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장례식은 경건하다. 차에서 내린 우리를 맞이한 장례지도사가 내 손에서 요람을 받아 든다. 그는 올리버를 이름으로 불러주길 잊지 않는다. 이곳에는 ‘어메니티’ 서비스가 있다. 편의라니, 어떤 편의일까. 그건 염습을 마치고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고양이에게 인연을 상징하는 붉은 실을 매어주는 일이다. 그다음에는 죽은 고양이의 죽은 손발에 검은 잉크를 묻혀서 추모의 문구가 쓰인 카드에 발 도장을 찍게 한다. 고양이의 털을 조금 잘라 간직하게 해준다. 나는 작은 가위로 꼬리의 털을 자른다. 나중에 꼬리의 생김새를 잊지 않도록, 줄무늬가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작은 봉투에 넣는다. 내가 올리버의 길고 강한 꼬리를 귀여워했다고 해서 꼬리를 통째로 잘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절차는 지천으로 널려 있던 내 고양이의 털이 다시는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유기물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은 나에게 종교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더니 작은 불상을 가져다준다. 내 고양이는 극락왕생할 것이다. 꽃을 채운 관이 놓인 슬픔의 방에는 개와 고양이가 그려진 편지지가 한 묶음 비치되어 있다. 우리는 고양이 편지지를 골라 편지를 쓴다. 눈물에 푹 젖은 편지를 관에 넣어준다.
그러고도 모자라 나무 관에도 글씨를 쓴다. 올리버는 글자를 못 읽지만 말을 건넬 수가 없으니 그렇게 한다.
나의 고양이는 관과 함께 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애는 혼자서 윤회의 굴레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건 아주 멋진 장례식이었다. 화로에 불이 붙는 걸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순간 나와 고양이를 묶은 붉은 실이 뱃속에서 토막토막 끊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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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장례식도 경건했을 것이다. 우리를 위한 어메니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부터가 마음에 안 드는 장례식이었다. 폴의 가족들은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할까? 우리가 모여 앉아 있을 때 한 친구가 물었다. 우리는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이거나 식별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어디서 만났는가를 설명하기도 애매했다. 또, 지나치게 크게 울고 있었다. 우리를 어떤 사이라고 생각할까? 다 같이 사귀는 사이인 줄 알겠어. 그것은 조금 웃긴 이야기 같았다. 우리가 다 같이 사귀다가 다 같이 장례식장에 엎어져 운다는 이야기. 만약 농담을 주고받을 상대가 있었더라면 이건 나중에 꽤 재미있는 농담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 상대가 죽어 누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먼저 도착해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 친구들의 얼굴은 매듭처럼 팽팽하게 묶여 있었다. 내가 그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역할을 못 한 게 나중에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 같은 것까지는 생각할 수 없는 때였다.
마지막으로 본 친구의 얼굴이 싸우면서 상처 주고 상처 받는 표정인 게 나을까, 아니면 죽은 얼굴인 게 나을까?
나중에 우리는 붉은 실 대신 유족이 발견한 그의 선글라스를 하나씩 나누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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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나는 폴이 준 물건을 대부분 버렸다. 작아진 마크제이콥스 부츠(내 발에도 맞지 않았지만, 썩 마음에 들었기에 발이 아픈 걸 감수했던), 올리브영에서 물건을 사고 받은 거울, 내가 가진 희한한 싸구려 물건들 중에서 폴이 그나마 괜찮다고 했던 가방, 전부 큰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폴이 떠오를까 봐서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내 집 안을 한참 순환하다가 나중에는 내 친구를 조금도 연상시키지 않는 그냥 보통 물건이 될까 봐. 거울이 깨져도 아, 이게 어디서 났더라, 하면서 깨진 조각들을 그러다 손을 베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될까 봐.
