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글쓰기’라는 주제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7편과 문장들을 한 권의 책 『여성과 글쓰기』 에 담았다. 페미니즘 글쓰기의 정전(正典)으로 불리는 『자기만의 방』이 어떤 계기와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와 더불어, 어쩌면 뻔해 보일 수도 있는 사실을 전혀 뻔하지 않게 풀어나간 울프의 유려하면서도 탄탄한 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자기만의 방』과 함께 실린 여섯 편의 ‘여성’ 에세이는『자기만의 방』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여성이란 무엇인가?”와 여성의 삶을 탐구해온 작가의 치열함과 진심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여성과 글쓰기』를 번역한 박명숙 작가와 서면으로 만났다.
『여성과 글쓰기』에 실린 작품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기출간된 작품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책은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들에게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세계에 좀더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면서, 그녀의 폭넓은 세계를 느끼고 이해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장편소설과 에세이, 서평 등을 술술 읽어 내려가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보기엔 아마도 울프의 작품 중 『자기만의 방』이 독자들이 가장 읽기 쉬운 글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읽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요. 이 책 『여성과 글쓰기』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1부에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자기만의 방』과 여섯 편의 ‘여성’ 에세이를, 2부에는 그동안 제가 애정을 가지고 죽 작업해온 작가의 문장들 시리즈(오스카리아나, 제인 오스틴의 문장들, 소로의 문장들)와 그 맥을 같이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을 원문과 함께 실었습니다.
저로서는 작가의 문장들을 원문과 함께 싣는 작업이 처음은 아니지만,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은 그 난해함과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인해 번역이 더욱 어렵기 때문에 원문을 꼭 함께 실어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모든 번역이 그렇듯 저의 번역이 완벽하다고 할 수도 없을뿐더러,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완벽하게 우리말로 옮긴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울프의 문장들이 모두가 난해한 것은 아닙니다. 의외로 전혀 그렇지 않은 문장들도 많답니다. 이 책에도 그런 문장들이 많이 실려 있고요.
고전 애호가들 사이에서 믿고 읽는 번역가로 알려져 계신데요. 『여성과 글쓰기』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번역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이런 말씀(평가)을 듣는 것은 사실 굉장히 민망하고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저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들과 훌륭한 번역가들이 많으신데 제가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싶어서요. 그럼에도 어여쁘게 봐주심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답변을 드릴게요.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과 중압감이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기획하고 구성하고 번역하는 데 유난히 시간이 많이 걸렸고요(오래 기다려주신 편집자님과 북바이북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책이 정말 많이 번역된 만큼 오역이나 매끄럽지 않은 표현 혹은 잘못된 사실(팩트) 등도 많이 발견되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비단 버지니아 울프의 책에서만 발견되는 건 아니지만요. 번역가이자 독자로서 그런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으면서도 자꾸만 눈에 거슬리고 안타까운 적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 책 『여성과 글쓰기』에서는 그런 아쉬운 점들을 최대한 보완하고 바로잡고자 노력했고요. 물론 기출간된 울프의 작품들을 모두 살펴본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의 이해와 읽기를 돕기 위해 기출간된 번역서들보다 꼼꼼하고 충실하게 역주를 달았다는 점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흔히 가독성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역주(각주)를 최대한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책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와 『자기만의 방』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많은 각주를 달았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가독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고요.
기존에도 나와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이 많은데요. 많은 독자가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어렵지만 자꾸만 이끌리기 때문에? 어쩐지 자꾸만 캐다보면 보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처음에는 “이게 뭐야?” 했다가 자꾸만 읽을수록 “오, 이거였어! 그래, 바로 이거야!” 하고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라서? 어쩌면 많은 독자들이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계속 찾는 이유는 수십 가지도 더 댈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꾸 곱씹을수록 더 깊이 있고 다양한 의미와 느낌을 전해주는 훌륭한 문장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곱씹는다’라는 말에는 작품들을 한 번 이상 읽어보기를 권하는 마음이 포함돼 있고요. 무엇보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에는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습니다. 이 책 『여성과 글쓰기』의 2부를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로 구성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고요. 그런데 편의상 문장들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인용된 구절마다 번호를 붙여놓았지만, 긴 문장들로 이루어진 꼭지들이 많아서 사실상 350개보다 훨씬 많은 문장들이 실려 있는 것이지요.
