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를 구하다①]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만 하게 놔두세요” - 윤구병 선생님
"인류 역사상 가장 건강하고 품성이 좋은 사람을 꼽으라면 아메리카 인디언을 꼽을 수 있어요. 얼굴 흰 사람들이 그들의 세계를 파괴하고...
글ㆍ사진 김수영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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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권하는 건강한 삶 이야기

“인류 역사상 가장 건강하고 품성이 좋은 사람을 꼽으라면 아메리카 인디언을 꼽을 수 있어요. 얼굴 흰 사람들이 그들의 세계를 파괴하고, 제도 교육으로 밀어 넣었죠. 하지만 교육만큼은 실패했어요.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모아놓고 시험을 치르면서, ‘컨닝도 하지 마라. 몰라도 묻지 말라’고 하자 한 소년이 이렇게 말했대요.

‘선생님, 이 시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셨죠? 일생을 좌우하는 시험이라고 하셨죠? 저희는 조상 대대로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답을 찾아내라고 배웠어요. 모르면 묻고, 아는 사람이 가르쳐주며 최선의 답을 찾다 보니 모두 같은 답을 내는 거예요.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면서요? 그럼 그 정답을 모두 알아야 할 것 아녜요? 그래야 함께 살 길을 찾을 것 아녜요?’라고 물었어요. 선생님이 뭐라고 답할 수 있겠어요?

개미나 벌이 경쟁해서 살 수 없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도와가면서 살아야 해요.”


민족의학연구원 이사장, 그리고 농부라는 직함으로 소개되는 윤구병 선생님은 인디언의 기운을 품고 있다. 그의 삶이 자연과 함께한 인디언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변산 공동체 대표이자 보리출판사 대표도 맡고 있다. 대표라는 표현보다 어른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특정 조직이나 단체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자라기 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 길,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살 길을 찾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어른이고 선생님이다.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맞아, 채널예스는 어른들의 말씀을 준비했다. 봄철, 여름철 누구보다 부지런히 지혜롭게 삶을 일궈 자기만의 아름다운 열매를 얻어낸 우리 시대의 어른, 스승을 채널예스가 찾아 나선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이 윤구병 선생님이다.

“나는 이제 변산에서 쫓겨났어요. 제가 젊어 보이지만 43년생이니까, 내년이면 일흔이에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자연사라는 거예요.(웃음) 나이가 들면, 이것저것 보이는 게 많아서. 잔소리가 많아지거든요. 변산에서 산 하나 넘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 그러나 개울물이 맑게 흐르는 곳에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웃음)”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미 넘치시는 윤구병 선생님의 진짜 매력은 호탕한 웃음. 보는 이의 얼굴에서도 기어코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이 건강한 에너지는 땀 흘려 일하고, 얻은 것은 함께 나누는 단순한 삶에서 비롯된 것. 선생님이 누누이 강조하는 땀 흘리는 삶, 자연을 닮은 삶, 나누는 삶의 이야기는 이미 당신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굳은 몸에 불편을 느낀다면, 온갖 상념에 머리가 지끈거린다면, 좋아하는 일 혹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면서도 좀체 기운이 나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이러한 지금의 상태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다시 한번 윤구병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잘살기 위해서 서울로 모여들 때 윤구병 선생님은
‘자기 살 길’을 찾아 유유히 변산으로 내려갔다.

도시에 밀집된 불안과 우울 속에서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싶다고 아웅 거릴 때,
선생님은 매 순간순간 날마다 다른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다른 것은 딱 하나였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곧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갈 힘이 있느냐의 문제다.

(사진: 출판사 제공)


손발 잘 쓰고, 잘 노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변산 공동체


서울대 철학과 졸업,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낸 윤구병 선생님은 돌연 변산으로 내려가 공동체를 꾸렸다. 이유는 명쾌하다. “왜 그랬냐고요? 서울에서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변산에서는 직접 밭에 씨를 뿌리고, 그것을 먹고 산다. 한창 뛰어놓아야 할 아이들을 교실 안에 가둬두는 제도교육 시스템과는 전혀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초등, 중고등학교 과정이 있다. 입 소문이 나서, 학생수가 많이 늘었다. 내년에는 산, 들, 바다 살림을 익힐 수 있는 살림대학을 만들 예정이다.

“변산에서는 국어나 역사는 필수로 가르치고, 나머지는 각자 저마다 좋아하는 것을 배워요. 탈춤,풍물, 검도, 막걸리 제조나 농사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각각 있죠. 그거 아세요? 아이들은 공부만 빼고 뭐든지 하려고 해요. 우리 학교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머리 쓰는 수업시간은 3시간 이하에요. 책 읽는 시간이죠.

똑같은 교과서만 보는 도시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토론을 한다고 칩시다. 토론이 안될 거예요. 도시에서는 가장 많이 기억하고, 가장 먼저 이해하는 아이가 많은 얘기를 하겠죠. 공동체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각자 다르니까, 모두가 다른 얘기를 하게 될 거예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게 좋은 교육이 된다고 생각해요.

