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뒤팽의 뒤를 잇는 모던 보이 탐정
에드가 오는 ‘모던 보이’와 ‘조선 선비’를 뒤섞은 캐릭터입니다. 모던 보이답게 유행에 민감하지만, 선비처럼 바른 도리를 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지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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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 저자

야만의 세계에서 이성의 세계로 바뀌고 있다던 1929년, 전통과 모던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던 경성. 그곳에 명탐정 뒤팽의 뒤를 잇는 모던 보이 탐정이 나타났다. 의도치 않게 두 건의 살인사건에 휘말린 것도 모자라 졸지에 범인으로 몰리게 된 에드가 오는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 『도둑맞은 편지』의 주인공인 명탐정 뒤팽을 흉내 내며 사건에 뛰어든다. 그는 실수를 연발하며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선화와 연주,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하나둘씩 추적해 나간다. 1920년대 경성의 낭만이 살아 숨 쉬는 풍경과 두 건의 살인사건의 뒤를 쫓는 섬뜩한 공포가 공존하는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의 저자 무경을 만나보았다.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이 작가님의 첫 작품이에요. 그렇다 보니 다양한 소재를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첫 소설로 추리소설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 ‘공식적인’ 첫 작품을 추리소설로 쓴 건,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 품었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적 읽은 추리소설 속 탐정들은 참으로 멋있었어요. 오귀스트 뒤팽부터 셜록 홈스, 에르퀼 푸아로, 미스 마플, 브라운 신부 등등……. 이들의 기가 막힌 추리를 보면서 감탄하다가, ‘나도 이런 걸 쓸 수 없을까?’라는 욕구가 싹텄던 거죠.

여담이지만, 제가 초등학교 때 가장 처음으로 쓴 소설도 추리물이었죠. 물론 중간과정은 다 생략된 데다 범행이 나온 뒤 곧바로 수법이 밝혀지는 아주 짧은 소설이었지만요. 어린아이의 글이란 게 다 그렇잖아요?(웃음) 아무튼 그때부터 제게는 추리소설에 대한 욕구가 있었답니다. 그 욕구 때문에, 굳이 이번이 아니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반드시 추리소설을 썼을 겁니다.

이 책의 배경은 일제강점기의 경성이에요.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셨지만, 아직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일제강점기는 지금의 우리 삶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대에 대해 아는 지식은 단편적이거나 부정확하며, 정형화된 몇 가지가 고작이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것들을 우리 것으로 잘못 알고 살아왔는지 바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이 작품을 빌려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1929년은 당시 신문에서 ‘야만의 세계가 이성의 세계로 바뀌고 있’다고 표현하던 시기였어요. 물론 일본 입장에서야 그랬겠지요. 그런데 사실 조선의 입장은 달랐어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남의 손아귀에 넘어간 지도 20여 년이 되다 보니, 더욱 공고해지는 식민 지배에 좌절하거나 변절한 이들이 늘어나던 때였으니까요. 게다가 일본의 제국주의가 서서히 광기로 치달으려는 때이기도 했고요. 이 시기의 미묘하고 흥미로운 분위기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플롯 구상 노트

소설 속에서는 두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죠. 에드가 오가 사건의 뒤를 쫓으며 진상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추리 플롯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떠올리시나요? 캐릭터나 에피소드를 창조하실 때 도움이 되는 비법이 따로 있으신가요? 

작품을 쓸 때는 보통 ‘장면’을 먼저 떠올립니다. 가령 이 소설을 쓸 때는 ‘최신식 양옥에 사는 한복 입은 아가씨와 그 집에 하숙하는 모던 보이’, ‘순사와 대치한 범인과 둘 사이에 끼이고 만 주인공’, ‘범인과 마주한 채 진실을 밝히는 주인공’ 같은 장면들이 떠올랐지요. 그 장면들을 머릿속에 순서대로 놓은 뒤 ‘이 장면이 나오려면 어떤 이야기가 있어야 할까?’를 생각하며 그 장면들의 앞뒤를 다른 장면들로 채워 봅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몽글몽글 뭉쳐지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더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글로 뿜어져 나오는 거지요.

물론 모든 걸 머릿속에만 담아두진 않고, 생각나는 장면이나 대사 등을 메모하기도 합니다. 혹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는 공책에 일단 되는대로 이것저것 써 봅니다. 그러다 보면 끄적임 속에서 문득 새로운 생각이 피어올라요. 초고를 집필할 때 그런 생각들을 본문 바로 뒤에 주렁주렁 매달아둡니다. 그것들이 본문에 들어가거나 삭제될 때까지요. 

