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에는 커다란 가족의 비극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딸을 잃어버리고 깊은 슬픔에 빠져버린 엄마,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아빠, 그리고 동생을 잃은 슬픔과 자책감에 빠진 주인공 '현수'까지. 가장 행복한 순간, 아름다운 휴가지에서 동생의 실종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맞닥뜨린 현수는 시간이 흘러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절대로 눈에 띄고 싶지 않다'(14쪽)고 생각하는 사람이 된 현수에게 뜻밖에도 대뜸 비밀을 털어놓는 '수민'과 <서프라이즈>에 나온 사연들을 줄줄 읊는 '서재복 선생님'이 다가온다. 그렇게 이상하지만 이해가 되는 사람들과 함께 현수는 슬픔의 깊은 강을 묵묵히 건넌다.
조우리 작가는 많이 울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깔깔 웃고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각자 인생의 힘듦과 슬픔, 괴로운 일들이 있음에도 가족끼리 얘기를 잘 안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 있는 보호자와 아이가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을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조우리 작가는 그래서 슬픔을 달래는 작은 말, 그 주문과도 같은 말에 집중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그 말들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것. 그러한 말은 곧 사랑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몇 권의 책을 냈는데요. 넓게 보면 전부 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더라고요. 제가 사랑에 되게 관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도 결국에는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 언저리에서 소설을 쓸 것 같아요."
무엇이 결국 살아내게 하는지
처음 책의 물성을 보고 받은 느낌과 작품으로 들어갔을 때 느낌이 달라서 깜짝 놀랐어요. 생각보다 훨씬 슬픔 자체에 대한 얘기가 많더라고요.
독자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깔깔 웃고,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다행히도 리뷰를 보니까 웃었다는 말과 울었다는 말을 함께 얘기하시는 독자 분들이 많았어요.
이 이야기는 서서히 이별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책에는 자기만의 슬픔을 건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소설이 라디오 사연에서 시작되었다고요?
그보다 먼저, 처음 시작된 건 영국에서 생활할 때예요. 그곳에 있을 때 어린아이가 휴가지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거든요. 영국 전체에서 계속 뉴스였어요. 진짜 비극인 것은 가족끼리 행복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아이를 누군가 유괴했다는 거예요. 그때의 충격이 오래 남아 있었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 라디오를 듣는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매일 울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있었는데 치킨 냄새를 맡고 배가 고파서 치킨을 시켰다는 거예요. 눈물도 멈추지 않고 먹는 것도 멈출 수 없다는 사연이었어요. 그때 두 장면이 겹치면서, 빛의 한가운데에서 찾아오는 비극과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다가오는 작은 힘을 연결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이 소설의 출발점이 있었어요.
말씀하신 두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동시에 이런 장면이 작가님의 어떤 생각과 포개진 것인지도 궁금하거든요. 작가님의 관심사나 계속 곱씹고 있던 생각도 있었을 것 같아요.
슬픔을 겪은 사람들, 그들의 주변에서 그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 마음을 나누고자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거죠. 전부 다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사람을 결국 살게 하고 살아내게 하는지 말이에요. 정말 놀랐던 게, 책이 나오고 리뷰를 몇 개 읽었는데요. 세월호를 언급하시는 독자 분들이 몇 분 계시더라고요. 그것이 되게 찡했어요.
소설에는 가족의 실종, 특히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어린 어린이의 실종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나와요. 그 사건들을 작품에서 다루실 때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일단 처음에 제가 이입을 한 인물은 주인공 '현수'의 엄마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야기가 무척 어두웠어요. 처음에는 엄마가 훨씬 더 무너졌고, 약간 엉망이 되거든요. 나중에 수정을 하면서 엄마가 무너지더라도 완전히 무너지면 안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현수도 어떤 결과를 갖든 살아가게 되겠구나, 하고요. 그러면서 현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많이 붙였고요. 덕분에 처음보다 엄청 많이 경쾌해졌어요. 사실 슬픔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24시간, 매분 매초 슬프지는 않잖아요. 가끔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 순간도 있고요. 그래서 그런 순간을 함께 하는 인물들로 '수민'이라든지 '서 선생님'을 두고, 이들의 비중을 키우면서 이야기가 균형을 찾은 것 같아요.
매 순간 슬프지는 않다는 말씀이 중요하게 들려요. 큰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이 슬프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놀라거나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시선들이 많으니까요. 소설에도 이슈거리를 찾아 슬픔을 소비하는 유튜버를 비롯한 사람들이 등장하죠. 이에 대한 작가님의 문제의식도 느껴졌어요.
말씀처럼 2차 가해가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죠. 특히 미디어에서 그래요. 소설에는 일부러 그런 장면들을 기사처럼 썼는데요. 그렇게 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기사 형식으로 이야기 속에 들어가면 독자들이 읽으면서 제3자의 입장을 바라볼 때 화자의 입장에 이입을 하면서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바람으로 기사로 집어넣거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글처럼 집어넣은 거예요.
