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웹진 <비유>에 올린 데뷔작 「하긴」이 이듬해 2019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위 등단이나 전통적인 문예지를 거치지 않았기에 '이례적'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하지만 정작 이미상의 소설은 우리의 자동적인 반응마저 뒤집는다. 소설 속 작가 초롱은 묻는다. "등단하기 전에는 내가 작가가 아니었나?" 등단 제도가 시효를 다하고 글쓰기의 장이 넓어지는 시점에, 이미상의 소설은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센 한 방을 날린다. '이미상의 소설은 동시대인의 소설'(315쪽)이라는 전승민 평론가의 말이 납득되는 대목이다.
『이중 작가 초롱』은 질서의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을, 바깥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쾌감을 선사하는 소설들로 가득하다. 586 세대 남성의 이중성은 바닥까지 풍자되고, 여성만이 느끼는 폭력적인 현실이 새로운 형식을 빌려 고발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이미상 특유의 위트와 함께 독자에게 전달된다.
지나치게 명확한 건 싫다
'이미상'이라는 이름이 독특했어요.
사실 큰 의미를 담은 건 아니에요.(웃음) 워낙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한 걸 안 좋아하거든요. 웹진 <비유>에 처음 소설을 발표할 때 필명이 필요했는데요. 본명을 써도 되지만 글쓰기와 제 생활을 분리하고 싶더라고요. 무엇으로 지을까 고민하던 중, 친구가 '상'자를 던져줬고 자연스럽게 '미상'으로 연결됐어요. '작자 미상'이 떠오르기도 해서 마음에 들어요.
소설을 쓰게 된 건 서른 살이 넘어서였다고요.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블로그와 SNS에 글을 꾸준히 쓰긴 했어요. 주로 책이나 영화평이었는데 어느 순간 답답함이 생기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소설은 에세이나 평론, 편지 등 다양한 형식을 집어넣을 수 있어서 훨씬 자유롭게 느껴졌죠. 또 다른 이유는 좋은 독자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예전에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실제로 써보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웹진에 데뷔작 「하긴」을 발표하고, 그 다음해에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셨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이전에 문학상을 탄 것도 아니고, 워낙 웹진에 공개되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주변에도 소설 쓴다는 걸 잘 알리지 않았어요. 같이 사는 사람도 4년간 제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니까요. 소설의 어조가 세니까 책이 나온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그래요. 우리 아무개가 참 착한데 글만 쓰면 왜 이러니... 하하.
읽으면서 "와, 세다!"라는 말이 나왔어요.(웃음) 소설의 형식이 특이하더라고요. 기승전결의 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멈춰 세우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작가가 그런 호흡으로 썼는데 독자도 같은 방식으로 느끼면 참 좋죠. 실제로 소설을 쓰다가도 이야기가 지나치게 몰입되면 불편함을 느껴요. 어, 너무 식상하지 않나 싶을 때 형식을 바꿔버리죠. 여러 편의 소설을 하나로 합칠 때도 많아요. 발표하지 않은 습작 원고가 많거든요. 그 소설들이 해체되어 다른 소설의 일부가 되고는 하죠. 소설 속 소설이 등장하거나 다양한 스타일의 서술이 겹겹이 들어간 건 그 때문이에요. 「여자가 지하철 할 때」는 완성된 소설 3편을 하나로 합쳤고, 「이중 작가 초롱」에서 작가 초롱이 쓴 「이모님의 불탄 진주」도 실제로 제가 쓴 소설을 압축해서 넣은 거예요.
데뷔작인 「하긴」은 586세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에요. 소위 운동권 출신인 '김'은 자녀를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분투하는데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해요. 겉으로는 '민중'을 외치지만 권위의식을 버리지 못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풍자하는데요.
기존에 제출된 586세대 비판과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소설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직 남았다고 생각했거든요. 586세대가 학벌에 집착한다는 건 많이 지적됐으니까, 저는 능력주의와 문화 자본의 측면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하긴」의 남성 화자는 문화 자본을 중시하고 자녀를 통해 그것을 계승하길 원하죠. 물론 현실에 소설 속 화자처럼 자녀를 외국 공동체나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문화 자본을 쌓으려 하는 586세대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은 표면적인 학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니까요. 솔직히 지금의 제게 '세대 비판'은 예전만큼 중요한 주제는 아니에요. 586세대를 비판하는 담론이 지속되면서 주류 구성원이 과대표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고요.
