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한심하고 못난 주정뱅이들의 이야기"
사회적 약자들의 실태를 기록하겠다! 인권위 회보에 실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 뛰어난 인권 감수성의 소설을 쓸 것이다! 뭐 이런 엄청난 포부를 안고 쓴 소설들은 아닙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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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곤

 

 

박상영 소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그러다 그것에 ‘실패’하고, 결국 ‘망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떤 준칙을 들이댈 근거도 없거니와 이들의 사랑은 특히나 더 스펙터클하다. 무일푼인 제 처지에 아랑곳없이 근사한 호텔에서 매일 새로운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게이 남창 ‘제제’, 그리고 그런 제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에게 곁을 내주는 ‘나’(「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끊임없이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받고 싶어하면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이중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연인(「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이툰 부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포인트가 묘하게 게이스럽”다고 느끼지만 “우리 쪽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하거나 “남자와 그러는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나’와 ‘왕샤’(「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감정도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첫 소설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첫번째 책임에도 굉장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그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2016년에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기는 했지만, 책을 내기 전까지는 사실 작가라기보다는 작가 연습생 같은 느낌이었어요. 글 안 쓰는 머글 친구들이 “너 작가 됐다며? 네 책 제목이 뭐야?” 물어보면 별로 할말도 없고. 곧 나온다고 여기저기 공수표만 남발하다가 책을 받아들었을 땐 일단은 너무 좋았고요. 내 손에 꼭 맞는 무선 마이크 하나를 받아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나마)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긴 것 같다는 그런 마음.


‘굉장한 주목’이라는 과찬을 해주셨지만, 실은 일상에 있어서 큰 변화는 없고요. 회사도 매일 나가고 있고, 여전히 돈은 없고, 근데 어쩜 이리도 돈 나갈 데는 많은지…… 다들 맡겨놨나 싶고, 침대에 누우면 잠은 안 오고, 살은 계속 찌고, 끝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살찌는 데 끝이라는 것은 없더라고요. 정말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싶을 때까지 계속 찌고 있고, 바지는 작고, 팬티는 말려 올라가고, 사는 게 뭘까, 사랑은 뭘까, 사탕처럼 달콤하다는데,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데…… 이렇듯 매우 고요하고도 평범한, 격무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행복해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를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을 위해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퀴어 영화를 찍어 칸영화제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가졌으나 다 망해먹은 삼류 영화감독과 콩쿠르 입상에 실패한 후 필라테스 중독에 빠진 현대무용가의 연애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돌보는 인스타 스타와 공황장애를 앓는 군인의 불륜기, 집이 망한 뒤 몸을 팔게 된 남창과 애인이 자살한 뒤로 섹스 중독에 빠진 게이 컨설턴트의 동거담, 영원히 데뷔하지 못하는 아이돌 연습생과 자살 연습생의 연애담 등이 담겨 있는 상큼 발랄한 소설집입니다.


총 352페이지 분량이고요, 요즘 단편집치고는 조금 두꺼운 편입니다.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가성비가 좋다고도 할 수 있겠죠? (정반대일 수도 있지만……)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제가 사인해준 책을 마우스 패드로 이용하고 있더라고요. 책이 두꺼워 손목 터널 증후군이 오기 딱 좋을 거 같은데, 그것을 굳이 말해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하는 마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주류 세계에서 밀려나 있거나, 그곳을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집 전반에 그려지고 있는데요.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회적 약자들의 실태를 기록하겠다! 인권위 회보에 실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 뛰어난 인권 감수성의 소설을 쓸 것이다! 뭐 이런 엄청난 포부를 안고 쓴 소설들은 아닙니다. 주류에서 벗어나 소외된 존재를 조망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자 역할이라는 정언명령을 수행하고자 이런 인물들을 만들어낸 건 더더욱 아니었고요. 그냥 제게 가장 가까운 얘기, 저와 제 주변의 한심하고 못난 주정뱅이들의 이야기를 쓴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 한없이 비주류적인 상황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사실 저는 잘 몰랐어요. 다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답니다.

 

표제작을 비롯한 몇몇 작품에서 ‘영화’라는 소재가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데요. 특히 표제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영화제 뒤풀이 장면은 영화인이 아니고서는 그리기 어렵다고 생각될 만큼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일단은 제가 소설만큼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 애호가랍니다. 때문에 영화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코멘터리 필름 같은 것도 자주 봐요. 박찬욱, 봉준호, 이경미 감독님이 쓴 메이킹북이나 에세이도 되게 재밌게 봤고, 학부 때도 프랑스 문학보다는 프랑스 영화 수업을 훨씬 더 열심히 들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일하는 교수님들이 영화 현장이나 영화제 풍경을 자주 말씀해주시기도 했고요. 대학 다니면서 두어 번 단편영화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이건 비밀인데 대학원 준비할 때도 문창과와 영화과 모두에 원서를 냈었어요. 결국엔 문창과에 가게 되었지만요.


