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슬슬 피어오르는 제목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라니. 듣자마자 '딱 지금 내 마음이네' 싶지 않은가. 공감한 이들이라면 질문하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나는 선언할 수 있나?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이 작품은, 거칠게 요약해서, 주인공 이여름(김설현)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 이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는 과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선택한 이후에 만난 세상'을 그리기 때문이다.
입사 5년차에 접어든 출판사 직원 여름은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출근하고 다시 퇴근하며 살아간다. 직장 선배는 아이디어를 가로채고, 상사는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고, 그 사이에서 종일 쫓기듯 달음질치면서도, 꾸역꾸역 일상을 이어간다. 그의 일상이 낯설지 않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사는 데에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님을. 여름은 말한다.
"낙오하지 않으려고, 욕먹지 않으려고, 죽을 듯이 살아왔다."
죽을 듯이 살고 있다는 말은, 나를 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무너져 내린다. 여름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이 그러했다. 어머니가 떠나고, 6년을 사랑해온 연인의 마음도 떠나고, 여름은 혼자 남겨진다. 텅 빈 상태로 출근과 퇴근을 오가는 사이 봄이 왔다. 여름은 꽃비가 내리는 것도 몰랐다. 꾸역꾸역 참아내느라. 그 사실을 알아챈 출근길에서 충동적으로 결심한다.
"나 회사 안 가."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된 여름은 배낭을 꾸려 떠난다. 딱히 계획도 목적지도 없는 여행에서 만난 안곡마을, 그곳에서 살기로 한다. 마을 도서관을 찾은 여름은 사서로 일하는 안대범(임시완)과 만나고, 수줍음 많은 대범과 필담을 나누며 인연을 시작한다. 늘 말없이 친절을 베푸는 대범은 '마음껏' 만취한 여름을 도와주게 되고,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인생 파업'을 선언한 여름이 새로운 공간과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담아낸다. 여름의 이야기가 앞을 바라보고 있다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대범의 이야기는 뒤를 돌아본다. 그는 왜, 지금 이곳에 있을까. 여름이 서울을 떠나 안곡마을로 온 연유가 있듯이 대범에게도 사연이 있을 테다. 모두가 지난 시간을 타고서 여기로 왔으니까. 떠밀려왔든 떠나왔든, 누구나 등 뒤에 매달고 다니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를 보면서, 문득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어떻게 여기에 왔나요? 어떤 시간을 거쳐서 이곳에 도착했나요? 아마 여름과 대범도 서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소리 없는 언어로 말하고 들을 것이다. 그렇게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두 사람의 지난 시간이 궁금한 것만큼이나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인생 파업'을 선언하는 건, 어쩌면 판타지일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일상을 멈추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고, 그 이유들은 대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겁다. 다들 알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또 한 가지는, 지금 이곳을 떠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멈추거나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 또한 '현실'임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상기시킨다. 물론, 모두가 인생 파업을 선언할 수도 없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하든 길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야기가 중요할 뿐이다.
시청 포인트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청춘을 위한 드라마
# 현실을 뒤로 하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공감하며 볼 수 있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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