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국적의 사회학자 혹은 저널리스트로서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의 특성에 관한 인문서와 에세이를 써서 우리의 지평을 넓혀준 저자들은 지금까지 제법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을 쓴 저자 안톤 숄츠는 기존 저자들과 달리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청소년 시절 태권도를 매개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불교와 선사상에 매료되어 한국의 문화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후 20년 넘게 다양한 직업인으로서 우리 사회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안톤 숄츠는 독일 공영방송 ARD 프로듀서와 프리랜서 기자로 활약하면서 저널리스트의 입장으로, 미디어회사를 운영하고 외국과 한국의 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개인사업자의 관점으로, 국내 대학의 독일어교육학과의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육자의 입장으로, 결혼하고 한 아이를 낳고 기르는 학부모의 자격으로 대한민국 각 분야의 현장을 체험하며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지켜봐 왔다. 평범한 한국 사람보다 한국 사회의 이면을 다채롭고 깊이 있게 경험한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책을 쓰시게 됐나요?
그동안 TV 프로그램이나 여러 미디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티브이 프로그램은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메시지가 잘려 나가기도 했고, 인터뷰가 실린 기사의 경우도 지면이 한정되다 보니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미디어에 모습을 자주 보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긴 한데, 제가 정작 어떤 사람인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나마 알고 계신 분들도 ‘독일 기자’ 정도로 절 인식하시는 것 같고요.
사실 저는 언론인이 맞긴 한데, 그건 제 다양한 직함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전 평범한 사람보다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습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 현장에도 있었고, 외국과 한국의 기관 및 기업 사이에서 비즈니스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중간자적 역할을 맡기도 하고, 현재 작은 회사를 꾸려나가면서 사업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로 살고도 있지요.
저는 청소년 시절에 태권도를 배우고 불교 선사상을 공부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쌓았습니다만, 본격적으로 한국인들과 한국사회를 만난 건 1994년 수행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시간을 따지면 20년이 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양한 사회 현장에서 오랜 기간 한국인들의 의식구조, 사회의 변화 등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쌓이더라고요. 언젠가 이런저런 내 생각을 담은 책을 내야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연찮게도 출간 제안을 맡았고 그동안 묵혀 두었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출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콕 짚어서 ‘행복’을 이야기하신 이유가 있나요?
1994년에 제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 먼 나라에 무작정 온 줄 아세요?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독일에서도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전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컸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고 싶은 모험심이 발동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저는 제 삶에 대체로 만족합니다. 행복했던 순간도 참 많았고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1994년에 비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유럽, 남미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화를 즐기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잖아요. 제가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한국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느냐며 주변에서 절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 사이 한국의 국력, 인지도가 이렇게나 바뀌었어요.
그런데 참 놀랍게도 눈부시게 떠오르는 국가 브랜드와 달리 이 나라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 행복한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실제로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표들도 위험을 알리고 있어요. 자살률은 세계 최상위고, 출산율은 최하위 수준에, UN 산하 자문기구에서 하는 ‘행복지수’도 최하위 수준입니다. 나라는 부강해졌는데, 사람들은 왜 이리 힘들어하지? 언뜻 이해가 안 되고, 모순적인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행복’의 본질, 더 정확히는 한국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들어 있는 행복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행복’이잖아요. ‘행복은 뭘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는 나, 나의 현실,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거의 모든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도 싶었습니다.
구성이 흥미로운데, 간단하게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행복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물질적인 요소가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부동산, 연봉, 학력 등등 말이죠. 그렇다면 물질적인 요소가 과연 행복을 느끼는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밀도 있게 들여다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챕터 자체를 물질적인 요소들로 나누었어요. 1장은 일과 연봉을 주제로, 2장은 여행, 3장은 집, 4장은 교육입니다. 각 장에서는 제 나름대로 주제들을 심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5장은 1에서 4장까지 미처 담지 못한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행복에 대한 개념과 범위를 넓혔다고 할까요? 사실 개인이 행복하려면 사회 인식 또한 개인의 행복을 존중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거든요. 행복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랄까요? 그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책에서 행복을 저해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쓰셨는데요,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지금도 이해가 안 되고 시급하게 고쳐야 할 문제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인가요?
너무나 어려운 질문인데요. 사실 많은 것들이 납득이 안 돼요. 물론 이해는 가요. 한국 사람들이 왜 그토록 ‘내 집 마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애들 교육은 속칭 ‘일류대’ 진학에 올인학고, ‘대기업’과 ‘연봉’에 목을 매는지. 문제는 이 모든 게 본래 목적을 잃고 ‘수단’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를 테면 ‘교육’이란 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성숙해 가는 삶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선 남들보다 특권과 명예를 누리기 위한 수단이 돼버리잖아요. 비슷한 관점에서 보면 집, 직업도 마찬가지예요. 집, 교육, 직업 등이 본래 의미를 잃고 수단이 되어버리는 세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쯤 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다룬 건 대한민국의 ‘서열 문화’예요. 랭킹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거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서 서로의 지위를 결정하고 재단하는 것. 그것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자세. 아이러니하지만, 한국이 수십 년 만에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선진국이 된 원동력이 ‘비교’에 집착한 원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깜짝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1등, 2등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명예를 주는 건 낡은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죠. 시대도, 환경도 바뀌었는데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아직도 여전히 ‘서열문화’가 존재하고 있어요. 이 낡은 사고방식이 차츰 사라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시도와 노력을 사회구성원들이 받아들여 준다면 행복한 사람들도 늘어나고, 출산율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첫 책을 쓰시면서 느낀 점을 말씀해 주세요.
수도 없이 방송에 출연해 보기도 하고, 칼럼도 써보고, 사업 보고서도 작성해 보는 등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보았지만, 책을 써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제 책이라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 부모님 그리고 아내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만들어졌기에 어떤 점에서 공동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간도 많이 들었고, 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작업이었습니다. 제 인생과 가족 그리고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이전보다 더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속 깊은 이야기를 이 책에 풀어놓았습니다. 어떤 분들이 보기엔 굉장히 불편하고 아픈 대목도 있을 거예요. 저는 토론을 좋아하고, 돌려서 말하기보다 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고, 게다가 이 책에는 주로 비판적인 이야기를 실었거든요. 저는 단순히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제 정체성의 반은 한국인이라 생각할 만큼 저는 이 나라와 한국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오래된 사고방식을 바꾸면 충분히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이 ‘행복을 꿈꾸는 한국 사람들에게 보내는 달콤쌉싸름한 연애편지’인데, 말 그대로 달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감도는 연애편지를 읽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여러분의 인생과 여러분이 살아갈 한국 사회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해 본다면 저자로서 바랄 것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톤 숄츠 독일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부터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는 한편으로 동양의 철학,종교,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열여섯 살 때, 함부르크 시내의 지하철역에서 우연찮게 본 태권도장 광고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신체적 기술뿐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까지 강조하는 태권도에 흠뻑 빠져들었고, 몇 년 뒤에는 불교로 관심의 영역을 넓혔다. 때마침 한국에서 독일을 방문한 한 스님의 강연을 듣고 그 스님의 조언에 따라 한국에 들어와 수행을 시작했다. 1994년 처음 한국을 방문할 때만 해도 1년 정도만 머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과 한국 문화에 매료되어, 일본 사찰에서 1년을 더 수행한 뒤 함부르크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20년 넘게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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