제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읽기를 되게 좋아해요. 기사를 비롯한 인터넷에 게시된 많은 글들을 읽는 편인데요. 읽다 보면 댓글도 보잖아요. 그럴 때 댓글로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봤어요. 그게 너무 답답했고요. 당사자라면 그런 것을 어떻게 느끼는지 간접 경험을 하면 많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한 번쯤은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넣은 대목이에요.
저마다 아주 다를 수 있는
현수, 수민, 서 선생님 모두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에요. 특히 서 선생님은 전형적이지 않고, 나중에 드러나긴 하지만 자기만의 고통도 안고 있는 인물이거든요. 현수와 함께 일종의 성장의 길을 걸어가는 인물로서 서 선생님을 그렸는데요. 이 인물을 작가님은 어떤 상상을 하며 만들었나요?
딸 아이가 <세상에 이런 일이>나 <서프라이즈> 같은 프로그램을 되게 좋아해서 옆에서 같이 봤거든요.(웃음) 보면 세상에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요, 그분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나름의 논리가 있고, 사연이 있고, 서사가 있는 거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저마다 다 있더라고요. 서 선생님은 그런 캐릭터에서 나왔어요. 약간 이상한데 자기가 어떤 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니까 삐끗하게 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상하지만 그렇게밖에 그 일을 견딜 수 없었던 캐릭터를 생각하며 썼어요. 꼬아서든 어떻게든 충격을 내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존재가 된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의 이상함에 되게 애틋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수민이 역시 엉뚱한 매력이 있죠. 덕분에 수민이 등장할 때마다 상쾌해지고요.
수민이 같은 경우, 말을 되게 엉뚱하게 하잖아요. 제 딸이 말을 좀 그렇게 해요.(웃음) 아이가 말하는 템포 같은 걸 평소에 기록해 놨다가 이번 소설을 쓰면서 가져다 썼어요.
주인공 현수는 어떤가요? 혹시 작가님의 어떤 면과 닿아 있는 인물일까요?
제가 십 대 때 되게 조용하고, 학교에서 눈에 안 띄고 싶다고 많이 생각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때의 마음이 많이 반영된 인물이죠. 생각해보면 학교에 정말로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고, 되게 가라앉아 있고, 소통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생각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훨씬 더 무존재감에 집착하는 아이였는데 많이 덜어냈어요.
제가 언젠가 잠깐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남자 중학교였는데요. 엄청 시끄럽고, 계속 물건을 집어 던지고,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제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망했다, 생각하고 돌아서곤 했어요. 하루는 학생들이 숙제를 안 내니까 제 이메일로 숙제를 제출하라고 주소를 알려줬는데요. 놀랍게도 메일에는 자기의 고민을 적은 글도 오고, 아주 그럴듯한 글도 있었어요. 심지어 제일 시끄럽던 학생이었는데 그런 글을 보냈더라고요. 그걸 보고 친구들 앞에서의 모습과 혼자 있을 때, 그리고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는 저마다 아주 다를 수 있는 거란 걸 알았죠. 그때의 기억이 현수를 쓰면서 또 떠올랐어요.
쓰면서 제일 마음이 많이 갔던,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수민이랑 현수가 개의 유골을 안고 차 안에서 개의 특징을 막 적잖아요.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거기서 수민이가 왜 기록하냐고 물으니까 현수가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을 하거든요. 그 말은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한테는 되게 의미가 있는 장면이에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마음을 정하고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개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내가 아는 개의 특징들을 썼다. '공을 무서워한다. 생선을 주면 씹다가 뱉는다. 개를 부르면 컹컹 짖는다. 오줌과 똥을 따로따로 싼다.'
"뭐해?"
"개에 대해 쓰고 있어."
"뭐 하려고?"
"잊지 않으려고." _(173~174쪽)
사람을 살게 하는 말
현수가 자고 일어나면 어른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어요. 스스로 어른이 됐을 때를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그 장면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멈춰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어른 됨'은 어떤 건인가요?
사회적으로는 19살에서 20살이 되면 어른이라고 하죠. 그렇지만 어른이 됐다는 감각을 그때 곧바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성장이라는 게 10대 때까지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거의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요. 최근에 읽은 김지은 평론가님의 책에서 '어른이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상태를 이야기한다'는 문장을 보고 되게 양가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됐거든요.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건 변할 필요가 없는, 성숙한 단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없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 거잖아요. 만약 어른이 되는 시기가 개인마다 다르다면 저는 최대한 늦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어른이라는 게 딱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어른도 살면서 계속 바뀌니까요. 저는 이제 난 어른이라는 생각을 최대한 유예하면서 살고 싶어요.
장래 희망을 직업이 아니라 되고 싶은 것으로 말해보라는 수민이의 질문도 정말 좋죠. 이것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보자는 작가님의 말씀처럼도 들리고요.
가끔 학교에 강연을 가서 학생들한테 뭐가 되고 싶은지 질문하면 백이면 백 전부 직업을 얘기해요. 작가나 선생님, 회계사가 되고 싶다는 식으로 대답을 하는데요. 그때 직업 말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하면 그제서야 엄청 다양한 이야기를 해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면서요.