「하긴」이 젊은 작가상을 수상할 당시, 담당자가 남자 작가로 착각할 정도였다고요.(웃음)
남성 화자가 주도하는 이야기라 서술의 톤을 어떻게 잡을지가 도전 과제였어요. 표면적으로 화자는 자신을 옹호하고 있지만, 이야기 전체에서 이 사람은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잖아요. 그 두 가지 톤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어요.
「하긴」은 연작 소설로 이어집니다. 「그친구」, 「이중 작가 초롱」이 흥미로웠던 건, 남성의 시점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인물들이 중심에 등장한다는 거예요. 「그친구」는 한때 운동권 조직에 속해 있었지만 주류에서 밀려난 여성들, 「이중 작가 초롱」은 586세대의 아버지를 둔 딸의 이야기죠.
다음 두 편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앞선 소설에서 여성 인물의 비중을 그렇게 줄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른 인물들의 관점도 보여주고 싶은데 한 편에 다 담기가 불가능한 거예요. 다른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삼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소설을 쓸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세 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머릿속에 연작의 구성으로 함께 있었던 거죠.
「그친구」라는 제목이 상징적인데요. 화자 '김'은 아내를 부를 때, 와이프도 아닌 '그친구'라고 부르죠. 실제로는 불평등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데도요.
파트너를 어떻게 부르는지를 보면, 한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죠. 제 주변에도 파트너를 '그친구'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간혹 짝꿍으로 지칭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 호칭이 수평적으로 느껴졌던 순간도 있고 맥락상 정반대일 때도 있어서 인상적이었죠.
동창인 세 여성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관계성도 흥미로웠어요. 특히 아내 '규'와 남편의 불륜 상대가 된 동창 '지경'의 관계는 연대 같기도 하고 빌런들의 연합 같기도 했죠.
절대 연대할 수 없는 두 여성이 연대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런 질문을 떠올렸어요. 아내로서 불륜 상대인 여성을 용서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손을 잡는다면 어떨지 상상했죠. 586세대 남성과 결혼한 '규'와 무리에서 추방당한 '지경', 그리고 귀촌을 택한 '오지'. 세 여성은 다 다른 캐릭터지만, 현실에서 우리 안에 세 사람이 공존하는 경우가 너무 많잖아요. 나이 들어감에 따라 규로 살다가 지경이 되기도 하고, 오지의 입장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세 개인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의 연대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작가님의 소설은 결말이 인상적이에요. 특히,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는 소설이 끝난 뒤 독자의 항의 편지가 등장하죠. 실제 독자 편지인지 아닌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처음 소설을 썼을 때는 들어가지 않은 내용이에요. 다만, 작가의 말에 가상의 독자 편지를 덧붙였죠. 왜냐하면 제가 이 소설을 읽은 독자였다면 반드시 보냈을 편지였거든요. '성 해방'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비판이요. 그런데 이 문제의식을 이미 완성된 소설에 녹이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 편지를 소설의 끝에 포함시켰어요.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는 결말을 오래 고민했고, 가장 많이 고친 소설이기도 해요.
유일하게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들었어요. 실제로 청소년기에 가톨릭 성지 순례를 떠난 적이 있다고요.
맞아요. 구체적인 배경 묘사 정도만 소설에 들어갔지만요. 가톨릭을 비판하는 모티브의 창작물은 정말 많잖아요. 유럽을 배경으로, 가톨릭이 십 대의 성을 억압하는 주제가 반복되죠. 그런데 한국적으로 현지화된 버전은 없지 않나? 그런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분명 동유럽 시골 마을인데 한국인 이모님이 있고 반찬으로 스팸이나 김치가 나오고.(웃음) 그런 느낌을 살려서 써보고 싶었어요.
문학이 더욱 만만해졌으면
「이중 작가 초롱」은 미투 운동 이후 문학장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혔어요. 등단 제도에 대한 비판,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피해자다움을 재현하는 서사 등 현실의 사건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물론 소설을 쓰면서 문단 내의 논쟁을 떠올리기는 했어요. 한 인터뷰에서 "그래서 이중 작가 초롱의 입장이 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가인 저도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고, 소설 역시도 선명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소설을 좀 비겁하게 썼나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궁극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모든 게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는 거였어요. 그 중간 과정을 탐색하면서 쓴 소설이에요.
