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 우연히 접한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덕분이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에게는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가 쓴 소설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으나 실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추리소설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추리소설은 재밌었다. 현실에서 범죄 피해자가 된다거나 피해자의 가족이 되는 일은 끔찍하겠지만 범죄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편, 범죄는 인간의 악에 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악이란 유전일까, 환경일까? 사법적 정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까?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원작이 책인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한국의 연쇄 살인마와 프로파일링을 다뤘다. 한국 최초 프로파일러 권일용 저자의 연쇄 살인 추적기인 이 책에서는 존 더글라스라는 인물이 거론된다. 미국 FBI 전설적인 프로파일러이자 『마인드 헌터』의 저자다.
『테이블 건너편의 살인자』는 『마인드 헌터』 이후로 오랜만에 소개되는 논픽션인데, 존 더글러스가 만난 4명의 살인자에 관한 기록이다. 4명의 살인자는 저마다 다르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데서 일치한다. 특히, 그 살인의 동기가 무차별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살인은 대개 범행 동기가 있고, 피해자 주변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무차별 살인의 경우, 범행 동기가 없다. 있다면, '살인' 자체가 동기다. 이들은 대개 어린아이나 노인, 여성 등 성인 남자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를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무차별 살인은 기존의 범죄와 다르기 때문에 수사 기법도 달라져야 한다. 불평등과 익명성을 거름 삼아 자라는 선진국형, 대도시형 범죄인 무차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프로파일링이 수사 일선에 도입되었다.
『테이블 건너편의 살인자』는 프로파일링의 대가 존 더글라스가 어떻게 살인자로부터 내면의 목소리를 끌어내는지, 이렇게 얻어낸 정보가 다른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특정하는 데 쓰일 수 있는지를 다룬다. 존 더글라스와 살인범 사이에 벌어지는 팽팽한 심리전을 관전하는 게 이 책이 품은 매력이다.
책에서 다루는 살인은 20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세계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범죄다. 먼저 첫 번째로 등장하는 조셉 맥고언. 20대 후반 고등학교 과학 교사였던 그는 걸 스카우트 활동으로 쿠키를 배달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찾아온 7세 소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초범이고, 재범에 대한 우려가 낮다고 평가하여 가석방 심의가 열린다. 당연히 유가족은 반대했고, 존 더글라스는 그와 면담하면서 조셉 맥고언의 내면에 존재하는 폭력성을 증명해냄으로써 가석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당신은 왜 아이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왜 열여덟 살 된 여성이 아니었나요? 왜 어린아이였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어요. 그렇게 어린 피해자들에 집착하는 당신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요?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까?”
콘드로의 대답은 놀라우리만치 직접적이고 간단했다.
“그냥 상황의 편리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아주 잘 믿고 뭐 그렇잖아요. 그리고 나는 그들의 가족과 아주 가까웠고, 그러니까, 나는 그냥 그들의 믿음을 이용한 거죠.”
_(208~209쪽)
두 번째는 조셉 콘드로. 그는 조셉 맥고언처럼 소아 성애자였다. 그가 선택한 범죄 대상은 다름 아닌 친구, 이웃의 자녀였다. 특별한 이해 관계나 원한이 없었지만 이용하기 쉽고 다루기 편해서 아는 사람을 범죄 대상으로 택했다. 놀라운 사실은, 조셉 콘드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낳았다는 점이다. 친자식을 성실하게 돌보진 않았다고 한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도널드 하비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살인마 중 가장 많은 사람을 죽였다. 확인된 바로만 87명. 그는 병원에서 근무했고,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환자들을 약물을 사용하여 살해했다. 죽음이 이루어지는 병원이라는 공간 특성상, 환자의 죽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네 번째 살인마 토드 콜헵은 어린 시절 저지른 범죄로 불우하게 보내긴 했지만, 갱생하여 성공적인 사업가로 살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오토바이 상점에 들어가 총을 난사하고, 사냥하듯 피해자를 총으로 쏴대는 폭력적인 인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존 더글라스는 이 책에 등장하는 4명의 살인마 외에도 다양한 살인 사건을 예로 들면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들의 갱생 가능성을 낮게 본다. 이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데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 나름의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가 살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형제를 채택한 미국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서 읽어야겠지만, 존 더글라스는 이들의 사형에 반대하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범죄자들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는 현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인생관의 관점에서 그들을 평가하고 싶어 하며, 그런 다음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일탈된 부분을 찾아내 다시 고치면 그들이 다시 ‘정상적’으로 생각하도록 할 수 있을까?’를 알아내려 한다. 글쎄, 많은 경우에 행동을 결정하거나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탈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 그의 범죄 충동에 따라 행동할 즈음이면, 그 일탈 부분은 대부분 아주 완벽하게 그의 전체 인격에 흡수되어서 우리가 결함 있는 기계 부품을 들어내듯 그것을 들어내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강력범에게 갱생이라는 개념은 문제가 아주 많다. 일단 훼손되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대개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_(320쪽)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지적하듯, 유영철과 정남규, 강호순의 존재는 한국이 무차별 살인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이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지, 이들 무차별 살인마가 탄생하는 사회 경제적 조건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참고로, 이들 연쇄 살인마들은 어린 시절에 야뇨증, 방화, 동물학대를 저지른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는지 주의해서 관찰하도록 하자.
존 더글라스의 신작 『테이블 건너편의 살인자』와 함께 읽을 만한 책으로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FBI 범죄 분류 매뉴얼』, 『대한민국 살인사건』,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등을 추천한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