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며 움켜쥔 동전들
달도 차오르고 줄듯, 삶의 여정에서 현실에 만족하는 시절이 있고, 염증을 느끼며 달을 그리워하는 시절도 있겠지 싶다.
글ㆍ사진 남기산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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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을 꼽으라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이야기할 것이다. 내 정체성을 잘 알지 못했던, 그래서 원하는 삶을 그려보고 지우기 바빴던 스무 살에 읽었던 책. 당시 책이 내게 던진 물음은 강렬했다.



별다른 특징 없이 은행원이자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살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신내림을 받은 듯 예술의 열병에 걸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이야기다. 화가 고갱을 모티브로 쓰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제목의 '달'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을 '6펜스'는 현실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때, 보통은 소싯적에, 손가락으로 저 달을 가리켰지만, 말 그대로 먹고 살다 보니 현실의 문제를 위한 6펜스에 골몰하게 된다. 오늘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저 달을 위해 내일의 6펜스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스무 살 언저리의 나는 달을 좇겠다며 다짐했지만, 굽이쳐오는 삶의 고개를 넘다 보니 어느새 6펜스를 꾹 움켜쥐고 있었다. 손에 쥔 얼마간의 동전들에 만족하다가, 지금의 나에게 손가락을 들어 가리킬 달이 있는지 초조해질 때도 있다.

고백하자면 스무 살의 나는 6펜스를 비웃었다. 평범한 직장인과 주부로, 아이들을 키우며 '누구 엄마 아빠'로 살아가는 사람들. 당시 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좇아 살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상과 가끔씩의 술자리,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 정주행 같은 일들로 점철된 삶에 숨 막히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다만, '시시한' 사람들을 비웃던 그때와 달라진 점은 모두가 달을 따라 살 수 없음을 안다는 것 정도. '스트릭랜드'는 내면 깊이 숨어있던 예술혼을 불태우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그 결정은 동시에 그의 가족과 조력자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는다. 그의 여정은 마치 그들을 제물 삼아 나아가는 듯했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본 내 아버지의 삶은 6펜스만을 위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나는 달을 그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모두가 달만을 좇으며 사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현실을 위해 이상을 내면 한구석에 넣어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상을 좇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 한편,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지상에 두고 가끔 자신이 가리키던 달을 올려보며 살아가고 있을 거다. 달도 차오르고 줄듯, 삶의 여정에서 현실에 만족하는 시절이 있고, 염증을 느끼며 달을 그리워하는 시절도 있겠지 싶다. 그러니까, 스트릭랜드와는 달리 우리 삶에 달과 6펜스는 밀물과 썰물처럼 차오르고 빠져나가고 한다. 밀물과 썰물 그 어디쯤에서 두 다리로 버티고 있는 나와 많은 사람들을 응원한다.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저 | 송무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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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산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게 인생이라던데 슬픔도 유쾌하게 쓰고 싶습니다. kysan@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