그리고 제 개인적인 창작 비결은 108배와 설거지입니다. 그것들을 멍하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소설에 써 먹을 괜찮은 장면, 새로운 플롯, 혹은 막힌 부분을 뚫을 돌파구 등이 불쑥 떠오르곤 합니다. 108배는 솔직히 관절 건강의 이유로 추천하진 못하겠고, 설거지는 무척 효과적입니다.(웃음)

소설에는 각기 다른 매력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님이 가장 마음이 갔던 인물, 혹은 애정을 쏟은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해요. 

한 명만 고르기가 참 어렵군요. 모두 제가 좋아하는 인물들이거든요. 그래도 주연 3인방에 가장 마음에 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에드가 오는 ‘모던 보이’와 ‘조선 선비’를 뒤섞은 캐릭터입니다. 모던 보이답게 유행에 민감하지만, 선비처럼 바른 도리를 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지요. 물론 그 도리란 그만의 모던의 도리이지만요. 이런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이 인물이 좌충우돌하면서 본의 아니게 허당끼 넘치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작 본인은 진지한데 말이죠.

은일당의 딸인 선화는 구식과 신식의 모습을 함께 품은 인물입니다. 옛 관습을 지키며 사는 집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파고드는 당돌한 면을 지니고 있어요. 에드가 오가 사건의 진상을 찾지 못하고 헤멜 때마다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가 허당 짓을 할 때마다 갈궈주는(?) 소중한 역할을 맡고 있지요. 과외 선생과 학생이라는 서로의 역할이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종종 있어요.(웃음)

연주는 초고에는 없었지만 이야기를 개작하는 과정에서 추가된 인물이에요. 처음엔 ‘안락의자 탐정’을 떠올리며 만든 인물이었는데 그저 병약하게만 그리기엔 전형적이다 싶었어요. 그래서 에드가 오와 얽힌 과거가 있고, 그때는 밝고 순수하고 활기찬 인물이었다는 대비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설정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 되었고요.

세 인물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사는 시대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적응하지 못하거나 벗어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겠군요. 이 이야기, 그리고 이 시리즈의 이야기 밑바탕에는 이들과 세상 사이의 갈등이 깔려 있습니다.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은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 말고도 세 편의 이야기가 더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 편을 재미있게 읽으신 독자분들을 위해 다음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남은 세 편의 이야기 역시 1929년의 경성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작중 계절에 따라 각각 ‘봄편’, ‘여름편’, ‘가을편’, ‘겨울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 편 속 계절은 4월이었기 때문에 ‘봄편’에 해당합니다. ‘여름편’은 현재 ‘호랑이덫’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여름의 습한 무더위 속에서 뜻밖의 사건에 말려든 주인공 에드가 오의 또 다른 고생담이지요. ‘가을편’은 1929년 가을에 열린 조선박람회 행사의 열기에 휩싸인 경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에서 잠깐 등장하거나 언급만 되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면서 스케일이 부쩍 커진, 작가로서 꼭 써 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겨울편’은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의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내용입니다. 장르는 모험 소설쯤 되겠네요.

앞으로는 어떤 책을 쓰고 싶으신가요? 

무엇보다도 재미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저는 작가이지만 동시에 이야기꾼이기도 합니다. 창작이란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들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난 이야기라면 굳이 추리소설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어요.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 시리즈는 장편 네 편으로 끝입니다만, 여기 나온 인물들이 등장하는 여러 단편이 머릿속에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우선, 1929년 이전의 짧은 이야기 몇 편을 구상 중입니다. '레닌의 서명', '박석고개의 개' 같은 (어디에서 본 듯한) 제목을 임시로 달고 있지요. 그리고 1930년을 배경으로 후일담 형식의 짧은 이야기 네 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편으로는 크게 두 이야기를 담아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대한제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첩보물이고, 다른 하나는 독재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제 이야기를 재미나게 즐겨주시길,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품은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무경
 
부산에서 태어났다. 글 한 줄에 무한한 가능성과 힘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고 듣길 좋아하며 그런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도 전하고자 한다. ‘작가’보다는 ‘이야기꾼’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무경 저
부크크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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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