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부딪치고 깨닫고 성장한다. 드라마 감독으로 13년을 살고 조연출 때를 포함하면 40편이 넘는 작품을 한 최윤석 감독의 에세이 『당신이 있어 참 좋다』는 지금의 저자가 있기까지 마주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오판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도 있으며, 인생의 멘토 연기자를 만나 꿈을 꾸듯 드라마를 찍은 적도 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거울을 보는 느낌으로 글을 썼다고.
『당신이 있어 참 좋다』에는 다양한 사람이 곳곳에 등장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부터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거리 위의 사람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 상처받고, 위로받으며 저자는 조금씩 성장했노라고 말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이 책은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나치게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온전히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응원가가 되어줄 것이다.
그동안 여러 편의 드라마를 만드셨지만, 책은 처음이시잖아요. 첫 책을 내신 소감과 『당신이 있어 참 좋다』가 어떤 책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이렇게 책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습니다. 드라마 만들 때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첫 책이니만큼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으실지 기대되기도 하고 또 설레기도 합니다. 『당신이 있어 참 좋다』는 드라마 PD로 13년간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요. 남궁민, 최수종 및 유명 배우부터 붕어빵 아줌마, 캐나다 노숙자까지 제가 곁에서 지켜보고 저에게 영감을 줬던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런 책입니다. 제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 독자분들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또 행복한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자기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생겼다'라고 쓴 남궁민 배우의 추천사와 이준호 배우의 추천사가 인상 깊었어요. 특히,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준호 배우가 말한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이란 말이 큰 울림이 있더라고요. 책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잖아요. 두 배우와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셨는지 궁금해요.
바쁘신 와중에 두 분 다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남궁민 형님, 그리고 준호랑은 드라마 <김과장>에서 같이 만났어요. 그때 거의 일주일에 3~4일은 밤새워서 촬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전우애가 생겼네요. 아직도 기억 남는 게 방송 당일 새벽 5시에 추격 장면을 찍어야 했어요. 잠을 30시간 가까이 못 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죠.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오케이 사인을 하고 마무리하려는데, 남궁민 형님이랑 준호가 한 번 더 가자고 하더라고요. 한 번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때 느꼈죠. '이게 프로구나!' 저보다 더 잠도 못 잤을 텐데 말이죠. 두 배우는 자신의 최고 연기를 보여주고 싶기에 그렇게 마지막까지 열과 성을 다한 거예요. 덕분에 시청자들은 그 노력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요. 두 사람에게 많이 배웠어요.
독자 리뷰를 보면, '나와 닮아있는 사람의 글을 훔쳐보는 것 같다' 느낌의 리뷰가 많았는데요. 그만큼 작가님의 글이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있다는 거겠죠. 글을 쓰시게 된 계기와 하루 중 언제 글을 쓰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공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님만의 비결이 있다면 함께 알려주세요.
그런 리뷰를 종종 보는데요. 볼 때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실은 드라마 피디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인 감정에 담아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보신 분들이 내 이야기처럼 읽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 안에는 청개구리가 한 마리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삼삼한 음식을 먹다 보면 불닭 볶음면 같은 자극적인 게 먹고 싶고, MSG 가득한 식당 요리만 먹다 보면 또 집밥이 그리워지거든요.
드라마도 마찬가지예요. 양념과 조미료 듬뿍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계속 만들다 보니 가끔은 평양냉면 같은 담백한 이야기가 고파져요. 그런 욕구 때문에 저는 퇴근 후에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말간 국물 우려내듯 제 안의 이야기를 '브런치'라는 인터넷 공간에 하나둘씩 올리게 되었어요. 그게 운이 좋게 모여서 이렇게 책으로 나왔고요. 그리고 저는 읽는 사람을 옆에 두고 대화하듯 쓰는 버릇이 있어요. 이럴 때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어떤 표정 지을까?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요. 그러다 보니 최대한 눈높이를 맞춰서 쉽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 감독으로 여러 인물을 만나오셨잖아요. 드라마 속 다양한 캐릭터로도 그렇고 방송 관계자, 배우, 작가 등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오시면서 적잖게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책을 읽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시다면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사극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서 대하 드라마 왕으로 직접 출연까지 사람이에요.(웃음) 다시 말하자면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올라온 인물이죠. 대학교 다닐 때 학비 벌려고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말 그대로 소품 취급받았었어요.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또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요. 그때 느꼈어요. 내가 연출하게 되면 저렇게 하지 않겠다고. 지금도 드라마 촬영하면 그때 생각이 나서 보조 출연자분들에게 잘 대해드리려고 노력해요. 왜냐면 불과 10년 전에 제가 그중 한 사람이었거든요. 이렇듯 인간관계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것 같기도 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거든요. 내가 그 사람이라면, 아니면 내가 그 자리에 섰다면 그래도 똑같이 행동했을까? 한마디라도 더 좋은 이야기 하는 게 더 낫잖아요.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요.
