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작은 마을, 고요하고 느린 집에 두 명의 미니멀리스트가 산다. 그릇은 여섯 개, 수저는 두 세트, 방 안엔 책상과 이부자리 두 채가 전부. ‘삶의 군더더기를 하나하나 비워내자 우리에게 꼭 필요한 행복만이 남았다'는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복'은 없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엇을 갖지 않아도, 마음은 매일 단단한 목소리로 이들에게 속삭인다. 행복의 끝은 아마도 여기일 거라고. 불안은 훌훌 벗고 오직 ‘내게 좋은 것들'로 충만해진 이들의 이야기는 해처럼 곧고 단순한 진심으로, 당신이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초입 길을 비춘다.”
이 짧은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분은 어떤 그림이 그려지셨나요? 저는 우선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항상 ‘넌 부족하다, 뭘 더 가져야한다, 뭐가 되어야만 한다’ 같은 메시지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런 메시지들 속에서 이렇게 불필요한 것은 전부 비워내고 정말 내게 좋고 필요한 알맹이만 남은 삶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런 가벼운 삶도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나저나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단정하고 소박한 어떤 노부부 이야기 아니냐고요? 깨달음에 이른 스님? 사실 이 분들 무려 20대 커플입니다. 심지어 서울 토박이였죠. 도시에 살던 젊은이들이 갑자기 어떤 계기로 이런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들처럼 이런 군더더기 없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보면서, 작고 가벼운 삶, 미니멀한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살림살이를 적게 쓰는 그런 미니멀리즘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요. 아마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하고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요즘은 미니멀리스트라고 하면 심플하긴 하지만 넓고 새하얀 집에 비싸고 예쁜 물건들을 잘 정리해서 놓은 인스타그래머블한 모습이 떠오르죠? 비건이라는 단어가 그런 것처럼, 미니멀 라이프라는 키워드를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쓰는 경우도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읽어드린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를 쓴 두 사람은 제가 느끼기에 ‘찐’입니다. 진짜 있는 그대로 보여주죠. 제가 20대 커플이라고 말씀드렸죠? 류하윤, 최현우 님인데요. ‘단순한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의 영상을 하나만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게 될 거예요. 이 친구들은 강원도에서 7년째 북바인딩을 하면서 작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집에는 그 흔한 청소기, 침대, 세탁기도 없어요. 책상 하나에서 식사와 일까지 모든 걸 해결하고, 방바닥에서는 토퍼를 폈다 접었다 하며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잠도 자는 등 모든 생활을 하는 모습을 모여줍니다.
영상 아래엔 이런 댓글들이 달려있습니다. “이 커플 마치 신선 같다.”, “혹시 스님이세요?”, “이것이 진정한 미니멀리즘 아닌가? 있을 거 다 있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미니멀리즘이라며 갬성 영상 올리는 것 보다가 이 영상 보니 속이 뻥 뚤리네요.”, “단순한 물건의 최소화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신념이 보여져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이들이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기록들을 보면서 진작에 팬이 되었는데요. 댓글처럼 그냥 물건을 최소화해서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미니멀리즘적인 태도가 참 좋았어요. 마음이 복잡하고 불안할 때 이 친구들이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지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여름에 저는 동해에 갔을 때 이 두 사람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친구들과 저희는 종종 서로의 채널에 댓글로 안부를 전하는 랜선 친구였거든요. 서로 무척 반가워했던 기억이 나요.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은 어땠냐고요? 영상과 글로 보던 모습과 똑 닮아 있었어요. 생각보다 스님 같진 않았고요. 그냥 우리 또래의 모습과 같았어요. 우리는 첫 만남에도 서로 가진 고민과 생각을 다정하게 나누었죠. 그때 책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드디어 그 책이 나왔다길래 나오자마자 읽었고 역시나 참 좋더라고요.