폴과 나는 밤이면 우리 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동성애자들이 패배하는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텔레비전 뒤 벽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그 벽을 차지하던 가구 등속을 모조리 치우고 그 자리에 화분을 열한 개 놓았다. 파릇파릇 자라는 것이 열한 개쯤은 있어야 이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열한 개의 화분은 내가 뚫어지게 벽을 바라보는 가운데 순서대로 전부 죽었다. 나한테 남은 건 선글라스뿐이었다. 도수가 맞지 않아 어지러웠다. 당연하다, 우리는 애초 다른 사람이었다. 매일 만난다고 해서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진 않는다. 서로를 아낀다고 해서 발 크기가 같아지지도, 안경의 도수가 같아지지도 않는다. 다른 발로 걷고 다른 눈으로 본다. 폴은 다른 곳으로 걸어갔고 그가 본 것을 나는 앞으로도 못 볼 것이다.
나는 가끔 폴의 선글라스를 낀 채로 누워서 천장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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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에, 태운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안경이 엉뚱하게 할머니의 얼굴에 얹힌 채 발견됐다.
안경을 쓰고 자면 할아버지가 보일 것 같아서.
할머니는 꼭 잘못한 사람처럼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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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장례식은 기독교식이었다. 그러니 폴은 극락이 아닌 다른 데로 갔을 것이다. 높은 확률로 윤회도 안 했을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폴의 몸이 불에 타는 동안 우리는 어떤 방에 모여 앉았다. 폴의 친구들이 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쉬울 건 나중이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미 아쉬웠으니까. 서운했으니까. 실망해서 어쩔 줄 몰랐으니까. 이런 자리가 있을 것임을 미리 알고 편지를 써 와 대표로 낭독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래도 된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또, 무슨 말을 해도 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사람의 장례식장에는 개가 그려진 편지지도 고양이가 그려진 편지지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편의의 측면에서는 참 아쉬운 일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더라면. 우리도 둘 중 하나를 골라서, 또는 둘 다 아닌 것을 골라서, 폴이 무엇이었고 또 무엇이 아니었는지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식 장례식장에서 하루가 흐르고 발인의 시간이 왔을 무렵에는 고인의 삶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중 무슨 말을 결코 해서는 안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울면서 이야기했지만 그 중 무엇도 꼭 해야 할 말은 아니었다.
나는 입을 열기 직전까지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겨울 폴이 내 고양이 올리버의 엉덩이를 두들기는 걸 좋아했고, 올리버도 폴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둘은 매일 만났고, 매일 함께 우리 집 소파에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경건한 장례식과 그리 잘 어울리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지난주에 폴이 나와 절교한 줄도, 이번 주에는 죽기까지 한 줄도,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놀러 오지 않을 줄도 꿈에도 모르는 어떤 고양이가 겨우내 고인과 다정하게 지냈다는 그런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 할까?
폴이 개를 데려오고 싶어 했던 걸 말할 걸 그랬다. 그 말을 나한테 몇 번이나 했던 걸 말할 걸 그랬다. 믿음, 은총, 찬양, 그런 것 중 하나의 이름을 가진 기독교식 개였다. 폴이 잊지 않고 은총이라는 이름의 개를 데려왔더라면, 그리고 은총을 날마다 데리고 다녔다면, 우리가 딱히 무슨 편의도 봐주지 않는 이런 자리에 앉아 있을 리 없었다. 은총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을 테니까. 그가 그런 짓을 못하도록 면밀히 감시했을 테니까. 지켜주었을 테니까. 기를 쓰고 고집을 피워서라도 그를 다시 데리고 왔을 테니까.
그러나 없는 개에 관한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 할까?
나는 왜 죽거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하고 싶을까?
내 친구의 몸이 불에 타는 동안에?
걔는 왜 은총을 데려오지 않아서 이런 일을 만들었나?
걔가 개를 데리고 다니기만 했더라면.
*
사람이나 고양이의 털은 유기물인가요? 글을 쓰다가 나는 인공지능 챗봇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이미 죽은 사람이나 고양이의 털인데도요?
그렇다고 해서 유기물이 무기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나 고양이의 몸도 무기물인가요?
여전히 유기물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부 무기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박테리아나 곰팡이에 의해 분해되면서 무기물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기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잘된 일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두 개의 몸이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쫓아오기 전에 여전히 유기물인 채로 불 속으로 도망가서.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송섬별
읽고 쓰고 옮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자주 시를 쓴다. 용감하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물루와 올리버라는 치즈 고양이의 식구다. 옮긴 책으로 <페이지보이>, <자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