나중에 꼭 번역해보고 싶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있으신가요?
저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이미 너무 많이 번역이 돼 있으니까요), 만약 울프의 또 다른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면 장편소설 『등대로』를 번역하고 싶습니다. 울프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아하는 작품이고 그 때문에 계속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고 있지만, 『등대로』는 정말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일곱 편의 에세이를 번역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모든 번역은 어려운 면이 있기 마련이지만, 『자기만의 방』이 결코 번역이 쉬운 작품이 아니라서요. 곳곳에 지뢰밭이 숨어 있다고 할까요. 자칫하면 오역을 하기 쉬운 부분도 많고, 원문을 매끄러운 문장들로 옮기는 데도 무척 공을 들여야 했답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이 강연문을 다듬고 보완해 책으로 펴낸 것이기도 하지만, 함께 실린 여섯 편의 ‘여성’ 에세이도 모두 마치 버지니아 울프가 지금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구어체를 사용해 옮기면서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읽히게 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종종 즐기면서 읽기에는 다소 어렵고 난해한 작가로 여겨지는데요. 울프의 작품 세계와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을 따로 원문으로 소개하셨다고요.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정해진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요, 사실 문장의 선별은 제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고 봐야겠지요. 일단 제가 좋아야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알리고 싶을 테니까요. 하지만 물론 저의 취향과 기호로만 문장을 선별한 것은 아니고요, 버지니아 울프의 독특한 표현 방식과 작품 세계를 반영한 많은 문장들을 함께 실었답니다. 그간 오스카 와일드, 제인 오스틴,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의 문장들을 작업해온 경험이 이번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을 작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이런 건 TMI(Too Much Information) 같지만, 처음에는 두꺼운 책을 내는 데 조금 부담을 느꼈었는데 작업을 하다보니까 자꾸만 욕심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제 욕심대로만 책을 만들 수는 없는 거라서 편집자님의 눈치를 살짝 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분량을 늘려갔답니다. 사실 제 욕심대로라면 더 두꺼운 책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여성과 글쓰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센스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 만족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중에서 번역가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과 좋았던 구절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장편소설 중에서는 『등대로』와 『댈러웨이 부인』을 좋아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영원한 명작 『자기만의 방』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좋았던 구절을 고르는 건 불가능한 미션 같네요. 이 책에 실린 모든 문장, 모든 구절이 다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장들을 선별하고 옮기는 데도 약간의 편애가 작동하다 보니 『등대로』와 『파도』(읽기는 어렵지만 보석 같은 문장들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비교적 많은 문장을 선별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을 읽으실 독자들이 어떤 문장, 어떤 구절을 좋아하실지가 더 궁금하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가 태어나 우리에게 이 많은 작품과 글을 남겼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 덕분에 우리는 단지 약간의 돈과 시간을 들여 책을 사서 읽는 것만으로 커다란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문학과 글과 삶을 사랑하는 이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읽지 않고 그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손실이 아닐까요.
이 책 『여성과 글쓰기』는 그동안 버지니아 울프를 알기를 주저했던 사람들, 그녀의 작품을 읽다가 도중에 책장을 덮은 사람들, 언젠가 읽긴 읽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사람들, 버지니아 울프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녀의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야만 하는 이들 모두에게 좋은 친구와 동반자가 되어주리라 확신합니다. 서로의 느낌과 이해를 공유하고 싶은 책벗들과 함께 읽는 것도 적극 추천하고요. 바야흐로 책 읽기 좋은 계절 5월에 버지니아 울프를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함께 빠져보심이 어떨는지요.
*박명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보르도 제3대학교에서 언어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을 공부하고 몰리에르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와 배재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출판기획자와 불어와 영어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의 문장들』, 제인 오스틴의 『제인 오스틴의 말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제르미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전진하는 진실』,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 『오스카리아나』,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 『거짓의 쇠락』,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알베르 티보데의 『귀스타브 플로베르』, 조지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도미니크 보나의 『위대한 열정』, 플로리앙 젤러의 『누구나의 연인』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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