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는 이의 서재에 한 권쯤 있다는 『이기적 유전자』. 누군가는 1978년 외서 초판을, 또 누군가는 2018년에 나온 40주년 기념 한국어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2022년, 예스리커버 『이기적 유전자』가 양장본으로 새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기적 유전자』를 출판하는 을유문화사의 박화영 편집자는 기존에 출간되었던 책과 차별화하면서도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번 리커버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만큼, 새로운 표지를 더해 독자에게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양장 제본으로 기획했다고. 독특한 종이를 표지에 사용하다 보니 인쇄소나 지업사와도 수많은 협의를 거쳤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결과는? “이미 가지고 있지만 소장용으로 하나 더 구입!”,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샀다.”, “오래도록 안 사고 버텼는데 하드커버라서 드디어 샀다.”는 칭찬이 이어진다. 이번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맡은 워크룸 김형진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워낙 스테디셀러인 데다 많은 사람들이 구입한 책이라 리커버 디자인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작업한 예스리커버는 40주년 기념판으로 나온 현재 판본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고, 이벤트 성격의 리커버였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과학에 문외한이다 보니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실감되지 않은 측면도 있고요.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는 제일 먼저 ‘제목이 재밌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기적 유전자』는 1978년 초판이 나온 이후 다양한 버전이 출간되었는데요. 2022년 예스리커버를 디자인할 때 염두에 둔 것이 있나요?
이 책의 역사적 계보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너무 멋진 표지가 있으면 주눅 들까봐서요. 제가 알고 있던 유일한 판본은 40주년 기념판이었는데 한국어판임에도 영문 제목이 크게 들어가 있어서 그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더 강조된 표지를 제안하게 되었어요.
표지에 쓰인 이미지에서 모래시계는 유전자가 작동하는 시간성을, 나선은 그것의 형태를 각각 나타냅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가 섞여 독자들에게 ‘유전자 지도’처럼 보여지기를 바랐습니다. 영문 서체는 나선 패턴의 선과 어울리는 것을 골라 사용했습니다.
이 책은 『코스모스』와 더불어 과학 분야의 양대 ‘벽돌책’으로도 불립니다. 읽으려고 20번 시도했다는 독자, 너무 무거워서 분책한 다음 제본을 해서 읽는다는 독자가 있기도 합니다.
사실 『이기적 유전자』가 벽돌책이라고 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1000쪽은 넘어야 벽돌책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요? 책의 두께를 고려해 특별히 마련한 장치는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하드커버 제본에서 책등이 직선으로 떨어지는 ‘각양장’보다는 둥글게 마감된 ‘환양장’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작업할 때는 각양장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등의 평면 때문에 더 두꺼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책이 두꺼운데도 가름끈이 없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사실 가름끈이 대단히 실용적인 장치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격식을 위해 남아 있는 장식에 가깝다고 여기는 편인데요. 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독서 습관, 그러니까 가름끈을 사용하지 않고 책 모서리를 접는 습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책을 만들면서 가름끈을 붙이면 아무래도 그 부분이 살짝 돌출되게 되는데 그런 불연속면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유고요.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 유전자』를 사놓긴 했지만 읽지는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디자인 작업할 때 전체를 일독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북 디자이너라면 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긴 하죠. “책의 핵심을 단박에 잡아냈다.”라는 수사를 쓰기도 하고요. 저는 이런 말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빠르게 책을 ‘스캔’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 내용의 대체적인 인상을 파악하고,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후루룩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역시 그런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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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