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캠핑』은 원래 캠핑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 맞다 내가 이래서 캠핑을 좋아했지.’라는 감각을, 캠핑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나도 캠핑 한 번 해볼까?’하는 설렘을 주는 책이다. 봄에는 꽃, 여름에는 신록, 가을엔 낙엽, 겨울에는 순백의 서정을 그저 즐기면 그만인, ‘캠핑’의 진정한 매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캠핑은 효율이 아니라 멋과 기분이 정답’,‘캠핑은 누가 뭐래도 기분 좋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작가님이 느낀 캠핑의 매력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잘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게 제일 매력적이었어요. 그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서 꽤 오랫동안 헤맸었거든요. 취미 후보에 올랐던 것들은 전부 제가 잘하고 싶은 분야의 일이었고.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즐겁지가 않았어요.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비교’라는 놈이 따라붙어서 안달이 났죠.
반면 캠핑은 ‘잘’할 필요가 없는 장르에요. 누가 누가 불을 더 잘 피우나, 설거지를 빨리 하나 경쟁하진 않으니까요. 그동안 제가 시도했던 취미들, 미술이나 음악 같은 분야는 능력 차이가 명확히 보이는 것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캠핑의 경우 조금 더 잘하고 못 하는 게 큰 의미 없는 활동이라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도 없고, 딱히 잘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들어요. 저는 잡생각이 많은 인간이라 아무것도 안 하면 쓸데없는 생각 하느라 괴롭거든요. 고민 없이 적당히 재밌게 할 소일거리를 찾아서 행복합니다.
많은 곳으로 캠핑하러 다니셨는데 그중 손꼽는 캠핑 장소가 있을까요? 가장 강렬한 추억이 있는 캠핑 장소와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해요.
포천 ‘백로주 캠핑장’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캠핑장 리뷰 별점이 1점 아니면 5점으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곳이에요. 처음엔 리뷰를 보고 방문을 꺼렸는데 막상 가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캠핑장 입구를 지나는데 국경을 넘은 것처럼 낯선 느낌이 드는 거예요. 비행기를 타고 외국의 공항에 내렸을 때 피부에 훅 와닿는 그런 느낌이요. 가끔 문 하나 차이로 캠핑장 안과 밖이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게 하는 공간이 있는데 백로주 캠핑장도 그런 곳 중 하나였어요.
공기에 밴 냄새도 다르고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묘하게 달라서 시차가 있다는 착각이 드는 곳이었어요. 제가 갔을 때는 일요일 오후, 사람들이 모두 빠진 후라서 마을 하나만큼 큰 캠핑장에 저희 팀밖에 없었는데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야생적인 공간에 우리 텐트 한 동만 덩그러니 있으니 현실과 단절됐다는 감각이 극대화되면서 굉장히 자유로운 기분이 됐어요. 인간뿐만 아니라 장소도 입체성을 띤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한 인상적인 경험이라 기억에 남아요. 나에게 인생 캠핑장이었던 곳이 누군가에겐 다신 가고 싶지 않은 최악의 장소로 남을 수도 있고. 모두가 입을 모아 별 한 개도 아깝다고 한 곳에서 인생의 한순간으로 남을 좋은 추억을 쌓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러니 여러분도 별점을 믿지 마세요! 어쩌면 내게 맞는 진짜는 별점 밖에 있을지도 몰라요.
겨울이 캠핑의 꽃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언 듯 생각하면 낮은 기온 때문에 캠핑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책에서 ‘그 모든 까다로운 조건을 뛰어넘을 낭만’이 있다고 언급하셨어요. 낭만적인 겨울 캠프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신다면.
겨울 캠핑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이 몇 있는데요. 다들 술꾼이거나 미식가예요. 한겨울 밀폐된 공간은 ‘술 맛이 나는 장소’이자 우정이 발생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거든요. 자, 상상해보세요. 볼거리 하나 없는 황량한 벌판(혹은 캠핑장) 한가운데에 텐트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요. 입김이 고드름으로 변할 만큼 추운 날씨지만 텐트 안은 등유 난로 연기로 훈훈해요. 그 난로 위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끊임없이 끓고 있어요. 김이 폴폴 나는 사케, 큼직하게 썬 온갖 재료가 든 스튜. 맑고 시원한 오뎅탕.