흔히 뭐가 되고 싶은지 물으면 당연히 직업을 묻는다고 받아들이는데요. 사실 지금은 평생 직업을 갖기도 힘들고, 또 지금 그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해서 그 직업으로 계속 살아갈 가능성이 높지도 않죠. 생각하면 직업 외의 부분들에 훨씬 더 중요한 게 많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직업 외의 부분도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요. 그것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소설에 담았어요. 그런 질문들을 더 많이 던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작가님이 현수에게 주고 싶은 미래는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네요.
누군가를 그냥, 우연히 살게 하는 힘은 아주 작은 선의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인터넷 서핑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보면 어떤 아이가 학대를 당해서 사망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법정 앞에서 시위를 하고요. 억울한 일이 벌어지면 자기 일도 아닌데 모르는 사람들이 청원을 하고, 서명을 해요. 서명하는 하나하나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서 변화가 생기기도 하죠. 수민이가 현수한테 다가와 준 선의나 서 선생님이 어른으로서 베풀어준 마음 같은 것들을 마음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현수는 그에 가까운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까 생각해요. 약간 이상해도 따뜻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은 생각보다 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169쪽)는 문장이 있어요. 막연히 해왔던 생각인데 이렇게 문장으로 만나니까 심장이 내려앉더라고요. 이 문장을 쓰실 때 어떤 마음이셨어요?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되게 밝은 사람도 어두운 시절을 지났던 경험이 반드시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10대, 20대, 30대가 너무 힘들게 지나갔어요. 그리고 힘들고 어두울 때는 마치 자석처럼 어둡고 힘든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더라고요. 일종의 작은 커뮤니티처럼 되었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세상에 안 슬픈 사람은 없구나, 모두가 뭔가를 잃었거나 잃을 예정이거나 잃을까봐 두려워하며 살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사람은 조금만 기회가 주어지면, 또는 누군가가 슬픔을 이야기하면 자기의 슬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자기의 슬픔으로 위로를 하는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가장 쉽게 가까워지는 방법은 슬픔의 서클을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괜찮아지는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던 문장이에요.
작가님에게도 그런 시간이 많이 있었다고요?
많았죠, 저는 감정이 무척 과잉인 사람이었어요. 특히 10대와 20대에 그게 아주 심했어요. 모든 감정 앞에 '너무'라는 말을 항상 붙이는 사람이었거든요. 너무 외롭고, 너무 슬프고, 너무 우울한 시간이 있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감정 과잉의 상태가 너무 싫은 거예요. 벗어나고 싶었죠. 그래서 반만 느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책에 소수, 탄소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는 말인데요. 그런 식으로 제가 힘들 때 만났던 말들이 있어요. 실제로는 말이 안 될지라도 그냥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말이 있죠. 그냥 매달리고 싶은 말, 그런 말들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말도 안 되지만 그냥 주문처럼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이 있다는 생각으로 그 부분을 썼던 거예요.
주문 같은 말 가운데 서 선생님이 하는 말, "불행이 다가오면 움직여선 안 돼. 반응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 아침밥 먹고 점심밥 먹고 저녁밥 먹고. 최대한 그대로 지속하는 거야. 모든 것을. 알겠어?"(120-121쪽)도 너무 좋았어요. 이 슬픔은 분명히 지나갈 거다, 너는 그냥 그대로 너 자체로 있어도 된다, 라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았어요.
쓰면서 계속 생각한 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것이었어요. 이렇게나 기쁨이 하나도 없고, 바닥까지 슬프고 어두운데 그런데도 살아가야 되는 이유가 뭘지 되게 많이 생각했거든요. 저도 사실은 답을 찾지 못했는데요. 어딘가에서 벌레나 식물에게는 왜 사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왜'라는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거다, 라는 얘기를 읽었어요.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 맞고요. 그렇기 때문에 폐 끼치지 않고 그 작은 세계 내에서 그냥 잘 살아내면 되는 것 같아요. '왜'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앞서 주문처럼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말에 대한 얘기를 했잖아요. 원래는 소수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내세울 생각 없었는데요. 생각할수록 그게 결국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논리적이지만 마음속에 남아서 살게 하는 말이 되는 것 같거든요.
이 작품이 처음에 시작됐을 때 두 가지 장면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요즘에 마음에 담겨 있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소통'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아주 어린아이와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이 특별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되게 이상한 할머니가 나올 텐데요. 사실은 저희 엄마가 되게 이상하거든요.(웃음) 제가 봐도 참 특이하신 분인데요. 그런 할머니를 제 딸이 엄청 관찰해요. 할머니의 유튜브 재생 목록을 봤는데 이런 게 있었다면서요. 제목은 '할머니의 유튜브 재생 목록'이라고 할까(웃음) 싶어요.
*조우리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하고 음악과 미술 쪽을 기웃거리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나무와 산이 많은 동네에서 사춘기가 올락 말락 한 딸과, 스트리트 생활을 하던 하얀 개를 키우며 살고 있다.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로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오, 사랑』으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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