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니?』는 해방과 전쟁 그리고 가난, 시대적 아픔과 힘든 역경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 낸 두 할머니의 인생 여정을 애잔하게 풀어낸 그림책이다. 언니가 글을 쓰고 동생이 그림을 그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일생과, 추억 그리고 그리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필적을 따라가며 여성의 고된 삶 속에 숨어 있는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독자들은 음미하듯 발견해 나간다. 책을 읽는 내내, 자신들의 어머니, 또 어머니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그림책이다.
『넌 누구니?』는 어떤 동기로 집필이 시작되었을까요?
『넌 누구니?』는 추억이 담긴 오래된 그림 한 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세 자매입니다. 글 작가가 첫째, 그림 작가가 셋째죠. 십오 년 전쯤에 할머니께서 셋째 동생의 빨간색 카디건을 보시며 "곱다, 곱다"하셨어요. 셋째가 "사다 드릴까요?"했더니 할머니는 "다 늙어서 빨간색은 무슨... 고운 건 젊은 너희가 입어야지"하셨죠. 나중에 둘째 동생이 할머니께 빨간색 카디건을 선물로 드렸어요. 할머니는 카디건을 쓰다듬으시며 아이처럼 좋아하셨죠. 그 모습을 셋째 동생이 그림에 담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할머니의 삶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흘러 할머니의 모습에 어린 소녀도, 나이 든 여인도, 모두 들어 있음을 깨닫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렸어요.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저도 동생도 각자 공부하다가 함께 '삶을 말하는 그림책'을 만들자고 마음을 모았죠. 2019년도가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넌 누구니?'라는 제목의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약 3년 정도 걸렸죠. 동생이 그린 그림을 출발점으로 글과 그림에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이야기를 연결하여 담았어요. 저희의 시작이 두 분 모두에게서 출발했으니 당연히 두 분의 삶을 그림책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도 돌아볼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고요.
언니가 글을 쓰고 동생이 그림 작업을 하셨어요. 친자매끼리 호흡을 맞추며 긴 작업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녹록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자매니까 할 수 있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그림책의 글과 그림이 새끼줄처럼 단단히 엮여 하나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도민증 장면에서 글과 그림을 여러 번 바꾸었던 것 같아요. 친할머니의 삶에서 외할머니의 삶으로 이어질 때, 그림은 물건과 물건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고, 글은 직접적으로 물건을 언급하지 않되, 두 인물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죠.
그래서 몇 개월을 서로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던 끝에 그림으로 표현할 물건을 도민증으로 선택했죠. 도민증은 사람의 행적을 간접적이지만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글에서는 대화의 방법으로 친할머니에게서 외할머니에게로 이야기가 이어지도록 했죠. 대화만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의사소통 방법도 없으니까요. 한 장면을 두고 오래 고민하다 보니 의견이 대립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때문이었죠. 의견이 달라도 다음 날이면 다시 얼굴 보며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함께 자란 시간과 추억이 만들어준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특히나 인상 깊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소반과 밥상을 그릴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든 못 사는 사람이든,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살았을 만한 물건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 TV를 보시던 엄마가 "나 어릴 때 저거 참 많았는데"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에 착안해 두 할머니를 대표할 물건으로 소반을 그렸습니다. 친할머니의 소반은 할머니가 품었을 꿈을 떠올리며 곱고 화려하게 표현했고, 외할머니의 소반은 소박하면서도 굳건한 모습으로 표현했죠. 두 그림을 그릴 때의 자세도 달랐는데, 친할머니의 소반은 주로 앉아서 그리고, 외할머니의 소반은 서서 그렸어요.
그리고 글에 '해주 달', '성주 달'로 표현하며, 모든 곳에 떠 있는 하나의 달이지만 어디서, 누가, 무엇을 품고 보느냐에 따라 달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여 두 인물의 개별성을 표현했죠. 그리고 밥상 그림은 소반의 연작이에요. 엄마께 "외할머니가 살아계시면 어떤 밥상을 받고 싶어?"라고 여쭈었는데, 엄마가 손으로 찢은 김치와 된장찌개, 메밀묵을 받고 싶다고 하셨죠. 그림 속 된장찌개는 실제 저희 엄마가 재현해준 찌개를 보고 그렸어요. 그때 엄마가 "옛날에 우리 엄마가 끓이던 맛이 나에게도 나는구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마음에 남았죠. 엄마의 엄마에 대한 기억과 저희가 엄마를 보는 미묘한 감정이 연결되어 표현된 장면입니다.