「여자가 지하철 할 때」는 여성이 지하철을 탈 때 느끼는 위험의 감각을 잘 드러내요. 여성들은 불안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죄책감까지 함께 느끼죠. 어쩌면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인데,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냈어요.
원래 훨씬 이해가 잘되는 평범한 버전이 있었어요. 여성이 느끼는 공포를 묘사하면, 보통 이야기가 스릴러처럼 흘러가요. '스릴러처럼 박진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공포를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까?' 그게 도전 과제였죠. 막상 이야기를 쓸 때는 그렇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여성이라면 지하철을 탈 때 여러 가지 상상을 하잖아요. 누가 다가오면 나는 이쪽으로 도망가야지 거울을 보는 척 해야지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해요. 그래서 형식을 실험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사가 틈이 많고 파편화되어 있어도 여자라면 맥락을 금방 알아챌 이야기들이니까요.
'글쓰기라는 노동이 과연 뭘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들이 있었어요. 「티 나지 않는 밤」에서 병원 안내 데스크 직원으로 일하는 수진은 발표하지 못할 소설들을 혼자 쓰고, 한 편집자는 투고작을 읽고 반려 통지서를 보내는 일을 계속하죠. 가시화되지 않는 노동을 떠올리게 됐어요.
편집자분들과 협업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부수적인 노동이 많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저도 「티 나지 않는 밤」의 편집자 캐릭터를 무척 좋아해요. 소설 속 편집자는 투고작을 일일이 읽고 답장한 시간을 숫자로 남기잖아요. 평소에도 원고를 검토하는 일이나 행사 준비까지 세세한 일들이 노동 시간으로 다 산정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다른 작품에 비해 한 호흡으로 읽히는 단편 소설이에요. '읽기, 쓰기와 삶이 그다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썼다고요.
소설의 첫 장면이 목경이 카페에서 작가 두 사람이 소설에 대해 떠드는 걸 엿듣는 것이잖아요. 실제로 마감을 앞두고 망원의 진부책방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어요.(웃음) 뭘 써야 하지 고민하다가 인물들이 소설 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제가 소설을 다 쓴 뒤에 주제를 압축하는 부분을 맨 앞에 덧붙인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우연히 떠오른 장면에서 시작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때가 많아요.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한 독자의 평에서 출발한 소설인데요. 「이중 작가 초롱」을 발표했을 때, 문단에 대한 이야기니까 일부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이 있었어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소설들이 맥락을 알면 재미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글쓰기와 삶이 아주 붙어 있는 걸 어떻게 소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독자의 평에 답장을 보내듯 소설을 쓰게 됐죠.
이 소설에서도 고모와 두 자매 목경과 무경의 미묘한 관계가 그려지는데요. 「작가의 말」을 보니 이모와 각별한 사이라고요. 글쓰기에도 영향을 줬나요?
맞아요. 얼마나 신경을 썼냐면 소설 속 고모의 운명 때문에 우리 이모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어요.(웃음) 그래서 일부러 '고모'로 바꿔 쓸 정도로 이모들이 제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죠.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쓰셨죠. "나는 글이 '그래도' 친구 같다. (중략) 나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글이, 소설이 이렇게 만만해지면 어떨까 상상한다."(350쪽)
책에도 썼지만 제 글의 뿌리는 '블로그 포스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랬기 때문에, 모두에게 문학이 만만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블로그를 오래 하다 보면 댓글을 꾸준히 달아주는 사람도 생기고 친구가 되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 하면 소규모로 모이는 친구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첫 소설집 안에서도 작가님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실 지 궁금해지는데요.
경장편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어요. 단편 소설은 자유롭게 함축하거나 비약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장편은 좀더 촘촘하고 설명도 필요해서 스타일을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지금은 꼼꼼히 사이를 메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마 단편 소설과는 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장소 협조 : 카페꼼마 연남점)
*이미상 소설가. 2018년 웹진 <비유>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작 「하긴」으로 제10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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