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의 하재영 작가가 새로운 에세이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로 돌아왔다. 필경사를 자처한 작가는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을 인터뷰하고 기록했다. 그와 마주앉은 이는 어머니 고선희 씨. 작가는 '엄마에 대한 모름을 앎으로 바꾸기 위해' 듣고 썼다. 그렇게 두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공동 회고록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가 완성됐다.
지난 9일 저녁, 하재영 작가와 독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의 출간을 맞아 마련된 자리로 <시사IN>의 장일호 기자도 함께했다.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와 '이해하고 싶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딸들에게 주요한 참고 문헌이 도착했다"는 말로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를 반갑게 맞았던 장일호 기자. 그와 하재영 작가의 대화는 엄마와 딸과 여성과 쓰기와 책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질문자 : 장일호 기자 / 답변자 : 하재영 작가)
그러나 엄마를 쓰다
책 표지를 보면 두 여성이 마주보고 있는데, 저는 이 표지도 좋았어요. 그리고 목차에서 앨범의 형식으로 여섯 개의 챕터를 나눈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엄마가 구술하시는 전편이 있고, 제가 엄마의 삶에 해석을 덧붙이는 후편이 있는데요. 두 이야기가 교차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일 것 같아요. 그리고 앨범이라고 하면 사진첩을 말하는 건데, 사진은 어떤 한 순간을 고정해 놓는 거잖아요. 제가 이 책에서 쓰고 싶었던 글쓰기가 엄마의 삶의 각각의 순간들을 잘 표착하고 묘사하고 해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사진이라는 것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모든 꼭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한 번씩 나오거든요. 그 사진에서 비롯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들이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앨범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오게 됐어요.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지금의 제목 말고 다른 제목 후보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땠나요?
지금의 제목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책을 쓰면서 많은 여성 작가들의 말과 글을 참고하고 인용했는데요. 그 중에서 에밀리 디킨슨이 편지에 썼던 문장이 되게 마음에 와 닿았어요. 원문은 'I never had a mother'인데 그 문장이 책의 제목이 됐어요. 사실 디킨슨은 평생 엄마한테 헌신하는 딸이었는데 왜 편지에 그런 말을 썼을까, 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죠.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지금 저한테 필요한 문장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문에서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라는 말은 "내 안의 '여성적 힘'을 선포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며, 나를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라고 썼는데요.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라는 문장이 제목이 돼야 했던 이유는, 저는 이 책을 '엄마의 딸로 살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겠다'라는 긴 선언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책을 다르게 정의하면,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여성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분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보면 엄마의 이야기 역시 지금의 제목 안에서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 후보가 하나 더 있었는데요. '그러나 엄마를 쓰다'였어요. 앞의 부제랑 연결해서 읽어야 되는 제목인데, 부제는 '필연적 오독, 불가능한 재현, 예정된 실패'였습니다.
서문의 제목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열거형의 문장은 눈에 바로 띄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을 많이 해야 될 수도 있고, 조금 어렵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직관적인 느낌이 드는 (지금의) 제목으로 정한 게 더 잘한 것 같아요.(웃음)
어머니 고선희 씨의 구술과 하재영 작가의 해석이 이어지는 공동 회고록 형식인데, 이 형식 자체가 되게 재밌었어요.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모녀에 대한 일종의 사회 비평서 같은 논픽션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경험이나 제 경험을 열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해서, 특히 엄마의 경험을 더해서 '사회적 맥락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그리고 '공동의 여성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까지 확장시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교차하는 형식이 필요했고요. 서술적으로는 해석이라는 것이 저한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엄마의 구술을 전편으로 하고 제 해석을 후편으로 하면서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여성의 삶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달랐는지를 탐구하는 것에 목표를 뒀고요. 해석이라는 말도 이 책에서 되게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죠. 정신 의학적인 해석이 있을 수도 있고 비평적인 해석이 있을 수도 있는데, 처음에는 제가 해석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 몰라서 많이 헤맸던 것 같아요.
원고를 쓰다가 엎고 또 쓰고 또 엎었는데, 처음에는 제가 엄마의 삶을 평론가처럼 해석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엄마는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나는 다음 세대 여성으로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고, 엄마의 삶을 해석한다고 했을 때 (그게) 조금 비평적 해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쓰고 엎기를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은, 제가 엄마의 삶에 필경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비평가가 될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엄마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비판, 감정적으로는 애증이나 연민, 이런 것들을 다 제외하고 나서 쓴 것이 지금의 책인 것 같아요.
