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 저 | 창비
한자(황정은) : 오늘 저희가 같이 읽은 책은 무슨 책이죠?
단호박 : 백온유 작가님의 『경우 없는 세계』라는 장편 소설이었죠. 그냥 님께서 추천을 했었죠?
그냥 : 네, 맞습니다. 『경우 없는 세계』는 화자인 '인수'의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인수는 공장 노동자고요. 혼자 옥탑방에 살고 있죠. 그런데 이 인물은 계속 추위를 느껴요. 한기를 느낀다고 계속 괴로움을 호소하고, 자신의 집에 귀신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귀신들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인수는 어느 날 '이호'라는 청소년과 마주치게 되죠. 처음에는 인수가 우연히 옥상에서 이호를 내려다보게 됩니다. 이호가 하는 행동은 거칠게 요약하면 자해공갈이었어요. 좁은 골목길에서 차가 오는 것을 보고 계산된 행동으로 자신의 몸을 차에 부딪치면서 먼저 화를 내는 거죠. 그렇게 운전자의 혼을 쏙 빼놓은 다음에 현금을 받아서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는 수법으로 금품을 획득하는 걸 인수가 보게 됩니다. 그때 인수는 기시감을 느끼죠.
단호박 : 어떤 기억이 떠오르죠?
그냥 :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한기를 느끼는데, 며칠 후에 다시 이호와 마주칩니다. 이호는 또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어요.
한자(황정은) : 현장을 잡은 거죠.
그냥 : 그렇습니다. 골목에서 맞닥뜨렸어요. 인수가, 자기 자신도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사건에 개입하게 됩니다. 차량 운전자에게 '내가 아는 아이다, 다시는 이런 일 못하도록 내가 단속을 하겠다, 내가 보증하겠으니 그냥 봐 달라'라고 하고 이호를 도와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호와 대화를 하다가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자꾸 깊이 개입하게 되죠. '돈은 있어? 잘 곳은? 밥 먹었어?' 하다가 '우리 집에서 밥이나 먹고 좀 씻고 가라' 하면서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인수가 '나는 너 같은 애들을 잘 알아, 왜냐하면 나도 집을 나와 본 적이 있기 때문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호가 집에 와서 같이 자니까 인수가 드디어 한기에서 벗어납니다. 귀신 소리를 듣지 않고 편안한 잠을 자게 되죠. 소설은 이렇게 현재 인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중간 중간 과거 인수의 이야기를 조명을 합니다. 과거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2년 전쯤인데, 인수가 어떤 연유로 집을 나오게 됐는지부터 들려줘요. 그 뒤로 PC방에서 생활을 하면서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걸 해결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PC방에서 만난 인물이 있죠, 바로 '성연'입니다. 성연은 인수보다 체격도 크고 인상도 강렬하고 어른이나 동년배나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살짝 호전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년배 친구죠. 인수는 돈이 거의 다 떨어져 가니까 성연을 따라서 빌딩 화장실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그러면서 둘이 같이 지내게 됩니다.
단호박 : 그 과정에서 좀 가슴이 아팠던 게, 어쨌든 화장실에서 잔다는 게 굉장히 열악한 환경인데 인수는 그걸 되게 편안하다고 표현을 했던가요?
그냥 : 되게 오랜만에 등을 대고 바닥에 누웠다고 하죠. 그 뒤로도 성연과 인수는 같이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어딜 가든 함께 다닙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무료 급식소에서 한 사람을 만나죠. 그 사람이 바로 '경우'입니다. 경우에게는 일행이 있었죠. 쌍둥이인 중학생 남자아이 둘과 같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경우는 급식소에서도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배식을 받는 한이 있어도 중학생 쌍둥이들을 먼저 챙겨주고, 다른 사람을 위해 배식을 받아다 가져다 주기도 하고, 처음부터 남을 돕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단호박 : 그리고 인수가 그것을 점점 더, 호감이라고 해야 될까요? 다르게 보죠.
