눈 7년의 우정을 그린 에세이다. 이 외에도 저서로 에세이 『강한 서풍A Strong West Wind』(2006), 『새로운 인생, 법칙 없음New Life, No Instructions』(2014),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Bright Precious Thing』(2020) 등이 있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다.





먼길로 돌아갈까?
먼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저 | 이승민 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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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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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pens00

2022.01.04

와...예스24에서 게일콜드웰 작가님을 인터뷰하는 날을 보게되다니...
캐롤라인 냅 작가님과 동시에 나만 알고 싶은 소중한 작가님이지만 이 책이 더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인터뷰 내용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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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