술꾼들은 아마 여기서 길거리 포장마차와 같은 익숙함을 느낄 거예요. 여기선 낮부터 밤까지 시간 감각 없이 마셔도 취하지도 않아요. 화장실에 가려면 텐트 밖으로 나가야 하고 추위를 뚫고 걷는 동안 술이 다 깨버리거든요. 신난 술꾼들은 맥주를 마시다가 와인도 한 병 땄다가 아껴 두었던 위스키까지 엉망진창으로 마셔 버리겠죠. 그날 밤에 폭설이 내려 텐트가 눈 속에 파묻히기라도 한다면…! 아,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네요.
캠핑하러 다니다 보면 또 다른 캠퍼를 만나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일을 겪기도 할 것 같아요. 혹시 캠핑 중 만난 사람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괴산에 ‘나무야 나무야’라는 캠핑장이 있어요. 폐교를 활용해 만든 캠핑장인데, 이름값 제대로 하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어요. 캠핑장 이용료만 내면 (시한부지만) 나무까지 누릴 수 있다는 점에 반해서 종종 찾아가는 곳이에요. 언젠가 품에 안을 수도 없이 큰 아름드리나무를 가지는 게 로망이거든요. 젊은이 둘이 온종일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종알거리는 게 보기 좋으셨는지, 어느 날 사장님이 다음 달에 캠핑장 연 지 1년 된 기념으로 문 닫고 놀러 갈 건데 괜찮으면 와서 쉬다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손님 없는 캠핑장에서 나무 실컷 보라고요.
그래서 휴가 내고 갔었는데 하필 그때 비가 엄청 많이 내렸어요. 비 때문에 여행을 미룬 사장님이 “이런 날이 다시 없을 수 있다”라며 우중 불꽃놀이를 해주셨는데. 작은 우산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불꽃이 빗방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보던 순간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황홀한 여름밤이었어요. ‘캠핑의 신’은 늘 이렇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숨겨두더라고요.
누구나 한 번쯤 캠핑을 꿈꾸게 되는 것 같아요. 준비물이나 마음가짐 등 이런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을까요? 초보 캠핑족 여러분께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것 하나만은 꼭 구매해라 하는 아이템 추천도 좋습니다)
사실 캠핑이 여러모로 진입 장벽이 높은 취미이긴 해요. 밖에서 자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과 비싼 캠핑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경제적인 부담이 동시에 존재하죠.
개인적으로 꼭 하룻밤을 자야만 캠핑이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캠핑이 뭐 별건가요. 경치 좋은 곳에 앉아서 맛있는 것 먹는 것도 다 캠핑의 일부거든요. 처음부터 텐트 같은 고가의 캠핑 장비를 사지 않아도 괜찮아요. 캠핑 랜턴이나, 의자, 코펠 같은 소품을 사서 날씨 좋은 때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야외 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꽤 재밌거든요. 피크닉부터 시작해도 좋고, 글램핑장에 가보는 것도 좋고. 캠핑 장비를 대여해서 차박에 도전해 볼 수도 있겠죠. 주변에 이미 캠핑을 시작한 선배가 있다면, 개인용 의자와 식기구 그리고 먹거리(=뇌물)만 사서 견학을 해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모험을 하다 보면 나한테 맞는 캠핑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캠핑을 가지 않는 주말에도 캠핑 기분을 낼 수 있는 작가님만의 비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집에서도 캠핑 기분을 낼 수 있는 캠핑 놀이 추천 부탁드립니다.
