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들의 두터운 지지로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2020년 여름 강렬하게 등장한 『5번 레인』. 아동청소년문학에서 드문 정통 스포츠물이라는 점, '수영'이라는 소재로 '몸과 마음의 성장'이라는 주제 의식을 훌륭하게 구현했다는 점, 초등학교 고학년의 사랑을 진지한 시선으로 균형감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작품이다. 책이 출간된 그해에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고 <시사IN> 선정 올해의 책, <창비어린이> 현장에서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5번 레인』 출간 후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특별한 것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책 읽고 글 쓰고 운동하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요. 얼마 전에 참여한 청소년 단편 소설집 『희망의 질감』이 출간되었고요. 읽어 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보냅니다.
『5번 레인』이 10만 부라는 터치패드에 도달했습니다. 작품의 가치를 판매 부수만으로 매길 수야 없겠지만 작가로서 기념할 만한 일임은 분명한데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좋아하는 그림 중에 〈십만 개의 점〉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파란색 점들이 한데 모여서 만들어 내는 무늬가 멋진 그림이에요. 바라보고 있으면 파도가 일렁이는 느낌이 든답니다. 십만이라는 숫자는 분명하게 커요. 작은 점으로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지레 겁먹을 것 같아서요. 멋진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계속 좋아할 거예요.
독자분들이 남긴 리뷰가 상당히 많습니다. 어린이 독자는 물론 청소년 독자, 성인 독자까지 『5번 레인』을 읽고 평을 남겼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으시다면요?
어떤 블로그에서 어린이 독자님이 목욕할 때마다 『5번 레인』을 본다면서 찍어 올리신 사진을 봤던 게 기억에 남아요. 욕조에서 물안경을 쓰고 엎드린 채로 지퍼백 안에 『5번 레인』을 넣어서 읽고 있는 장면이었어요. 상상도 못 한 방식의 독서였는데 '그래, 『5번 레인』은 이렇게 읽어야 제맛이지!'하며 감탄했어요. 그리고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이 책만큼은 재밌게 읽었다는 독자님들을 만나면 좀 기뻐요. 소모임에 신입 회원을 끌어들인 느낌이 들거든요. 세상에 재밌는 책이 이렇게나 많답니다, 하고 안겨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작품 속 아이들이 각자 경쟁을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다르고, 그런 서로에게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가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저의 어릴 적 모습을 비춰 볼 수도 있었고요. 어린 시절의 작가님은 어떤 식으로 경쟁과 마주하는 아이였나요? 그런 면에서 『5번 레인』 속 아이들 중 어린 시절의 작가님과 가장 닮아 있는 인물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나루'처럼 경쟁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드러나는 경쟁을 피하고 숨어 버리는 아이였죠. 하지만 그렇게 조용히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고집을 부리곤 했어요. 그런 면에서는 '태양이'가 저를 제일 많이 닮았어요. 제 나름대로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뜬금없이 뭘 하고 싶어 하거든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욕심이 많아요. 이렇게 쓰고 보니 나루랑 닮은 점도 있네요. 나루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욕심을 투명하게 내보인다는 점이에요. '욕심'이라고 하면 괜히 감추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그러지 말라고 어린이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6학년이면 이미 좀 늦었고..."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해 보고 싶어요. 이대로 수영 그만두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천천히 힘주어 말하는 태양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_ 『5번 레인』 중에서
아이들의 순수한 열망, 노력, 경쟁 그리고 성장을 작품에 담기 위해 '수영'이라는 스포츠 종목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혹 작품을 쓰는 데 영향을 받은 다른 콘텐츠가 있었는지요?
수영을 배우면서 물에 뜨는 감각에 눈을 뜬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어요. 제 스스로 느끼지 않고 공부해서 썼다면 지금처럼 쓰지 못했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수많은 스포츠물 콘텐츠가 전부 『5번 레인』에 녹아 있어요. 〈달려라 하니〉, 〈피구왕 통키〉, 〈슬램덩크〉 등 셀 수 없이 많죠. 작품 준비하면서 수영을 소재로 한 만화나 영화도 많이 찾아보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결이 좀 달랐어요. 오히려 다른 스포츠 종목을 다룬 이야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김혼비 작가님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운동하는 여자들의 멋에 대해 생각하고, 드라마 <역도 요정 김복주>에서 두 주인공의 말랑하고 귀여운 사랑에 설렜던 마음을 떠올리는 식으로요.
현 시점 작가님의 터치패드는 무엇일까요? 어떤 것에 닿기 위해 열심히 나아가고 계신지요?
요즘은 무언가에 닿기 위해서보다는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제 정말 어른이구나, 어른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기뻤던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다 소중하더라고요. 그래서 예전보다 일기를 조금 더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런 오늘이 많이 지나고 나면 어딘가에 닿아 있겠죠? 아마 제가 오늘 보낸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매일 닿고자 노력하는 터치패드는 있습니다. 바로 '오늘 분량의 원고를 쓰는 것'입니다.
구상하고 계신 작품이 있나요? 수영에 이어 또 다른 스포츠 종목을 다루어 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최근에 깨달은 것인데요. 제가 몸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이 몸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계속 쓰게 될 것 같아요. 그게 다른 종목의 스포츠물이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선 당장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 순서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지금은 개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물을 쓰고 있어요. 『5번 레인』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지만, 저의 방식으로 풀고 있으니 결국 비슷하겠지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꿋꿋이 나아가야 하는 요즘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굳이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경쟁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리걸음이라고 힘들지 않은 게 아니잖아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걸음 나아갈 힘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 나루처럼 주저앉아 우는 친구가 있다면, 태양이처럼 다정하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은소홀 「5번 레인」으로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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