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소나무는 내 운명” - 소나무 작가 배병우의 작업실 공개
배병우, 그의 이름을 들으면, 굵직하고 단단한 소나무 몸체가 떠오른다. 강렬하게 뻗어있는 소나무들은 안개를 화선지 삼아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아련한 안개 속에 거친 표면을 내보이고 있는 소나무의 사진 속에서, 소나무가 거쳐 온 고요한 시간을 헤아리게 된다.
201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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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1984년 낙산사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소나무를 보고는 ‘아, 저것이다. 저게 한국이구나.’ 하고 순간적으로 느꼈다. 고정된 주제로서 무엇을 찍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낙산사 앞에서 그렇게 만난 소나무는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빛으로 그린 그림』 p.59)
배병우, 그의 이름을 들으면, 굵직하고 단단한 소나무 몸체가 떠오른다. 강렬하게 뻗어있는 소나무들은 안개를 화선지 삼아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아련한 안개 속에 거친 표면을 내보이고 있는 소나무의 사진 속에서, 소나무가 거쳐 온 고요한 시간을 헤아리게 된다. 강렬한 흑백톤의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가 첫 단행본 『빛으로 그린 그림』을 출간했다.
이 사진집에는 소나무 사진을 비롯, 프로젝트로 작업한 종묘, 창덕궁, 알람브라 궁전, 타히티를 비롯해 국내외 여행을 다니면서 촬영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내가 그간 해 온 작업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해 나갈지 살피는 계기”라고 배병우 작가는 서문에 밝혔다. “책은 전시와는 달라서 많은 작품을 오래도록 보여 줄 수가 있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배병우 작가에게나 그의 사진을 좋아하는 애호가에게 이 책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책 출간을 기념하여, 파주에 마련된 배병우 작가의 작업실에서 오붓한 만남의 자리가 이루어졌다. 그의 사진 몇 점이 벽에 걸려있는 널찍한 공간에, 독자와 작가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였다. 책에 관해, 사진에 관해 격식 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의 작업실 곳곳을 자유롭게 둘러보았을 뿐 아니라, 배병우 작가가 준비한 고등어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말 자체가 도리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만큼 단출하고, 편안한 자리였다.
배병우 작가는 이날의 만남만큼이나 호탕하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이런 자리를 낯설어하면서도, 독자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유쾌한 대답을 이어나갔다. 한 독자가 열정적인 작업의 원동력을 감탄하자. “청춘은 신체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내가 지금 만 60세인데, 훌륭하게 예상해서(웃음) 90세까지 살 수 있다면, 아직 내 삶이 1/3이나 더 있는 셈이 아닌가.”라며 웃었다. “앞으로 3년치 스케줄이 잡혀있는데, 거기에 맞춰 정신없이 살 거고, 또 이후에 일이 생기면, 또 거기에 맞춰 살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 말인 즉, 그에게 일 자체가 열정의 원동력이 된다는 말.
독자가 최종적으로 보게 되는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소나무가 살아온 시간뿐만이 아니라, 배병우가 사진을 찍은 많은 시간도 품고 있다. 예상하겠지만, 한 장의 사진을 찍는 데에는,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들인다. 배병우 만의 시선, 그만의 작품이 나오는 비결이다.
어떤 날도 똑같은 빛과 날씨는 없다. 한 곳을 찍어도 다음 날이면 다른 빛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각도와 구성도 중요하다.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앞에서 찍고 뒤에서 찍고 옆으로도 찍고 바닥에 누워서도 찍는다. (…) 한 장소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한없이 찍고 있으면 시간에 따라 대상이 부단히 변하는데, 그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본질적인 모습을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래 집중해서 본다. (p.76)
의도한 게 있다면, 에너지다
그렇다면, 어째서 소나무일까? 아마 많은 독자들이 궁금했을 질문, 이 자리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소나무에 관련해서는, 책 속에도 언급이 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해 먹고, 소나무로 만들어진 관 속에 들어가 묻혔으며, 무덤 옆에 소나무를 심지 않았던가. 실로 한국인의 삶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깊게 뿌리내린 나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소나무를 단지 생물학적으로 찍을 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해 소나무에 힘을 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부터 전국의 소나무란 소나무는 다 찍어 보았다. 84년, 85년부터 촬영에 나섰는데 처음 일 년은 10만 킬로미터씩 답사를 했던 것 같다.(p.25)
한 독자가 어떤 마음으로 소나무를 찍느냐고 물었다. 그는 “소나무에게 받은 느낌을 총체적으로 담으려고 하는 것이지, 특별히 어떤 의도를 두고 찍어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84년 소나무를 찍기 시작했을 때, 이걸 세계 최고의 물건으로 만들자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사람들은 엽전만보고 한국적이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소나무에 에너지를 담아서 엽전을 뛰어넘어보자고 했다. 의도한 게 있다면, 바로 에너지다.”
