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이토록 다정한 전투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앞으로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구나." 며칠 전 엄마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글ㆍ사진 김소미 <씨네21> 기자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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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구나."

며칠 전 엄마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주거 문제, 명절 갈등, 노부부의 불화, 그 외 여러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사정까지 겹쳐, 엄마와 나는 한동안 격동의 갈등기를 보냈고, 잠시 소강 상태에 있던 차였다. 갑자기 또 뭐라고? 곡예같던 일정 한가운데 나는 결국 분노했다. 마음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화르륵 타올라 재로 변했다. 엄마의 문자를 받고서야 뒤늦게 내가 내심 억울해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깨달았다. 우리가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기는커녕 서로의 일상에 간간이 슬픔만을 채색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지겨워졌다. 그녀의 한 문장에서 내가 읽은 것은 모종의 힐난과 섭섭함이었다. 그보다 몇 주전 엄마는 자신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도 했다. 답장을 하려니 저항감이 밀려왔다. 그날 밤 나는 극장으로 기어들어갔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택시를 탔다. 고향을 떠났고, 미국에 정착해 세탁소를 열었고, 딸을 낳았다. 온 힘을 살아내는 데 바친 시간이 길게도 흘렀다. 어느새 중년이 된 여자는 지옥 같은 세무 조사 기간을 통과하는 중에 노쇠한 아버지의 생신 잔치를 준비하고, 레즈비언 딸과 갈등하고, 남편이 내민 이혼 서류까지 마주한다. 그때 마침 여자에게 멀티버스가 열린다. 인생의 갈림길마다 최악의 선택을 내리며 실패한 인생을 살아왔으니, 역설적으로 당신만이 모든 가능성을 간절히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게 또 다른 우주 알파버스에서 날아온 전언이다. 모욕인가 위로인가 따져볼 새 없이 그녀는 그렇게 '무엇이든' 되어간다. 수만 개의 에블린으로, 조금씩 더 다정한 에블린으로.

양자 역학적 다중 우주론은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살아내는 내가 있다는 점에서 모종의 위로를 안겨주는 동시에 짙은 허무도 동반한다. 모든 것이 모든 곳에 한꺼번에, 이미 운명적으로 존재한다면 지금 생의 번뇌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동시대 최고의 스타가 되어 레드 카펫을 걷는 내가, 새끼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튕겨버리는 쿵푸 고수인 내가 이미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이 구질구질한 세무 조사와 성격 괴팍한 딸과 이혼 타령하는 남편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이 허무를 가장 먼저 습득한 이는 에블린의 딸 조이(스테파니 수)다. 알파버스에서의 과도한 실험으로 모든 차원을 아우르는 절대적 존재로 거듭나 '조부 투파키'로 불리게 된 그는 베이글(모양의 블랙홀) 위에 세상 모든 진실(everything)의 조각을 올려둔 채 절대 고독 속에 빠져있다. 기적 같은 친절과 선의, 사랑 또한 결국 '확률적 필연일 뿐'이다.

지독한 허무주의에 맞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실로 전투한다. 양자경의 SF, 판타지, B급 코미디, 쿵푸와 마셜 아트, 심지어는 애니메이션까지 동원해 몸부림친다. 필연이 어떻든 그저 실존하기만 해도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everywhere)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방식에 주목하고 싶다. 이른바 '버스 점프(verse jump)'라 불리는 다른 우주와의 접속을 위해 필요한 일은 '지금 가장 엉뚱한, 개연성 없는, 무작위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신발 양쪽을 바꿔 신기, 손가락 사이를 종이로 5번 베기, 립밤을 삼키기, 그리고 항문에 트로피를 끼우기... 황당한 무작위의 향연은 장르성을 강화하는 장치인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지혜의 은유도 된다. 사소하고 무용해 보이는, 나아가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일이 종종 우리 삶을 바꾸기도 한다는 어떤 진실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권여선의 소설 「사랑을 믿다」에서 금전적 문제로 실연하고 깊이 상심한 여자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친척 어르신에게 선물을 전하는 심부름을 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보자기를 들고 낯선 건물의 계단을 올라 친척집에 도착한 그는, 층수를 착각해 목적지보다 한 층 아래인 어느 점집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만다. 여자는 영문을 모른 채 그곳에 모인 다른 이들의 사연을 한참 듣다가 그 자리에 보자기를 내려두고 걸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여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배우 이영애가 연기한 한은수는 상우(유지태)와 헤어지고 한참이 지난 후 사무실에서 서류를 넘기다 말고 종이에 손가락을 벤다. 옛날에 그가 알려준 대로 손가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기다리는 동안 은수는 어느새 상우를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문학에서, 영화에서, 우리 삶에서 접속과 전환의 순간은 무참할 정도로 개연성 없이 온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에서 한 말은 예술가의 영감과 재능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종종 사소하고 추레해 보이는 순간들이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전환점은 조용하고 은밀한 계시의 섬광입니다. (...) 그 순간은 종종 그보다 더 요란하고 긴급해 보이는 요구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온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순간은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 테니까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 우주에 관한 상상이기도 하지만, 보잘것없는 순간들의 힘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것은 절대 마음을 돌릴 것 같지 않은 상대에게도 끝까지 대화를 청하며 결국 선의를 이끌어내는 웨이먼드처럼 포기하지 않는 힘으로도 확장된다.

나는 여기서 오프닝 신의 에블린을 다시 떠올린다. 개연성과 인과 관계로 점철된, 무사안일한 하루를 지켜내기 위해 한 사람의 얼굴이 얼마나 딱딱하게 굳어있었는지를 떠올린다. 그랬던 여자가 러닝타임의 중반 무렵엔 라카쿠니를 구하기 위해 자기 어깨에 동료를 짊어지고 달린다. 자기 바지에 오줌 싸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후자는 에블린의 직업이 세탁 전문가란 사실을 생각하면 가히 실존적인 결단이라 할 만하다. 우주의 진실이 얼마나 거창하든 그녀에게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는 따로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의 접속이 끝나고 다시 이번 생으로 돌아왔다. 응답 없는 딸에게 엄마는 또 문자를 보내놓았다. 내가 아무리 도망가도 그녀가 나를 계속 쫓아올 거라는 걸 안다. 일부러 둘러 가는 먼 길을 택해 혼자 걸었다. 그러자 생각의 경로에서 이탈해있던 두 개의 이미지가 번뜩 스쳤다. 조부 투파키는 세상 모든 허무와 고독을 흡수하고도 자신의 상태를 공감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베이글의 구멍을 사이에 두고 상대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민 것 또한 조이라는 사실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과 다시 계속 싸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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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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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fays

2022.11.02

관객수준을 모욕하는 영화같던데 정신없는 연출에 억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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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멋진 리뷰입니다. 영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리뷰 감사합니다.
버스점프에 대한 해석 흥미롭게 보고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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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erex

2022.10.23

미셸 여(양자경의 영문이름이네요) 인스타에 당신덕분에 이런영화를 보게되어 고맙다고 글남기고왔습니다.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기사글이 좋습니다. 정말 후기를 글로 적어가기 어려운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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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 <씨네21> 기자

보는 사람. 영화를 쓰고 말하는 기자. <씨네21>에서 매주 한 권의 잡지를 엮는 일에 가담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립 영화잡지 <아노>의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영화의 내면과 형식이 만나는 자리를 오래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