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 속에 찾은 ‘우리’, 트와이스 ‘I GOT YOU’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올라버린 정상에서 이들이 찾은 다음이 ‘우리’라는 것에 안도한다. 트와이스가 오는 23일 1년여 만에 발표하는 앨범 제목은 다.
글ㆍ사진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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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미니 13집 공식 티저 사진


한 분야의 정상에 올라 본 이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고백이 있다. 전력으로 꼭대기에 오르고 나면, 원하던 곳에 비로소 다다랐다는 기쁨만큼 커다란 크기의 공허함에 맞닥뜨린다는 것.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경험이 아니니만큼 공기 중을 떠도는 허황된 도시 전설 같은 것도 사실이지만, 살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로 모든 게 수렴해 버리고 마는 걸 경험한 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즉,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삶은 인간이 살아가는 틈틈이 잽을 날리다 그들이 원하던 모든 걸 가진 순간 기쁨과 함께 허무를 뿌린다. 이렇게 고약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트와이스를 떠올린다. 2015년 10월 20일 데뷔한 이들은 올해로 데뷔 9년 차 그룹이 되었다. 처음부터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엠넷에서 방영된 서바이벌 프로그램 ‘SIXTEEN’으로 데뷔 전 멤버 하나하나에 대중의 눈도장을 찍은 이들은 데뷔곡 ‘OOH-AHH하게(우아하게)’부터 즉각적으로 사랑 받았다. 전문가와 대중 모두 이견의 여지없이 그 해 최고의 신인 그룹으로 트와이스를 꼽는 가운데, 2016년 ‘CHEER UP’()과 ‘TT’()가 연이어 터졌다. ‘걸그룹 명가 JYP’의 자존심도, 데뷔부터 쭉 호흡을 맞춘 작곡가 블랙아이드필승과 라도에 대한 평가도 덩달아 상승했다. 당시 걸 그룹으로는 드물게 음원과 음반 모두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며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는 음반 본상과 디지털 음원 본상을 3년 연속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본격적으로 진출한 일본 시장에서의 반응도 같은 연차의 그 어떤 그룹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201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트와이스의 시대였다.

뚜렷한 성장이었다. 며칠만 안 봐도 팔다리가 쑥쑥 자라있는 어린아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자란 이들은 2019년 변화를 시도한다. 방향은 노래와 콘셉트가 잡았다. 2019년 발표한 노래 ‘FANCY’는 톡톡 터지는 별사탕만 같던 트와이스가 버터 스카치 캔디처럼 부드럽고 느긋한 외피를 두른 첫 곡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라며 ‘흥칫뿡’ 해버리거나, 제자리에서 눈짓, 손짓, 표정으로 온갖 시그널만 보내던 트와이스가 ‘누가 먼저 좋아하면 어때’라며 선뜻 먼저 손을 건넨 첫 노래였다. 변한 건 사랑에 대한 태도뿐만이 아니었다. 네가 있어 다시 웃을 수 있는 순간(‘Feel Special’),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마음(‘MORE & MORE’, ‘I CAN’T STOP ME’), 사랑 안에서 비로소 찾은 자유(‘SET ME FREE’), 때로는 모든 걸 잊고 즐겁게 취해버리는 이국의 낮과 밤(‘Alcohol-Free’)까지. 상대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살아가며 느끼는 다채롭고 솔직한 고백들이 이어졌다. 스타일이나 소화할 수 있는 장르도 그에 맞춰 늘어났고, 멤버들의 곡 참여도 부쩍 늘었다.


트와이스 13집 Sneak Peek 영상의 한 장면


다만 여기에서 고약한 경우가 하나 더 등장한다. 바로 성숙은 성장보다 대체로 덜 주목받는다는 점이다. 앨범 퀄리티와 퍼포먼스 완성도는 날이 갈수록 ‘성숙’했지만, 트와이스에 대한 주목은 흡사한 콘셉트를 반복하며 화려한 조명 아래 놓여 있던 ‘성장’의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고요했다. 쑥쑥 자라는 팔다리보다 표정이나 주름의 미묘한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상에 오른 순간 극도의 희열과 공허를 동시에 느끼는 인류의 오랜 습속이 형성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천신만고 끝에 오른 마지막 계단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를 꾸준히 말하는 건 하나씩 쌓여가는 성취를 보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즐기는 짜릿함보다 몇 배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앞으로 더 기약 없이 노력해야 한다니.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두렵다.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올라버린 정상에서 이들이 찾은 다음이 ‘우리’라는 것에 안도한다. 트와이스가 오는 23일 1년여 만에 발표하는 앨범 제목은 다. 젊음을 뜻하는 ‘Youth’와 너(YOU)를 조합한 앨범 명의 ‘너’는 아마도 트와이스의 오랜 동반자 팬덤 ‘원스’이자 9년을 동고동락해 온 멤버들일 테다. 앨범 발매 전 공개한 싱글 ‘I GOT YOU’ 뮤직비디오만 봐도 안다. 멤버들은 거센 풍랑 속, 배 안에 마련된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선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멤버들의 얼굴 위로 ‘청춘과 열정 그리고 우정’을 품었다는 앨범 홍보 문구가 스쳐 지나간다. 성장의 손을 잡고 도착한 정상에서 사람으로 성숙을 다져 나간다.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가 있어도 진정한 행복은 사람에서 온다는 인생의 진리가 문득 떠오른다. 이들은 앨범 발매 후 대형 스타디움을 포함한 월드 투어 ‘READY TO BE’를 계속해 이어갈 예정이다. ‘우리’가 함께라면,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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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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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매력

2024.11.30

이런 좋은 글이 있었을 줄이야...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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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워니

2024.02.21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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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