소나무에 담기는 에너지는, 그가 집념으로 마주하는 짧지 않은 시간과 현장의 빛이 혼합되어 이뤄내는 것이 아닐까.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책 제목은 그의 사진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사진은 예술적 감성을 현대의 붓으로 그린 빛그림”이라고 한 그의 말처럼, 그의 사진에서 빛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사진 속에서 빛을 잘 다루는 것이, 사진을 잘 다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작가는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완전히 이해해 빛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로 새벽에 촬영을 나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숲을 향하는 것은, 해뜨기 전 안개와 섞인 광선의 미묘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어서다. 해 뜨기 전이나 해 질 즈음 광선의 섬세하고 미묘한 맛이 좋다. 그래서 늘 동트기 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P.43)” 여기에는, 매일 새벽 세 시면 기상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단 하루도 어김없이, 경매 시간을 놓치면 그날 하루는 허탕을 치고 마니까, 생선을 팔기 위해 일찌감치 새벽 어시장으로 나서셨다.” 그런 기분으로 매일 아침 어김없이 이른 시간에 기상하는 그는, 그런 생활이 없었다면 자신의 사진 1/3은 없었을 것이라고 책 속에서 회고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더라
그는 1981년부터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로 재직하다 올 봄에 휴직했다. 평소 강의하는 일을 싫어한다는(?) 그는 “평소에 한 시간 이상 강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강의에 지각하지 않고, 늘 정시에 시작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강의에 소홀한다는 뜻이 아니라, 작업에 중점을 두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젊을 땐, 학생들이 사진을 가져오면, ‘좋다. 나쁘다. 다시 해’ 하고 말았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좋은 강의를 많이 들어보니,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더라. 이후에는 많이 해주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웃음)”
그는 스스로를 현물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같이 출사를 나가면, 직접 찍어서 보여주는 식이다.” 작업하는 사람의 강의 방식이다. “30년 된 학과인데, 처음 10년 재직할 때는, 아이들과 종일 함께 있었다. 같이 여행가고, 청소하고, 살다시피 생활했다.”
동시에 그는 생존형 작가다. “사진을 찍어야 먹고 산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든 카메라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 내내 후회한다. 이걸 찍어야 하는데, 놓친 거 아냐, 생각이 맴돈다. 처음 가는 곳은 늘 어색한데, 카메라 뒤에 숨으면 신이 난다. 찍는 순간 행복하다.” 심지어 카메라 뒤에 서면 눈이 나쁜데도 멀리 있는 것, 미세한 것이 다 보인단다. 집념이 숲의 또 다른 모습을 열어낸다. 그래서 카메라 바로 뒷자리가 그에게는 낙원이다.
“환갑이라는 말이 싫다. 내가 존경하는 이대원 화백은 60세가 됐을 때, 제일 가까운 사람 스무 명, 서른 명 정도 불러서 파티를 했다. 중국 요리사를 불러서 본인이 직접 대접했다. 환갑잔치보다 이런 게 낫지 않나? 나도 그렇게 60이 되면 그런 파티를 하고 싶다.” 말을 이어가던 배병우 작가, “이제 우리, 그만 먹으러나 갑시다.”고 독자들을 주방으로 이끌었다.
