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가족 친구, 그리고 나. 누구에게나 차마 애증이지 못해 애정이었던 관계가 있다. 때론 포기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를 작가 해이는 우리가 관계를 쌓는 과정에서 배운 사랑의 가치와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너를 사랑하려다 나를 사랑해버렸다』는 포기할 수 없던 애증의 관계에서 배운 그 사랑을 이제는 '나'에게 돌리자고 말한다. 스스로를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고 말하는 작가를 만나 책에 대해 들어봤다.
『너를 사랑하려다 나를 사랑해버렸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울컥해본 적 있으세요? 환승하려고 서있었던 버스 정류장에서 마음이 움직여 집까지 걸어본 적 있으세요? 그랬다면 우리의 사이가 낯설어도 이 책은 낯설지 않을 거예요. 『너를 사랑하려다 나를 사랑해버렸다』는 자주 변화무쌍 해지는. 사랑 때문에 온 밤을 써가며 아프지만, 아침이 오면 다시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사랑, 이별, 그 후에 찾아오는 사랑의 쓸모들. 이불 속에서 읽으면 내일 아침이 한결 나아질지도 모르겠어요.
제목만 보고 직진 질문하겠습니다. 이 책은 사랑 이야기인가요?
네, 사랑 이야기가 맞습니다. 사랑이 빠지면 재미없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소재지만, 가장 힙한 것 역시 사랑 얘기죠. 그러나 사랑의 대상을 누구로 국한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타인에게 오래 머물렀던 사랑이 책의 말미에선 '나'에게로 전이가 됩니다. 스포일러인가요? 책을 쓰는 내내 묻고 싶었거든요. 그 사람을 사랑했던 만큼 진심을 다해 '나'를 사랑해 본 적이 있냐고요. 밤새 고심 끝에 내린 누군가를 위한 결정이 나를 망쳐 놓지는 않았냐고요.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운 사랑 중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고르고 골라서 '나'를 채워줘야 할 차례예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프로 사랑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만큼 실연도 많았을 텐데요. 작가님에게 가장 아팠던 이별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책에서도 썼지만, 저의 아픔 또는 이별에는 최상급이 없습니다. 슬프고 힘들었지만 견딜만했기 때문이겠죠. 다만 오래도록 뇌리에 남은 이별 사건은 있습니다. 그날은 저의 생일날이었습니다. 사실은 그날만큼은 그와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는 제 생일에는 별다른 염두가 없는 것 같았어요. 이대로 있다가는 외로운 생일을 보내게 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생일날 만나서 맛있는 것 먹자는 친구들의 말에 반박 없이 응했습니다. 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요. 드디어 그날이 되었고, 오후 네시쯤 전화가 왔어요. 그는 어디냐고 물었고 저는 오지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그는 영영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오래 저의 생일은 이별 기념일이 되었어요.
책 중 ‘장래희망’이라는 에피소드가 인상 깊습니다. 작가님의 현재 장래희망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는 거대한 꿈들에 사로잡혔습니다. 천문학자, 기상캐스터, 희대의 소설가 같은 것들이었죠. 물론 이 중에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모든 꿈의 처음은 그렇습니다. 허무맹랑하고 거칠 것이 없죠. 그러다 실현 가능성에 가까워질수록 갈고 닦여서 꿈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꿈이 작아지는 것이 좋아요. 사실 지금은 '저서가 있는 작가'라는 근래의 꿈을 막 이룬 상태라서 다시 처음 앞에 섰습니다. 스테디셀러 작가, 히트메이커 작사가, 운동하는 건강한 언니. 되고 싶은 것들이 다시 거창해졌어요. 조만간 이 꿈들이 작아지길 바랍니다.
독자들이 이건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는 가장 애착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그걸 해내면’과 ‘그건 아마 사랑이야’. 이 두 편은 연속성을 가졌습니다. 사랑을 갓 시작하는 두 사람의 감정을 묘사한 각각의 에피소드인데, 장담컨대 이런 경험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귤’은 어린 시절, 소파에 누워 엄마와 나눈 대화입니다. 따스했던 엄마의 말들이 지금의 저를 애정 과다의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아요. ‘그게 안 되면’을 쓸 당시에 저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을 경험했던 날입니다. 그럼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순응해야만 했던 밤이죠. 그래도 박재범은 좋다. 뭐 그런 취지의 이야기고요. ‘쉬운 문제 하나 낼게’는 제가 사람과의 일로 속상하거나 나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지는 날, 마음을 다잡으려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싫다고 떠난 한 사람 때문에 언제까지 울고 있을 건가요. 내가 좋다고 찰떡처럼 내 옆에 붙어 있는 사람들을 기억해야죠.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들에도 애정이 많아 보이십니다. 실제 성격도 그러신가요? 요즘 좋아하는 것들이나 영감을 주는 것들을 알려주세요.
좋아하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단연 최고는 『그해, 여름 손님(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멋진 신세계』예요. 사실상 제가 쓰는 글들과는 괴리가 있는 작품들이죠. 저는 일상의 소재들을 말랑말랑하거나 출렁거리는 문체에 녹이기 좋아하는데, 그 작품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묘하게도 비일상적이거나 사유 깊은 문장들을 읽다 보면 영감이라고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순간이 옵니다.
이 책이 어떤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으면 하나요?
마음이 헤픈 사람,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하루에 ‘좋아요’ 100개씩 누르고 다니는 사람, 눈물도 많은 사람, '외강내강'인 척하지만 혼자 있을 땐 '외유내유'인 사람. 그런 분들에게 지금은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보단 어떤 의미로든지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는, '내 얘기 같아.' 딱 그 한 마디만 해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해이 8월생. 자주 속상하지만 잘 괜찮아지고. 새로운 것에 서슴없이 다가서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해에도 썼고 지금도 씁니다. 오래 좋아해 온 일이라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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