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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잃어버린 편집을 찾아서] 출판산업 지원 예산

김영훈 칼럼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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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인 다수는 책을 읽고 싶어도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책 읽을 물리적·문화적·심리적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2024.03.25)


지금 출판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김영훈 편집자가 말해주는 출판 이야기. 격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pexels


‘직격탄’이 떨어졌다. 사방에서 ‘비명’과 ‘곡소리’가 들린다. ‘총체적 위기’의 시대, ‘종말론’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의 배경 묘사가 아니다. 2024년도 출판산업 지원 예산 삭감 소식을 보도한 기사 속 표현들이다. 여러 기사에서 반복했지만 한 번 더 정리하자. 2024년도 출판산업 지원 예산은 429억 원, 지난해 474억 원 대비 약 45억 원 줄었다. 문화예술 지원 정책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문체부의 기조가 반영된 결과다.

예산 삭감은 아닌 밤중에 찾아왔을까? 기실 뚜렷한 징후는 지난여름 곳곳에서 포착됐다. 마포구의 전횡으로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장시간 운영 파행을 겪었고, ‘경의선 책거리’는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레드로드 발전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문체부는 5월부터 세종도서 사업의 구조조정을 시사했고, 7월엔 박보균 당시 문체부장관이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내역이 누락되었다며 출판협회를 ‘이권 카르텔’로 지목했다. 예산 삭감(적어도 조정)은 명약관화였다.

출판계는 ‘직격탄’의 낙하지점과 시간을 모두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국내 출판계 대표 (사용자) 단체”를 자칭하는 출판협회는 지난해 8월 '책문화살리기 출판문화인 궐기대회'부터 올해 3월 문체부장관이 주최한 출판단체 간담회에 불참하기까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출판 활성화를 위한 예산 확충, 출판권 보장, 저작권법과 도서관법 개선, 출판진흥원 정상화···. 다 필요한 일이고 틀린 말 하나 없는데, 이 주장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지원 예산 문제에 매몰된 지금, 누구에게서도 쥐 잡을 생각이나 능력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판계에 비명과 곡소리가 난무하고 항시적 종말론이 드리운 이유가 어디 예산 때문일까? 물론 불법 복제, 저작권법과 도서관법의 미비 때문만도 아니다(물론 다 중요하다). 예산이 10배 증가하고 모든 법규가 완비된다 한들, 집필-생산-유통에 초점을 맞춘 지원 정책’만’으로는 상황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출판계 만연한, 하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 그건 독서율 저하다. 성인 독서율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단 1g의 희망도 주지 않은 채 일관되게 우하향했다. 2021년 국민 도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47.5%, 2019년 대비 8.2%p 감소했다(종이책으로 한정하면 2019년 52.1%에서 2021년 40.7%로 하락했다). 성인 둘 중 한 명 이상은 1년에 단 1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지원 예산은 필요하고 또한 절실하지만, 공들여 만든 책을 독자가 읽지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독서율 개선은 해결 불가능한 난제가 아니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앞의 조사에서 응답자에게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을 함께 물었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6.5%)”라고 답했다. 그다음으로는 “다른 플랫폼 및 콘텐츠 이용”(26.2%)”이 뒤따랐고, “책 읽기 습관이 들지 않았거나(9.7%)”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4.7%)”라는 응답도 순위권에 들었다. 정리하면 대한민국 성인 다수는 책을 읽고 싶어도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책 읽을 물리적·문화적·심리적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독서와 소득의 상관관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조금주 서초구립반포도서관 관장이 2020년 서울시 공공도서관 운영 현황과 이용 실적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거주지·학력·소득에 따라 도서관 이용 실태는 확연히 달랐다. 특히 가구별 월평균 소득에 따른 도서관 이용 실적의 변화가 눈에 띈다. 가구 소득이 ‘200~400만 원’에서 ‘400~700만 원’으로 증가하는 구간에서 도서 대출 권수가 크게 증가했다. 즉 소득이 낮을 때보다 높을 때 도서관에서 더 많은 책을 빌린다.

주거 환경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김영하 작가는 일찍이 책과 주거 환경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책은 일종의 땅값을 포함한다. 종이책을 산다는 것은 보관할 장소에 대한 대가도 지불해야 한다. 고시원, 원룸, 옥탑방을 전전하면서 어떻게 (종이책을) 집에 놓겠느냐.” 원룸에서 책을 이고 지고 사는 이들은 안다. 몸을 누일 공간을 고스란히 책에 할애하고 나면 때때로 묘한 적개심과 원망이 들기 마련이다. 물론 종이책 보관이 난망한 장소가 전자책 읽기에 좋을 리도 없다.

지원 예산은 분명 (작고) 소중하지만 그것은 당장을 모면할 모르핀일 뿐 해결책이 아니다. ‘출판이 뿌리’고 ‘책이 미래’라면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모하자. 그게 가장 실효적이다. 일단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를 구속하는 포괄임금제부터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철폐하는 게 좋겠다. 독서율을 끌어올리려면 그 편이 제일 현실적이다. 수당도 없이 오후 10시까지 일하다 5평 원룸에 귀가하면 독서는 언감생심, 쇼츠와 릴스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참고자료

문체부(2021),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2022.01.13.

문체부(2023), 2024년도 예산·기금운용계획 개요, 2024.01.29.

조금주(2021), 공공도서관 운영의 기본지표와 이용실적과의 상관관계 분석,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52권 제4호, 79~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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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영훈(출판 편집자)

편집자. 서너 곳의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했다.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한결같이 타이완과 홍콩을 사랑한다. X(트위터였던 것) @bookedito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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