한자(황정은) : 의지하죠.
그냥 : 맞습니다.
단호박 : 경우를 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다른 탈가정 청소년과는 다르게 보잖아요. 당연히 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공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공부까지 하다니 대단하다고 하면서 추켜세우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인수가 더더욱 경우를 우상시하는 느낌을 나중에 받게 되잖아요. 결국에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는데. 저는 그게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 말씀하신 것처럼 누가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고, 누구를 선망하고, 닮으려고 하고, 누구는 배제하고, 업신여기고... 그런 아이들 사이의 복잡 미묘한 역학 관계를 이 소설이 정말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 시절의 우리가,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맛본 감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연과 인수는 결국 경우하고 같이 지내게 됩니다. 그곳에서 지낸 시간을 인수는 '우리는 조용한 아이들과 비교적 조용한 동거를 했다'라고 하거든요. 경우는 인수가 이전에 만난 아이들과 달리 옷을 직접 빨래를 해서 입고, 손톱도 주기적으로 깎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노동으로 돈을 벌어서 생활을 해결하고, 그리고 건전하게 쌍둥이 형제들이랑 같이 운동을 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죠.
한자(황정은) : 자기 자신을 돌보면서 남도 돌보는 인물이었던 거죠.
그냥 : 맞습니다. 경우는 이런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아.'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이 말이 가지는 다른 의미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뒤의 내용까지 다 읽으면 여러분이 공감하실 만한 내용이기도 한데,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이 우리가 흔히 '비행'이라고 말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못 됐다거나 나쁘다거나 잘못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은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 상황이라고 해서 다 너 같이 굴지는 않아, 안 그런 사람도 있어'라고 말할 때 그것도 몽둥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에서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죠. 마치 경우처럼요.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모두가 경우처럼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저는 들거든요.
한자(황정은) : 그 두 가지 마음이 인수 안에 있어요. 흔히들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가출팸이잖아요.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서 어떤 공동체를 구성하고 집 안에서 같이 머무는 건데, 그 안에 머물면서 인수가 경우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보면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처럼 여기기도 하고, 유사 어른인 거죠. 그리고 의지하고 의존하고.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뭔가 덜 오염된 듯한 또래의 소년을 목격했을 때 인수가 마음속에 가지는 희망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초반에는 그런 마음들이 많이 등장을 하는데, 뒤로 갈수록 경우를 향한 복잡한 마음들이 조금 더 드러납니다. 의존하고 의지하지만 뭔가 심술도 있는 거예요. '너라고 뭐 달라?'라는 마음도 분명히 있고. 그 가출팸에 속한 청소년들이 그냥 작가님이 말씀하신 비행에 해당되는 어떤 선택을 하잖아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데, 저는 그것은 다 어른들의 탓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단호박 : 저희가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어른이 다 나빠! 아빠 나빠!' 이렇게 되죠.(웃음)
그냥 : 맞아요. 아버지랑 호프집 사장, 진짜 용서할 수 없어!
한자(황정은) : 또 너무나 있을 법하잖아요. 게다가 작가님이 이 소설을 쓰려고 가출팸과 소년원에 머물렀다가 나온 청소년들을 인터뷰 했다는 거 아닙니까? 분명히 그 인터뷰 안에 그들이 겪은 어른 중에 분명히 그런 모습이 있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제가 10대 때 겪은 어떤 어른들의 모습을 이 소설 안에서 발견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들의 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몫은 사실은 어른들의 몫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서 어떤 결정적인 오해를 받을까 봐 대단히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됩니다.
단호박 :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있죠. '경우 없다'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 걸 그냥 대놓고 드러내는 거잖아요.
그냥 : '우리 경우가 없어!' 이런 느낌이기도 하고...
한자(황정은) : 앗, 스포입니까?(웃음)
단호박 : 경우가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아직 말씀을 안 드렸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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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