뭐 당연하게도(?) 영화 일을 하는 친구가 몇 있습니다. 걔들이 술 먹고 재미없는 하소연하는 것을 하품하며 열심히 들어줬던 결과, 비교적 어색하지 않게 영화판 얘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속 평론가들이 하는 말은 제가 실제로 들었던 말을 각색한 것이랍니다. 등단하자마자 「중국산 모조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이라는 퀴어 소설을 발표했는데, 그후에 어떤 시상식 자리에서 평론가분이 농담 삼아서 제 소설을 두고 했던 말들이 있었어요. 그게 아무래도 기억에 남아서 소설에 쓰게 되었고요. (앞서 말한) 영화 하는 친구들에게 고증을 맡겼는데, 마치 옆에서 보고 쓴 것처럼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고 평해주었답니다. (웃음) 영화나 문학이나 평론가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비슷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이후로는 친구들이 제게 복수와 원한의 문학가라는 귀엽고 옹졸한 별명을 붙여주었어요. 고맙게도.

 

이기호 작가님이 추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생래적 유머리스트’의 출현”이라는 표현에 많은 분들이 크게 공감하고 있는데요. 작가님 유머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어릴 적부터 남 웃기는 걸 좋아하고 누구보다도 크게 웃어서 자주 혼나던 아이이긴 했습니다만, 제가 대단히 뛰어난 개그 감각을 가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오히려 조심성이 별로 없고, 불필요할 정도로 너무 아무 말이나 막 늘어놓기 때문에 나이가 먹을수록 부끄러운 일들만 늘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순간일 수 있고요.) 유머의 원천을 굳이 찾자면, 술과 친구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제 친구들 중에서 제가 제일 안 웃기거든요. 언제나 개그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요. 아기 새의 자세로, 그들의 유머를 받아먹는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SNS에서 독자분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지난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도 독자분들과의 만남에 적극적이고 활발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가님에게 독자란 어떤 의미인가요?

 

인터넷 서점의 제 책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에 달린 한 독자의 평이 생각납니다.


‘옆에 있어주고 싶은 사람들’  제게 있어서 독자들은 언제나 제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 옆에서 제 얘기를 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써보고 싶은 소재나 분위기의 소설이 있는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존에 썼던 SNS 관종이나 퀴어, 음주와 같은 소재는 아마도 계속해서 등장할 것 같고요. 다만 단기간에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다보니 다소 활력이 떨어지거나 무거워지는 감이 없지 않아서, 본연의 발랄함과 생각 없음을 되찾기 위해 하는 일도 다 때려치우고 술을 마시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새로운 이야기를 수혈하기 위해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상상만 해도 좋네요.


내년에는 ‘천진난잡한’ 짓거리를 일삼는 십대들이 한심한 삼십대로 성장해버린 문제적인 이야기를 장편 분량으로 쓸 예정입니다. 아직은 개요뿐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먼 미래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까요. 실은 제가 애거사 크리스티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그럴듯한 추리물이나 스릴러, 호러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과연…… 사는 게 꿈꾸는 대로 다 이뤄지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럼 지금 제가 이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겠죠? 대충 사는 것도 일단은 재밌어서 다행입니다만……


뭐가 어찌됐건 조만간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항상 감사하고요, 안녕.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박상영 저 | 문학동네
이들이 이토록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는 모두 ‘주류 세계’에서 밀려나 있거나 그곳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좀더 ‘열심히’ 사랑하는 일이 ‘최선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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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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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198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신문방송학을,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다. 스물여섯 살 때 첫 직장에 들어간 이후 잡지사, 광고 대행사, 컨설팅 펌 등 다양한 업계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나들며 7년 동안 일했으나, 단 한 순간도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는 확신을 가진 적은 없다. 노동은 숭고하며 직업은 생계유지 수단이자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학습받고 자랐지만, 자아실현은커녕 회사살이가 개집살이라는 깨달음만을 얻은 후 퇴사를 꿈꿨다. 스무 살 때부터 온갖 나라를 쏘다녔지만,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쓰고, 말하고, 남 웃겨주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다가,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로 데뷔했을 때 더 이상의 출퇴근은 없을 줄 알았으나 생활고는 개선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회사를 다니며 글을 썼다. 현재는 그토록 염원하던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믿음에 대하여』,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썼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2023년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젊은작가상 대상, 허균문학작가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