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참새 방앗간이자 고양이 어물전 같은 곳이다. 그런 이들이라면 서점의 서가를 거닐다가 한 권쯤 책을 손에 들고 나오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으리라. 서점의 어떤 코너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적도 있을 테고, 새로운 서점이 생기면 들러볼까 마음먹기도 했을 것이다. 『서점의 시대』는 그런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서점의 문화사를 펼쳐 보이는 책이다. 근대의 산물로서 우리 서점의 시초를 찾는 데서 출발하여 수많은 서점들의 다채로운 시도들을 한데 모은 저작이다. 역사 연구자로서 한때 서점인이기도 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남 순천에서 '골목책방 그냥과보통'을 운영한 이력이 눈에 띕니다. 그 경험이 책을 집필할 때 도움이 되었나요? 여담이지만, 서점인으로서 본인에게 점수를 주신다면 몇 점이나 될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내와 함께 3년 가까이 서점을 운영했는데, 한국 서점의 역사에 관한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 머리말에서 언급한 『고서점의 문화사』 말고는 마땅한 책이 없더라고요. 나라도 한번 써보자 싶은 생각에 집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책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동기 부여를 한 게 서점 운영의 경험이었지요. 책 유통에 관한 경험이 있다 보니 관련 자료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서점인으로서의 저에게 점수를 준다면, 50점 정도일 것 같아요. 경험상 서점인은 책도 좋아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좋아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어서 손님을 하나하나 응대하는 일이 버겁더라고요.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은 공통으로 경험하실 텐데, 어떤 손님들과는 대화하다 보면 한 시간이 지나가버리기도 하거든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참신한 최근 서점들에 주목하거나 독특한 해외 서점 이야기를 담은 책은 여럿 보았지만, 우리 서점의 역사를 다룬 책은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서점의 시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서점의 시대』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약 100년간 우리 서점의 발자취를 살펴본 책입니다. 개화기에는 서점이 새로운 생각과 사상을 소개하는 계몽의 공간이었고,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 시절에는 소위 '삐딱한 사상'을 전파하는 불온한 장소였습니다. 또한 비슷한 취향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살롱의 문화 공간이었고요. 제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서점이 매우 역동적인 장소였다는 사실인데요. 서점의 역사는 지성사와 문화사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서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도 변화무쌍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흐름을 책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서점인들이 있을 텐데요. 책을 쓰면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서점인은 누구였나요?
1920년대 전주에서 민중사서점을 운영한 김운영 씨인데요. 당시 신문 자료를 살펴보면, 김운영 씨는 전주에서 여성 운동을 왕성하게 펼친 활동가였고, 그 와중에 서점을 차렸습니다. 그 이유와 이후의 행보가 궁금해서 기회가 된다면 김운영 씨를 더 연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독서문화사 외에 근대 지역사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1920년대 사회 운동 맥락에서 서점을 개업한 경우를 전주 민중사서점 외에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자료의 부족인데, 다행히 이분 아버지가 전주의 저명한 민족주의 지도자였어요. 본격적으로 조사하면, 뭔가 의미 있는 내용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김운영 씨를 다룬 「서점과 함께한 여성들」 장을 보면서, 정말 자료가 부족했구나 싶은 생각과 정말 이 내용을 쓰고 싶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기록이 단편적이어서 아쉬웠지만, 그래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도 했고요. 이런 데서 출발한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 전작인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을 비롯해 『서점의 시대』를 쓸 때 여성과 독서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려고 노력했어요. 지난 역사에서 남성 지식인들이 지식 권력을 독점했던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저는 역사책을 쓸 때 남성 중심의 서사에 균열을 일으키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여성사를 다루려고 합니다. 주제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지만요. 제가 남성이긴 합니다만, 남성인 저도 남성들의 이야기가 가득 찬 역사책은 재미가 없더라고요.
1961년의 청계천 복개 공사 개통식 사진 한편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헌책방 간판 이름을 호명하는 대목을 보면서 연구자로서의 집요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뜯어보고 엮어 쓰신 책인 듯한데, 발견하고서 가장 기뻤던 자료는 어떤 게 있을까요?
부족한 문헌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사진 자료를 적극적으로 독해하는 방식을 택했는데요. 말씀해주신 사진뿐만 아니라 박문서관(48쪽), 해방공간의 노점책방(63쪽), 한남서림(79쪽), 오사카야고서점(149쪽), 니칸쇼보(152쪽), 마루젠(157쪽), 명동 달러골목의 서점 거리(161쪽) 등을 앵글로 담은 사진에서 어떠한 내용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무척 고심했어요. 사진 속 이미지를 글로 풀면서 마치 새로운 발견을 한 것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대신 편집자 선생님이 책에 나온 서점 사진을 촬영하시기도 했는데, 덕분에 쏘피아서점 개업 당시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책의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졌구나 생각했습니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기쁨과 재미야말로 지난한 역사책 쓰기의 묘미인 것 같아요.
일제 강점기의 서점 이야기가 꽤나 흥미진진했습니다.
억압의 시대에 서점은 많은 이야기들을 품은 공간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 5·18항쟁 때 시민들 중 일부가 녹두서점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도 그런 경우일 텐데요. 당시 몇몇 장소가 항쟁의 거점 공간이었는데, 녹두서점이 그중 하나였던 거죠. 1970년대 후반에 사회과학서점으로 문을 연 녹두서점은 5·18항쟁 때 일종의 상황실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은 녹두서점을 통해 광주 시민들에게, 수화기 너머 전국 각지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항쟁을 주도한 이들은 녹두서점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했고요. 역사의 한순간에 서점이 기여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책 전반에 걸쳐 문을 닫은 서점이 수백 곳쯤 등장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들 서점 가운데 한 곳을 가볼 수 있다면, 어떤 서점에 가보고 싶으신가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서점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연구자로서 가보고 싶은 데는 1980년대 종로의 서점 거리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하루 정도 종로 일대를 누비며 종로서적, 동화서적, 중앙도서전시관, 과학서적센터 등을 둘러보고 싶어요. 서점 거리의 풍경을 문헌 자료로 접한 것과 직접 걸으며 몸으로 경험한 것은 간극이 클 테니까요. 이런 경험을 한다면, 책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리고 제 마음속 서점은 국민학교 고학년 시절에 아지트나 다름없었던 동네 서점입니다. 잠겨 있는 서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서점 주인이 문을 열면서 저에게 "들어와"라고 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매일 서점을 들락날락했던 국민학생을 기억해준 거죠. 사실 20~30대 시절에는 어린 시절의 동네 서점이 그립거나 떠오르지 않았는데, 『서점의 시대』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쉽게도 그 서점은 문을 닫은 지 꽤 오래되었고, 이름도 기억 나지 않아요. 다만 그 동네에는 독립서점 ‘달팽이책방’이 운영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사라졌을지라도 서점에서의 추억이 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풍요로울 것이다. 평대와 서가를 둘러보며 책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을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점의 시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기쁨을 함께할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강성호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했다. 제1공화국(1948-1960) 시기의 정교유착 문제를 다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 지성운동의 역사, 서점의 문화사, 지역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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