본문 내에 시대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소품과 배경들이 등장합니다. 특히나 애정을 쏟아 그린 장면들이 있을까요?
친할머니의 혼례식 장면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원하지 않은 혼인을 하게 된 할머니의 마음을 담아 표현했어요. 생전에 할머니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었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죠.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이것을 글에 담았고, 개성의 혼례복을 그렸어요. 개성의 혼례복을 그린 건 신부의 머리에 쓰는 화관궤계 때문입니다. 화관궤계는 철사로 큰 틀을 만들어 검정 공단을 곱게 싼 후 솜과 머리털 등으로 속을 채우고 여러 종류의 꽃을 꽂아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림 속의 화관궤계는 저희가 할머니께 드리는 위로와 감사의 부케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림 중간의 남자아이들은 아이의 모습을 하였지만, 그릴 때 양쪽 집안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렸어요. 혼인 당사자의 뜻이 아닌 양가 부모의 뜻으로 맺어짐을 표현하려고 했죠. 원화의 크기가 커서 그림책에 다 담지 못하였지만, 배경으로 그린 8폭 병풍은 할머니의 인생을 그린 화조도에요. 꽃과 새를 통해 그 당시 살았던 여자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죠. 병풍 뒤 사람 중 중절모 쓴 인물은 사랑하는 딸을 급히 떠나보내던 증조할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두 할머니의 삶이 죽 이어지는데요. 작가님들에게 할머니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두 할머니는 저희의 시작입니다. 어린 시절, 집 뒤에 산이 있었어요. 밤나무가 많아 밤산으로 불렸죠. 밤산으로 가는 길목에 할머니가 저희를 위해 심어주셨던 나무가 있었어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할머니가 심어주셨던 나무가 지금도 저희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희가 인생에 만난 이들 중 저희의 뿌리를 깨닫게 해준 분이 바로 두 할머니였어요. 친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참 고되고 힘든 삶을 사셨지만 단 한 번도 고단한 삶에서 도망치려고 하신 적이 없으셨죠. 나뭇가지가 된 자녀들이 자라도록 두 할머니는 인생이라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계셨던 거 같아요. 두 분이 힘든 시기를 견뎌주셨기에 지금 저희의 삶이 허락되었겠죠. 그래서 두 할머니는 저희의 시작이에요.
『넌 누구니?』를 통해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저희는 『넌 누구니?』가 모든 세대가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되길 희망하고 있어요. 특히,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이 그림책을 읽으며 세대 간의 마음 격차를 서로 보듬었으면 좋겠어요. 저희의 경험을 돌아보니 조부모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참 짧더라고요. 할 수만 있다면 『넌 누구니?』가 자녀를 위해 힘든 시기를 견디셨던 분들과 지금도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계시는 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그림책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저희가 그림책을 만들며 두 할머니를 그리워했듯이 저희의 그림책을 보시며 각자의 추억과 그리움, 깊은 사랑을 떠올리시기를 희망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준비하는 다음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삶을 말하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두 할머니의 인생을 통해 삶을 말하는 『넌 누구니?』가 완성되었듯이 다음 작품도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나는 누구인가'를 나누고자 했으니, 가능하다면 다음 작품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며 열심히 만들어보려고요.
*노혜진 (글) 오래전 할머니와 올려다보았던 밤하늘의 별처럼, 할머니에게도 반짝이는 꿈이 있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눈물 삼킨 웃음을 이해할 나이가 되어서야 할머니의 삶이 여성사로 다가왔습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인생 여정을 통해 여성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림책으로 저의 두 할머니의 삶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노혜영 (그림) 그림을 그릴 때면 어린 시절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뭘 그릴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두 할머니가 사용하셨던 사물에 두 분의 삶이 담기길 희망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사리 같던 손이 자라 두 분을 향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전합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