처음 책의 기획을 어머니한테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의) 이름을 드러내는 건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만 책에 나와 있듯이 (결국에는) "하자, 그게 너한테 필요한 일이라면"이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어머님을 설득하셨나요?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보통 두 부류의 반응이 있어요. 한 부류는 '내 이야기 좀 써봐라, 내가 살아온 이야기로 장편 소설을 쓸 수 있다' 이런 분들이 계시고, 반대로 제가 쓰고 싶다고 이야기해도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책이 되겠냐'고 반응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엄마는 완전히 후자인 사람이었죠. 그런데 사실 설득할 필요는 없었어요. 책에 썼다시피 제가 "저한테 필요한 일이다, 내가 꼭 써야 하는 글 중에 하나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엄마가 "그러면 하자, 너한테 필요한 일이면 하자"라고 하셨는데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자기 의지로 이야기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자식을 위해서, 다른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가 초고를 보고 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책이 단순히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글, 회고하는 글이 아닌 것 같다",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랄까 처음이랄까 그런데, 그런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라고 하시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죠.(웃음) 엄마가 이거 절대로 내지 말라고 하시면 2년 동안 제가 해온 일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인데.(웃음)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엄마가 "나는 네 덕분에 또 조금 성장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저 역시도 마찬가지예요. 엄마와 어떤 공동의 일을 통해서 함께 성장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제일 소중한 경험인 것 같아요.
여성의 경험을 쓰는 일, 언어에 대해서 쓰는 일
책 속에 그런 질문이 있어요. '엄마는 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사실 딸들은 답을 알고 있죠. 서사의 편집권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이 되는 일이라고 하는 게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두 사람이 그런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어떤 두려움이나 어려움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같이 나눈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일단 저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전히 제 글쓰기나 말하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너무 두렵고 불안하거든요. 그리고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 계시는 게 당연한 건데도, 그게 겁이 나요.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제가 되게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 작가님이 계시거든요. 그 분이 신간을 내셨는데 저는 너무 좋게 읽어서 리뷰를 찾아봤어요. 물론 좋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떤 분들이 혹평을 쏟아냈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화를 낼 책이 아닌데,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글이 알고 싶지 않은 것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건드렸기 때문에 화가 난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에 있다면 둘 중에 하나겠죠. 정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잘 썼거나, 그런데 그런 글은 없고,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의 어떤 것도 건드리지 못해서 '괜찮아' 하고 받아들여지는 책이거나. 그래서 책을 내기 전에 계속 '그렇기 때문에 욕먹어도 괜찮아, 누군가가 엄청나게 욕을 한다면 그게 꼭 나쁜 신호는 아니야'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특히 이 책은 저의 내밀한 가정사나 콤플렉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기 때문에, 그리고 페미니즘이라는 주제 자체도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더 두려웠던 것 같아요.
찬성과 반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단순화시켜서 이야기를 하죠.
맞아요. 그래서 그런 두려움이 더 컸어요. 그때마다 엄마가 해주셨던 이야기는 "네가 쓰고 싶은 것을 써라"라는 거였어요. 제가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되게 좋았던 건, 사실은 엄마가 제가 쓰는 글에 대해서 염려를 좀 하셨어요. 왜냐하면 동물권이나 여성에 관한 문제, 말하자면 찬반이 나뉘어서 맞네 틀렸네,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써왔잖아요. 앞으로도 그런 글들을 계속 쓰고 싶어 하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셔서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라고 충고를 하셨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제 작업을 면밀히 살펴보시게 됐잖아요. 그러고 나서 엄마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네가 글쓰기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 하는 걸 알겠고, 네가 쓰는 글을 나도 지지하고 응원한다"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사실 이 책 쓰면서 그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을 두고) 개인의 이야기가 우리한테 왜 중요할까, 라는 질문이 생기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책에 보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라는 문장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책을 읽을 때 독자에게 작은 특권이 있다면, 앞으로 나한테 닥칠 일이 두렵지 않은 거죠. 나보다 먼저 산 사람 혹은 나와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 아는 것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한편으로 '개인의 이야기가 우리한테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실 것 같기는 해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제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이라는 건 '한 여성의 사적인 경험으로 치부되던 것이 사실은 수많은 여성의 공동의 경험이었고, 거기에는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라는 걸 밝혀가는 학문이에요. 물론 이 책이 그냥 저와 엄마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시대를 산 두 세대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이 책이 언어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엄마의 구술에서 어떤 말을 따와서 큰 따옴표를 하고 엄마가 했던 말을 제 방식으로 다시 정의하는 작업의 흔적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엄마가 '평범함'이라고 이야기하면 '엄마가 생각하는 평범함'과 '제가 생각하는 평범함', 혹은 '평범함'이라는 말이 여성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요구들을 함의하고 있는지를 계속 밝혀가는 과정들이 책에 나와 있어요. 그렇게 보면 우리가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표면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회에서 통용되는 방식에 대해서 더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작업이 왜 필요했냐고 질문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지배자의 언어이기도 하니까 '지배자의 언어로 지배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가' 혹은 '가부장의 언어로 가부장의 억압을 깨트릴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가지게 되죠.