2층에 마련된 주방에서, 달짝지근한 쿠키와 함께 담백한 맛이 일품인 고등어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었다. 이후에는 자유롭게 그의 작업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공간은 컴퓨터와 인쇄기로 구성되어 있는 작업실, 어두운 암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간을 박제해둔 사진들, 추억을 머금고 있을 메모들이 곳곳에 붙어있어, 거닐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예술가적인 어떤 예민함이나 강박적인 흔적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편안하게 구성된 공간이었다. 건실한 생활인이자 작업가의 인상을 받았다.
1984년 낙산사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소나무를 보고는 ‘아, 저것이다. 저게 한국이구나.’ 하고 순간적으로 느꼈다. 고정된 주제로서 무엇을 찍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낙산사 앞에서 그렇게 만난 소나무는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빛으로 그린 그림』 p.59)
이 사진집에는 소나무 사진을 비롯, 프로젝트로 작업한 종묘, 창덕궁, 알람브라 궁전, 타히티를 비롯해 국내외 여행을 다니면서 촬영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내가 그간 해 온 작업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해 나갈지 살피는 계기”라고 배병우 작가는 서문에 밝혔다. “책은 전시와는 달라서 많은 작품을 오래도록 보여 줄 수가 있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배병우 작가에게나 그의 사진을 좋아하는 애호가에게 이 책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책 출간을 기념하여, 파주에 마련된 배병우 작가의 작업실에서 오붓한 만남의 자리가 이루어졌다. 그의 사진 몇 점이 벽에 걸려있는 널찍한 공간에, 독자와 작가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였다. 책에 관해, 사진에 관해 격식 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의 작업실 곳곳을 자유롭게 둘러보았을 뿐 아니라, 배병우 작가가 준비한 고등어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말 자체가 도리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만큼 단출하고, 편안한 자리였다.
배병우 작가는 이날의 만남만큼이나 호탕하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이런 자리를 낯설어하면서도, 독자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유쾌한 대답을 이어나갔다. 한 독자가 열정적인 작업의 원동력을 감탄하자. “청춘은 신체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내가 지금 만 60세인데, 훌륭하게 예상해서(웃음) 90세까지 살 수 있다면, 아직 내 삶이 1/3이나 더 있는 셈이 아닌가.”라며 웃었다. “앞으로 3년치 스케줄이 잡혀있는데, 거기에 맞춰 정신없이 살 거고, 또 이후에 일이 생기면, 또 거기에 맞춰 살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 말인 즉, 그에게 일 자체가 열정의 원동력이 된다는 말.
독자가 최종적으로 보게 되는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소나무가 살아온 시간뿐만이 아니라, 배병우가 사진을 찍은 많은 시간도 품고 있다. 예상하겠지만, 한 장의 사진을 찍는 데에는,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들인다. 배병우 만의 시선, 그만의 작품이 나오는 비결이다.
어떤 날도 똑같은 빛과 날씨는 없다. 한 곳을 찍어도 다음 날이면 다른 빛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각도와 구성도 중요하다.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앞에서 찍고 뒤에서 찍고 옆으로도 찍고 바닥에 누워서도 찍는다. (…) 한 장소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한없이 찍고 있으면 시간에 따라 대상이 부단히 변하는데, 그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본질적인 모습을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래 집중해서 본다. (p.76)
의도한 게 있다면, 에너지다
그렇다면, 어째서 소나무일까? 아마 많은 독자들이 궁금했을 질문, 이 자리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소나무에 관련해서는, 책 속에도 언급이 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해 먹고, 소나무로 만들어진 관 속에 들어가 묻혔으며, 무덤 옆에 소나무를 심지 않았던가. 실로 한국인의 삶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깊게 뿌리내린 나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소나무를 단지 생물학적으로 찍을 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해 소나무에 힘을 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부터 전국의 소나무란 소나무는 다 찍어 보았다. 84년, 85년부터 촬영에 나섰는데 처음 일 년은 10만 킬로미터씩 답사를 했던 것 같다.(p.25)
한 독자가 어떤 마음으로 소나무를 찍느냐고 물었다. 그는 “소나무에게 받은 느낌을 총체적으로 담으려고 하는 것이지, 특별히 어떤 의도를 두고 찍어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84년 소나무를 찍기 시작했을 때, 이걸 세계 최고의 물건으로 만들자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사람들은 엽전만보고 한국적이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소나무에 에너지를 담아서 엽전을 뛰어넘어보자고 했다. 의도한 게 있다면, 바로 에너지다.”