여건상 캠핑을 할 수 없을 때 임시방편으로 캠핑의 ‘기분’을 소환하곤 해요. 흡연자들이 일상 속에서 ‘담배 타임’을 갖는 것처럼 저는 ‘팔로산토 타임’을 갖는데요. ‘팔로산토’는 향이 나는 나무 조각으로, 팔로산토 스틱에 불을 붙이면 얼마간 공기에 캠핑 냄새가 입혀져요. 그 향을 핑계로 지난 캠핑을 추억하며 잠시 쉬어가는 거예요. 팔로산토 냄새를 맡으면 정말로 캠핑장에 와 있는 기분이 나요. 캠핑하면 딱 떠오르는 냄새가 타는 냄새거든요. 모닥불 피울 때 나는 마른 나무 타는 냄새. 요즘 SNS나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불멍(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의 효능이 궁금하신 분에겐 ‘팔로산토 멍’을 추천해 드립니다.
가끔 집에 캠핑 의자랑 테이블을 펼쳐 두고 홈 캠핑을 하기도 합니다. 조명을 모두 끄고 희미한 오일 랜턴 불빛에 의지에 생활하다 보면 제법 캠핑 기분이 나요. 그 외에 거창한 장비 없이 캠핑 기분을 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책 맨 뒤에 부록처럼 덧붙여 두었는데요. 캠핑이 궁금한 독자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소소한 행복들을 수집하며 살아가는 작가님의 라이프 스타일이 참 멋져요. 먹고사는 일 외에도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는 이유와 실행해 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마음 놓고 행복할 수 있는 때’ 같은 건 인생에 없더라고요. 행복은 계절처럼 큰 단위로 오지 않고 몇 달씩이나 지속되지도 않아요. 마감이 코앞이니 당분간만 우중충한 채로 지내겠다는 다짐은 영영 흐린 기분으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는 걸 실감하고 나서부터는 바쁘더라도 요령껏(!) 시간을 내서 ‘틈틈이’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요.
딱히 웃을 일 없는 일상에 캠핑같이 작고 귀여운 기쁨들을 셀프로 심어 두는 거예요. 요즘은 일하더라도 기왕이면 풍경 좋은 곳에 가서 하려고 해요. 책에 실린 원고 중 일부도 사실 텐트 안에서 쓴 거예요. 해야 하는 일 말고, 도움 되는 일 말고, 그냥 기분이 좋아서 하는 일들도 챙기면서 살고 싶어요. 그런 찰나의 기쁨. 행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부스러기 같은 기쁨으로 일상이 견뎌지더라고요.
『주말의 캠핑』,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해 주신다면 뭐라고 말씀해 주고 싶으세요?
원래 캠핑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 맞다 내가 이래서 캠핑을 좋아했지.’라는 감각을, 캠핑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나도 캠핑 한 번 해 볼까?’ 하는 설렘을 주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캠핑을 시작하고 나서 도시 깍쟁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게 있는데요. 자연 속의 나는 도시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장소와 환경은 인생의 줄거리를 바꾸어 놓아요. 등장인물이 같아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나고 다른 방향의 선택을 하게 되거든요. 캠핑은 저를 자꾸 낯선 곳 새로운 환경에 데려다 놓았고. 덕분에 작정하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훨씬 살만하게 느껴졌어요.
매일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부러워하는 우리 아빠에게도, 행복해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친구에게도. 캠핑 같은 취미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괴로운 우리가 모두, 취미의 세계에 존재하는 평행 우주 속 나를 보면서 다른 인생도 상상해보기를 바라요.
*김혜원 에디터, 그리고 낭만파 캠퍼. 인천 출신. 바다를 메워 만든 동네에서 자라 바다를 동경하며 남의 동네 바다를 자주 기웃거린다. 아직 모자란 인간이지만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이렇게 밥벌이를 하며 산다. 읽고 나면 맥주가 당기는 글, 캠핑을 가고 싶어지는 글, 뭔가 끄적이고 싶어지는 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간지 《대학내일》에서 글을 썼고, 지금은 트렌드 당일배송 미디어 ‘캐릿’의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젯밤, 그 소설 읽고 좋아졌어』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공저)』 『작은 기쁨 채집 생활』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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