'에너지 도둑'에 대한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에너지 도둑을 알아보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다'라는 말에 저도, 좋은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한없이 끌려다니기만 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작가님의 가장 큰 에너지 도둑은 누구였는지 지금은 어떻게 에너지를 지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책에서 밝혔듯이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남의 말을 함부로 끊고 무시하고 또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는 굳이 자신의 에너지를 희생하면서까지 만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일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상황이 생기죠. 그럴 때 저는 데드라인을 정해놓아요. 업무의 데드라인도 있겠지만 감정의 데드라인 역시 중요하거든요. 내가 참을 수 있는 선을 정해놓고, 이 이상 상대방이 침범하지 않게 하는 거죠.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수많은 위기 상황이 와요. 하루하루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죠. 제 에너지를 제일 많이 뺏어간 사람은 '남의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본인이 아이디어가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도 않으면서 "그거 되겠어?"라고 확신을 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거든요. 그런 분들에게는 저는 꼭 대안을 물어봅니다. 대안이 없으면서 무조건 부정하는 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 못하거든요.
책을 보면 '가장 힘들 때 누군가가 건네는 작은 위로와 한마디는 그 사람 인생의 결정까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이 되기도 한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작가님의 마음속에 가장 크게 남은 누군가의 한마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직접 쓴 대본으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드라마 스페셜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때 정말 부담이 컸어요. 연출로 입봉한 사람이 직접 대본까지 썼고 또 장르가 국내 최초 사이보그 멜로물이었거든요. 단돈 1억으로 드라마 한 편 만들려고 하니 하루하루가 힘들더라고요. 그 와중에 한 선배는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면서 제가 쓴 대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도 했어요.
그때 드라마의 주인공이 '손여은' 배우님이었는데. 대본 리딩 끝나고 그분이 제게 와서 "감독님. 대본 너무 재미있어요. 감독님은 드라마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요" 이렇게 얘기해주시는 거예요. 그때 눈물이 핑 돌았네요.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 달콤한 한 마디가 제게 너무 큰 힘이 되었어요. 덕분에 정말 열심히 찍을 수 있었고, 제 입봉작은 그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답니다.
끝으로 『당신이 있어 참 좋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더불어 작가님의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향후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실까요?
제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많이 부족할 텐데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평생 꿈이 있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요. 때론 영상으로, 때론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요. 조선 시대 전기수처럼 누가 봐도 재미있는 이야기, 마음에 위안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아직 확정은 안 되었지만, 내년 방송을 목표로 드라마 한편을 준비하고 있어요. 좋은 작가님과 같이 작업하고 있으니, 저만 잘하면 많은 분이 좋아하는 작품이 나올 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소설 한편도 준비 중이에요. 내년 초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에세이와 또 다른 결의 작품이 될 것 같은데 부디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윤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KBS 드라마 PD로 입사했다. 그동안 〈추리의 여왕 2〉, 〈김과장〉, 〈그놈이 그놈이다〉, 〈정도전〉, 〈어셈블리〉, 〈즐거운 나의 집〉 등 열 편이 넘는 드라마를 연출했고,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과 금상을 한 차례씩 받았다. 인생에서 실패하고 쓰디쓴 맛을 본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쓰고, 또 만들고 싶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나온 '실버라이닝'이라는 단어처럼, 먹구름 속에서 힘겹게 거닐고 있는 우리의 삶에도 언젠가는 거짓말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희망이 찾아올 거라 굳게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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