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의 우리 시대 인간에 관한 12가지 단상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질문하고 답하기를 10여 년, 저자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묻는다. 바로 지금,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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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저자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문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타인과 손쉽게 교류할 수 있고 허드렛일은 기계가 대신 해주는, 시간적 물질적 풍요 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함께 어울려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번영을 누린 인류는 무방비한 상태로 질병에 습격당했다. 한 사람의 고통은 집단의, 사회의 고통이 되었고 지난 3년간의 시간으로 우리 사회는 민낯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의 저자 박정은은 수녀이자 학자의 눈으로 이 모든 현상을 바라봤다. 저자는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이자 이방인의 삶을 살며 사회 바깥 테두리의 사람들, 이를테면 여성과 성 소수자와 가난한 이를 위하고 기도해왔다.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질문하고 답하기를 10여 년, 저자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묻는다. 바로 지금,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인간다움'이란 단어는 일상에서 떠올리기 쉽지 않은 단어 같습니다. 이번 책은 어떤 계기로 쓰셨나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세상이 잠깐 멈추었어요. 그러자 보이지 않던 가난한 사람들과 거리에 집을 짓는 낯선 장면들이 제 눈에 더 잘 들어왔어요. 한편으로는 또 이렇게 일상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간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 소리없이 무너지는 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함께 들어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현재 제가 가르치는 인문학 수업 속에서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세상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점점 멀어져가는 듯한 단어 세 가지인 '인간', '공동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동안 국내에 출간하신 5권의 책과 이번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는 어떻게 다를까요?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나 달랐던 점이 있다면요?

첫 책 『부서진 것의 아름다움』과 『내가 사랑한 계절들』이 글로벌한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기록들이었다면, 다른 세 권, 『사려 깊은 수다』『슬픔을 위한 시간』 그리고 『생의 기쁨』은 여성 독자들을 염두에 둔 영성에 관한 글들입니다. 반면, 이번에 출간한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는 일상의 인문학인데요. 책에는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이 책에는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12가지 주제가 나옵니다. 이 12가지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셨나요?

이 책을 막 쓰기 시작할 때는 제가 모든 수업을 저의 다락방에서 줌으로 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수업에서 학생들과 문명의 전환기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고요. 학생들과 새로운 문명이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가난은 증폭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다가, 저는 우리가 맞은 갑작스러운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곧바로 저는 앞으로의 세대가 저의 메시지를 받아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하며, 젊은 세대들의 친구들과 자주 나눈 대화들을 정리해 12가지 주제로 나누었습니다. 이 12가지 주제는 팬데믹으로 멈추어 선 세상에 드러난 인간 생의 여러 모습을 인간의 가치에 초점을 두고 들여다보게 합니다.

책 속에는 철학자와 평론가, 정신 분석자와 예술가 등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이 책의 메시지를 가장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이며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워낙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이 책에는 정말 여러 사람들의 반짝이는 생각들이 나오지요. 그래도 이 책의 메시지를 대표하는 인물을 한 명으로 꼽으라 한다면, 프랑스의 정신 분석학자 '자크 라캉'입니다. 저는 올해로 8년째, '라캉 읽기' 세미나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라캉이 이야기하는 '타자의 욕망 앞에 놓인 나', '점선으로 이루어지는 정체성', '자본주의라는 페티쉬' 같은 주제들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의 프레임을 제공하기도 하며 주제를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주의 한 점으로 살아가는 우리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람이고, 실존의 무게와 부서짐을 통해 영원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는, 이 책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메시지는 인문주의적 기독교 영성의 전통에서 나왔음을 말하고 싶네요.

담담하지만 부드러운 문체로 불확실한 시대를 극복할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내 주변에서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한 수녀님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천천히 거리를 걸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때로는 우리를 옥죄이고 초라하게 만들지만, 잠깐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조금은 따스한 세상이, 조금은 진실한 세상도 내게 다가오니까요. 그리고 생은 불완전한 것이니 어느 정도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이야기해줘요. 우리는 모두 다 어느 정도 쓸쓸해하고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고요. 

마지막으로 이걸 인정하고, 한번 깊은숨을 내쉬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리를,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고 말이죠. 마찬가지로, 불안해서 힘들지만 아름다운 사람이 저만치에서 걸어올 거라고 말해줍니다. 이 시간과 이 공간에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지금 내게 다가오는 저 사람과 정답게 악수하면 어떨까요?

2022년에 책을 집필하시는 동안에도 지구촌에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주목한 사건이 있다면 무엇이며, 이 책의 어느 부분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올해도 전쟁은 물론, 이곳 미국에서의 총기 사건도 여전하고 종교나 이념에 기반한 혐오 범죄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올 한 해 제 눈에 들어온 건, 어떤 특정 사건이나 사고보다는 위드 코로나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겪어내는 좌절과 소외였어요. 올해도 저는 어김없이 수업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코로나로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아직도 슬퍼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그저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니라, 그 하나하나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맞닥뜨린 것이죠.

저는 이번 책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의 11장으로 사회 정의와 따스한 공존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사회 정의는 우리가 겪는 사건 사고가 숫자나 통계 혹은 어떤 이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나의 이웃이 개인의 우주가 무너지는 상실의 경험에 동감하는 데서 실현된다고 말했죠. 이처럼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아픔을 보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가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수녀님께선 어떤 마음으로 연말을 기다리시나요? 또, 독자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2023년을 맞이하면 좋을까요?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캐나다의 여성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책에 등장하는 주근깨투성이 빨강 머리 앤의 유명한 말을 떠올립니다. 여러분께도 전해드릴게요. 

"걷다 보니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모퉁이를 돌면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전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을래요. 모퉁이 너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정말 궁금하거든요. 어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지,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과 마주칠지, 어떤 굽잇길과 언덕과 계곡들이 나타날지 말이에요."

비록 우리 일상이 힘들더라도, 한 치 앞을 모르는 막막함이 내 영혼을 사로잡을지라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상의 길에는 모퉁이가 있음을 기억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정은

수녀이자 미국 홀리네임즈대학의 영성학 교수. 신비주의, 중세 문화, 여성의 눈으로 성서 읽기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글로벌 시대에 여러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이주, 소외, 가난의 문제와 여성 문제 그리고 영성에 관해 연구한다. 한국과 미국 두 문화를 오가며 살고, 영어와 한국어로 글쓰기를 한다. 아주 오래된 가죽 가방과 그림자를 좋아하며 산책을 사랑한다. 담장 돌 틈새로 피어난 풀꽃에게 인사하며 새롭게 칠을 하지 않아 벗겨진 우편함을 반가워한다. 주는 일이 곧 받는 일로 믿는다.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박정은 저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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