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멸종위기이고, 인간은 남아서 기록을 한다
2022년 세부 목표 중 하나는 '기록하기'다. 기록을 위한 방법으로는 '일기를 주 3회 이상 쓴다',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관리한다', '다른 SNS를 시도해 본다' 등이 있다.
글ㆍ사진 정의정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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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만다라트를 그려서 매년 계획을 짜고 있다. 만다라트는 일본의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방법으로, 가로 9칸, 세로 9칸의 스도쿠 같은 정사각형을 그리고 중앙에는 핵심 목표를, 핵심 목표를 둘러싸고 세부 목표를 짠다. 중앙의 정사각형을 둘러싼 정사각형에는 세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적는다. 처음에는 야심에 차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방법 그대로 81개의 정사각형을 그려놓고 계획을 짜보려 했으나, 일 년 사이에 이루어질 리 없는 방대한 목표의 양을 보고 질려서 포기했다. 이후 나름대로 입맛에 맞게 가로 4칸, 세로 4칸의 작은 정사각형을 그리고 세부 목표는 추가로 넣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기존 만다라트와 변형한 만다라트.
기존 방법에는 저 네모칸마다 세부 계획과 성취 방법을 적어야 한다.
저 정도로 인생을 빡빡하게 살고 싶진 않다...
 

2022년 세부 목표 중 하나는 '기록하기'다. 기록을 위한 방법으로는 '일기를 주 3회 이상 쓴다'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관리한다' '다른 SNS를 시도해 본다' 등이 있다. 

내년 목표를 기록하기로 잡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올해를 돌아보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서다. 내가 뭘 했더라? 분명 뭔가 많이 했는데 기억이 나지를 않네? 당황해서 소비 명세도 살펴보고, 여기저기 남겨놓은 메모와 SNS 기록 등을 토대로 기억을 들춰내서야 간신히 하나씩 찾아갈 수 있었다. 

이걸 했지... 그래 저것도 배웠어... 이 사람도 만났군... 

내년은 뭐라도 적어놔야 올해와 같은 충격에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이유는 일기를 쓰면서 해결해보기로 했다. 길게 쓰려는 욕심 없이 간단하게 오늘 뭘 했고 기분이 어땠는지 적는 것부터 시작했다. 12월 중순부터 시작해 아직은 잘 쓰고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자아 생성'이 있다. 대 브랜딩 시대에 나 자신도 브랜드를 정립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랜드를 설명하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결국 나를 기록해 놔야 한다. 이게 문제다. 자아생성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나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인간의 지상 명령이 아닌가. 항상 어떻게든 나를 브랜딩하고 남들에게 통일된 나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



친구와 가족, 지인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성장하는 사람을 볼 수 있지만, 군중은 하나의 브랜드처럼 획일적이고 변함없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만을 본다. 오랜 전통을 지닌 의류회사에서 일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모든 브랜드의 기둥이 '내적 일관성'과 '시간을 넘어선 한결같음'이라는 사실을 익히 안다. (회사에서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브랜드의 기둥'이라 불렀다). 퍼스널브랜드를 가진 공인으로서(알다시피 이제 모든 트위터 유저가 하룻밤 새 유명인사가 될 수 있다) 변화와 애매모호함, 모순은 금물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 친구나 직장 동료, 그 밖의 지인들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이던 시절은 아마 곧 끝이 날 것이다. (...) 정체성이 두 개인 것은 진실함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_『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270쪽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통일된 자아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이미 수없이 분열되어 있다. 왜 기록을 하고 싶어 하는가. 어쩌면 나는 기록을 하면서 조각난 나 자신을 추스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루하루 나는 바쁘고 힘들고 지쳐 있다. 오늘의 할 일만으로도 매일 폭탄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때마다 나는 플라나리아처럼 분열한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오늘 벌어진 일은 일 년 전에도 비슷하게 벌어졌었다. 평소와 그렇게 다를 바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비슷하게 살 것이다. 갑자기 운석이 폭발한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한 해 한 해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면서 살겠지. 아무리 지금 삶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도 적어 놓고 나중에 보면 별 게 아니다. 라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기록한다.

그럼, 2022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자아는 덜 분열되고 기록은 많이 남기는 한 해 되시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저 | 김하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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