결국에는 여성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쓸 때 항상 언어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성의 경험을 쓰는 일은 언어에 대해서 쓰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 '엄마'에 뒤따라오는 언어들은 사랑, 헌신, 희생 같은 것들인데, 저는 가능하면 기존의 그 언어들에 갇히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조금 더 엄마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놀랐던 것은, 책 속에 어머님의 사과가 굉장히 여러 번 나와요. '미안하다'라는 말이. 그래서 제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엄마는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안 했더라고요.(웃음) 하재영 작가가 고선희 선생님에게 질문을 선물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엄마가 인터뷰에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한 횟수는 훨씬 더 많아요. 책에는 오히려 덜어내고 썼어요. 저는 그런 걱정도 했었거든요. 다양한 모녀 관계가 있는데, 엄마한테 간절하게 사과 받고 싶지만 사과 받지 못하는 딸이 이 글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혹시 어떤 면에서는 내가 누군가한테 상처나 박탈감을 주는 일이 아닐까. 물론 지나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글을 쓰다 보면 제가 만나지 않은 모든 독자를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편집자님이 "어머님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어른이라서 저한테도 큰 위로가 됐어요"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 말에 힘을 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 박탈감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될 수도 있다,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책 속에 굉장히 많은 인용이 있습니다. 특히 여성 작가들의 책들을 경유하는데요. '하재영의 독서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특별한 방법이 있지는 않고요. 최근에 제 친구랑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자면, 제 책의 참고 문헌들을 보면서 "너는 이런 책 읽으면 재미있냐"고 질문하더라고요. 저는 그 질문이 되게 신선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재미있는지 재미있지 않은지를 별로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아요. 사실 재밌으려면 책보다 넷플릭스를 보는 게 낫고, 나가서 술 마시는 게 더 재밌죠. 저는 책이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큰 쾌감을 주는 매체라고 생각하기는 해요. 그리고 쾌감이라는 건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또는 인식의 전환이 생기는 순간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책은 저한테 쾌감을 많이 주는 것이죠. 제가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책들은 저한테 그런 쾌감을 줬던 책들이고, 그래서 공유하고 싶었던 책들이에요.
그 중에 하나를 예로 들자면, 어머니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작년에 복간된 『다락방의 미친여자』라는 책이에요. 사실 작년에 본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에 나오는 책들 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책이었던 것 같고요. 설명을 하자면 『다락방의 미친여자』는 여성 문학의 계보를 정리한 책이에요. 물론 서구 여성 문학의 계보이기는 하죠. 제가 왜 이 책에서 쾌감을 느꼈냐 하면, 여성 작가로서 제가 고민하던 것들에 대답을 주는 것 같았거든요.
'2023년에 글을 쓰는 나에게도 글쓰기가 두렵고 검열해야 되는 일이라면, 선배 여성 작가라고는 전무했던 시대에 처음으로 펜을 들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여성들은 얼마나 두렵고 고독했을까' 하고 상상만 하다가 이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된 거죠. 『다락방의 미친여자』를 보면 여성 작가들의 불안뿐만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발견 혹은 발명해낸 '여성적 힘'에 대해서 알게 되고, 저한테도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믿게 되거든요. 저는 그런 깨달음을 얻을 때 책이 주는 괘감이 엄청나게 큰 것 같아요.
"이 글은 엄마에 대한 모름을 앎으로 바꾸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했어요. 책이 나온 지금, 하재영에게 고선희는 이전보다 아는 사람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엄마에 대해서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엄마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있었잖아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엄마랑 소원했던 기간을 지나서 다시 대화를 시도하게 됐는데, 가끔 엄마가 하는 이야기가 되게 낯설게 들리는 경험을 했어요. 분명히 제가 다 알고 있는 가정사인데도. 그래서 왜 그런지 생각을 해보니까 저는 그 사건만 알고 있었지, 그 사건에 대한 엄마의 생각, 감정, 또는 그 사건에 엄마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한 번도 궁금해 한 적이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엄마의 삶에서 어떤 사건의 표면만 알지 내면은 하나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와 집필을 하면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그때 기분이 어땠어?", "그때 어떤 생각을 했어?", "그 일이 지나고 난 뒤에 어떤 변화가 있었어?" 같은 거였어요. 엄마의 내면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 했죠.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객관적이고 공개된 사실이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너머 정보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질문해주지 않으면 끝내 하지 못할 이야기 속에 그 사람의 진실이 더 많이 들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아주 조금 더 엄마를 알게 된 것 같아요.
*하재영 논픽션 작가. 2006년 계간 <아시아>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2018년부터 논픽션을 쓰고 있다. 개인의 미시적 서사가 사회에 대한 증언으로 확장하는 이야기, 공적 주제가 한 사람의 내밀한 삶으로 수렴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타자와 연결되는 글쓰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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