이 책의 소제목들은 총 15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있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당신에게 필요한 집은 몇 평인가요?”,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다고 느끼나요?”, “얼마나 모으면 돈에 끌려다니지 않을까요?”, “원하는 미래를 원하고 있나요?”, “가족의 사랑이 짐이 되나요?” 제목들만 들어봐도 일반 미니멀라이프 실용서와는 다르죠? 두 사람은 정답을 건네는 책이 아닌 질문하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해요. 자신들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질문들을 널리 나누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들을 통해 자기만의 만족을 찾길 바란다면서요.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꼭 필요한 알맹이만 남겼듯, 이 책에도 우리만이 말할 수 있는 알맹이만 담으려고 했다’고 말이죠.
우선 두 사람이 집을 줄이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했던 것은 아니라고 해요. 이들이 함께 살았던 첫 집은 감나무가 예쁜 24평 단독주택이었죠. 저도 단독주택에 사는 로망이 있어서인지, 그 당시의 기록을 블로그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아담한 마당과 널찍한 옥상이 딸린 집에서 햇볕을 받으며 빨래를 널고, 동네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집안 구석구석을 내 취향대로 마음껏 꾸미면서 사는 삶. 제가 꿈꾸던 삶도 바로 이런 거였거든요. 두 사람은 그 생활이 좋았고 그 낭만을 모두 누리며 살았지만, 낭만 뒤에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불편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요. 멋진 감나무에서는 감나무 잎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매일 같이 마당을 쓸어야 했고, 제때 감을 따주지 않으면 터진 감들로 마당이 지저분해졌죠.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기름을 채워야 했고, 변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화조를 비우는 일도 잊지 말아야 했다고 합니다.
집의 편안함을 누리는 시간보다 집을 관리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에 대해 의문이 생긴 두 사람은, 결국 주택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8평 원룸으로 이사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수많은 생활용품과 가구들을 비워냈죠. 그때의 기준은 이거였다고 합니다. “있으면 좋지만 꼭 필요한가?” 그렇게 청소기, 정수기,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 같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소형 가전부터 카페트, 침대, 티 테이블, 수십 벌의 옷과 신발, 수백 권의 책과 노트, 그릇과 수저도 두 세트씩만 남겨두고 모두 나눔을 합니다.
원룸에 온 후에는 어땠을까요? 더 좁은 공간이니 자칫 작은 물건들 몇 개만 놓아도 꽉 차버릴 것 같은데, 이들의 원룸은 여백으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주택에 살 때는 텅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고 싶어서 티 테이블과 의자를 구매했지만 정작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일도 모두 책상에서만 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물건을 들이고 싶을 때 이렇게 묻는다고 합니다. “이 물건이 여백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가?” 작은 집을 꾸미는 최고의 인테리어는 바로 ‘꾸미지 않는 것'이라는 거죠. 아무리 예쁜 물건이나 가구일지라도 가져다 놓는 순간 발 디딜 곳이 줄어드는 게 보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집을 줄인다는 게 비단 살림살이만 줄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대부분 점점 더 큰 집, 더 좋은 집을 당연하게 원하고, 그 집을 갖기 위해 너무 많이 일하죠. 이 친구들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 덜어지니, 돈을 버느라 쓰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하는 데 쓰고, 또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시도해보는 것에 부담이 없어졌다.”는 거였어요. 집에 드는 돈이 줄어든 이들은 일하는 시간도 줄입니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고 해요. 앞서 말한 대로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지치지 않고 계속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저는 응당 좋아하는 일을 하나 하기 위해서라면 하기 싫은 일 아홉 개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제 생각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였죠.
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삶에서 줄이고 비우며 억제하는 삶이 아닌,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고 닦아내며 찾아낸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효율만을 외치는 세상 속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진정한 행복의 알맹이를 찾은 이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비록 제가 언젠가 이런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레일 위에서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할 때, 이런 삶도 있으니 너무 막막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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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크리에이터)
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