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초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의 요즘 내 별명이다. 반려묘 누룽지를 위해 모든 물질적 환경을 제공하려는 모습에 빗댄 말이다. 그렇다. 나는 룽지가 집에 오기 한 달 전부터 최고급 캣타워를 설치하고 드넓은 화장실을 마련하고 자동 급수기를 가동하고 가장 비싼 키튼 건사료와 습식 캔 한 달 치를 사두었다. 체중계와 저울과 각종 장난감 등은 물론이고. 초보지만 이 정도면 준비된 집사 아니냐고 우기며.
'개냥이'인데다가 적응력도 좋은 룽지는 집에 오자마자 내가 준비한 것들을 적극 이용하며 활개를 치고 다녔다. 그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했다. 역시 미리 준비해두길 잘했어... 룽지로 인해 집안에서의 안정과 따뜻함을 처음 느껴보고 있다. 바깥의 힘겨움과 복잡함을 모두 잊게 만드는 단순하고 강력한 행복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도 마주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룽지는 현생에 태어난 지 불과 네 달째. 세상을 향한 넘치는 호기심과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시기다. 그리고 그 열정을 꼭 오밤중에 풀고자 한다.
요즘 내 루틴은 이렇다. 6시 기상. 15분간 룽지와 사냥 놀이. 습식 사료 반 캔 급여. 화장실과 물 갈아주기. 운동 다녀오기. 건식 사료 급여 후 출근. 퇴근하여 룽지와 뽀뽀 등 스킨십(억지 아님). 습식 사료 나머지 반 급여. 취침 전까지 계속 사냥과 냥이콥터 날리기 등 놀이. 11시 취침.
저녁 놀이 때부터 룽지는 숨을 빠르게 헐떡이고 졸린 눈을 억지로 뜨는 등 피로한 모습으로 집사를 안심시킨다. 내가 누우면 근처로 살살 다가와서 어딘가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룽지가 내 몸에 자기 몸을 붙이면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다. 갸르릉 소리를 내다가 잠든다. 나도 잠이 든다.
우다다 우다다! 꿈 속인가 싶을 때 정신을 뒤흔드는 소리가 난다. 룽지는 꼭 삵 같이 날쌔고 용맹하게 달린다. 그리고 어딘가를 사뿐하게 오르기도 하고, 난데없이 허공을 향해 점프 사냥을 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굴리기도 하고, 날리거나 떨어뜨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회사에 있는 낮 동안 놀아주지 못하고 혼자 두어 그러는가 싶어 미안하고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사냥 놀이만 하는 주말 밤에도 다르지 않았다. 깨닫고 인정했다. 룽지는 넘치는 에너지를 오밤중에 발산하고 싶다는 것을. 그런 우다다 아깽이의 시절이라는 것을.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사람을 포함하여 어느 동물이든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룽지는 뭘 해도 예쁘다. 건강한 에너지를 드러내서 더 예쁘다.
요즘엔 대낮에도 정신이 말끔하게 깨어있지 않은 것 같다. 지하철에서도 비몽사몽, 회사에서도 비몽사몽일 때가 많다. 초보 집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리라초등학교에 버금가는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부족한 잠도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었다. 다행히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다. 오늘도 룽지의 가르릉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가 우다다 소리에 다시 깨는 밤을 기다린다.
"룽지 씨, 내 잠은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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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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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