소나무에 담기는 에너지는, 그가 집념으로 마주하는 짧지 않은 시간과 현장의 빛이 혼합되어 이뤄내는 것이 아닐까.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책 제목은 그의 사진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사진은 예술적 감성을 현대의 붓으로 그린 빛그림”이라고 한 그의 말처럼, 그의 사진에서 빛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사진 속에서 빛을 잘 다루는 것이, 사진을 잘 다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작가는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완전히 이해해 빛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로 새벽에 촬영을 나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숲을 향하는 것은, 해뜨기 전 안개와 섞인 광선의 미묘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어서다. 해 뜨기 전이나 해 질 즈음 광선의 섬세하고 미묘한 맛이 좋다. 그래서 늘 동트기 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P.43)” 여기에는, 매일 새벽 세 시면 기상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단 하루도 어김없이, 경매 시간을 놓치면 그날 하루는 허탕을 치고 마니까, 생선을 팔기 위해 일찌감치 새벽 어시장으로 나서셨다.” 그런 기분으로 매일 아침 어김없이 이른 시간에 기상하는 그는, 그런 생활이 없었다면 자신의 사진 1/3은 없었을 것이라고 책 속에서 회고한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더라
그는 1981년부터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로 재직하다 올 봄에 휴직했다. 평소 강의하는 일을 싫어한다는(?) 그는 “평소에 한 시간 이상 강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강의에 지각하지 않고, 늘 정시에 시작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강의에 소홀한다는 뜻이 아니라, 작업에 중점을 두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젊을 땐, 학생들이 사진을 가져오면, ‘좋다. 나쁘다. 다시 해’ 하고 말았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좋은 강의를 많이 들어보니,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더라. 이후에는 많이 해주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웃음)”
그는 스스로를 현물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같이 출사를 나가면, 직접 찍어서 보여주는 식이다.” 작업하는 사람의 강의 방식이다. “30년 된 학과인데, 처음 10년 재직할 때는, 아이들과 종일 함께 있었다. 같이 여행가고, 청소하고, 살다시피 생활했다.”
동시에 그는 생존형 작가다. “사진을 찍어야 먹고 산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든 카메라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 내내 후회한다. 이걸 찍어야 하는데, 놓친 거 아냐, 생각이 맴돈다. 처음 가는 곳은 늘 어색한데, 카메라 뒤에 숨으면 신이 난다. 찍는 순간 행복하다.” 심지어 카메라 뒤에 서면 눈이 나쁜데도 멀리 있는 것, 미세한 것이 다 보인단다. 집념이 숲의 또 다른 모습을 열어낸다. 그래서 카메라 바로 뒷자리가 그에게는 낙원이다.
“환갑이라는 말이 싫다. 내가 존경하는 이대원 화백은 60세가 됐을 때, 제일 가까운 사람 스무 명, 서른 명 정도 불러서 파티를 했다. 중국 요리사를 불러서 본인이 직접 대접했다. 환갑잔치보다 이런 게 낫지 않나? 나도 그렇게 60이 되면 그런 파티를 하고 싶다.” 말을 이어가던 배병우 작가, “이제 우리, 그만 먹으러나 갑시다.”고 독자들을 주방으로 이끌었다.
2층에 마련된 주방에서, 달짝지근한 쿠키와 함께 담백한 맛이 일품인 고등어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었다. 이후에는 자유롭게 그의 작업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공간은 컴퓨터와 인쇄기로 구성되어 있는 작업실, 어두운 암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간을 박제해둔 사진들, 추억을 머금고 있을 메모들이 곳곳에 붙어있어, 거닐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예술가적인 어떤 예민함이나 강박적인 흔적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편안하게 구성된 공간이었다. 건실한 생활인이자 작업가의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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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