손발 잘 놀리고, 잘 노는 아이들로 길러내려고 합니다. 우리 의식주에 관련된 것들은 머리를 굴려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집을 지어도 손발로 하는 거고, 농사는 물론 옷을 해 입는 것도 몸과 손발이 하는 일이죠. 물론 머리를 써서 일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건 열 명중 한두 명이면 되요. 그런데 지금은 머리 쓰는 일만 가르치고 있죠. 의식주와 관련된 생산 분야 현장에서 일을 즐겁게 해내고, 거기에 대한 보수가 합당하게 지불되는 세상이 와야 지속 가능한 미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보다 더 큰 존재가 24시간 일하고 있어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윤구병 선생님 역시 생활 속에서 체득했다. “시골에서 살면 보통 한 마을에 태어나서 장가들고 나이 들어 뒷산에 묻히잖아요. 한 마을이 농촌사람들에게는 우주에요. 같은 마을에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고 돌봐주고 가르쳐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었어요. 수십 명의 선생님인 거죠. 그런 따뜻함. 인간관계들이 있었어요.” 때문에, 그가 변산공동체라는 삶을 꾸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변산에는 그런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손발을 놀려 살겠다고 할 때 사는 길은 열려요. 시골에서는 가능해요. 사람이 하는 일은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김맬 때 김매고, 거둘 때 거두는 일만 하는 거예요. 그것도 힘든 일이지만, 나머지는 해님, 물님, 땅님, 바람님이 해주죠. 이렇게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존재들이 24시간 일을 해서 씨만 하나 잘 심으면, 수백 알, 수천 알로 늘려줘요. 넉넉하죠. 누구든지 밥 때 지나가면, 같이 먹자고 부를 수 있는 게, 이 모든 게 우리 힘만으로 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도시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 길이 없어요. 그런데 돈은 고루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소수의 손에만 돈이 집중 되요.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지면,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어요. 그러니 각박해질 수 밖에 없죠.”

지독히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으면서도 자격지심은커녕 누구보다 넉넉한 품성을 지닌 비결을 묻자 역시 더 큰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꼽았다. “도시에서였다면 그런 고마움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 만약 제게 그런 심성이 있다면, 햇볕이라든지 물이라든지 바람이라든지 땅이라든지 저를 넉넉하게 길러주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윤구병 선생님은 불쑥 창 밖에 나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밖에 나무 보이죠? 저 나무와 나의 관계는 목숨을 주고 받는 사이에요. 목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목숨이라고 하잖아요. 도시 사람들은 어떤가요? 사람과 사람이 목숨을 나누는 게 이로운가요? 해롭죠!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입을 맞출 때도 숨을 안 쉬잖아요. 해로우니까.(웃음)

사람들이 밀집한 도시에서도 풀이 내쉬는 숨, 나무가 내쉬는 숨이 불어와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거죠. 자연을 의식하지 못해도 자연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거예요. 이런 생명체에 대한 감각을 도시에서 배우기가 참 힘들어요.”



“자기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에서 생존력이 생겨요”


윤구병 선생님의 행복한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써요. 이 나이가 되면 사실, 한 순간순간 살아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에요.(웃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나무가 보내준 숨결을 들이쉬고 사니까, 나무야 고맙다. 햇살이 비칠 때 느껴지는 따뜻함이 참 고맙다. 단순해요. 불행에 둔감하고 행복에 민감하면 되요. 기본적으로 사람은 손발을 쓰고, 자기 삶의 시간이 남에게 통제 받지 않을 때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껴요.

40분 수업에 20분 쉬잖아요. 아무리 듣기 싫은 것도 40분 견뎌야 하죠. 이런 식으로 타율적으로 통제되는 시간에 길들어지면, 생존력은 극도로 소모돼요. 좀비나 강시가 돼요. 시골에서는 자연의 시간에 맞추죠.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잠들어요. 여름의 시간, 겨울의 시간이 다르니 저절로 자기 삶의 시간 쓰는 법을 배워요. 이게 행복이죠. 예술가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잖아요. 그건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자부심 때문이거든요. 통제 받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세요.”


최근에는 서울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열어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부모님이 사랑의 이름으로, 선생님이 교육의 이름으로 너희들의 시간을 뺏고 통제하려고 할 때, 거기에 굴하지 말라고 하죠. 무전 여행도 열심히 하고, 가출도 열심히 하고(웃음) 갈 데 없으면 변산으로 와라. 돌아다니면서 몸으로 일하다 보면 세상을 배우게 되거든요. 교과서를 멀리하라고 해요, 그것만 외워버리면 일등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잖아요.” 이것은 직장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들 중에 아프고 몸이 닳은 사람이 많아요. 아픈 건 노인네들이어야 하는데.(웃음) 어떤 일이든 스스로 판단해서 이게 나에게 좋은가, 이웃에게 피해가지 않는가 생각해서 행동하는 게 제대로 사는 일이죠. 상사가 시키는 것도 바른 일이면 하지만, 바르지 않은 일이라면 하지 않도록 해야죠. 근데…… 상사를 안 두는 게 최고야. 위에도 밑에도 두지 않는 게 제일 좋아요.(웃음)”



두 그루의 나무 심는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 보리 출판사의 책

“보리출판사가 88년 설립이 되었으니까, 벌써 20년이에요. 책을 낼 때 정말 이 책이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가치가 있는지 계속 고민하면서 한 권 한 권 만들어왔어요.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 만든 좋은 책이라면, 독자가 그 책에서 좋은 영향을 받아 두 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심성을 갖출 수 있게 해야 해요.”

출판사가 어려워져, 윤구병 선생님은 일주일에 사흘씩 파주에 나와 보리 살림을 맡고 있다. “보리의 책이 팔리지 않으면 변산에서 아이들을 무상으로 교육시킬 길이 없어요. 동네 책방이 사라지면서, 엄마가 아이 손 잡고 좋은 동화책을 찾아 볼 수 있는 기회마저 없어졌어요. 비교해보면 보리 책들이 아주 좋은 책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텐데요.”












#윤구병
4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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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쟁이

2013.11.29

윤구병 선생님의 올챙이 그림책이 집에 있는데 사실 아이들보다 제가 더 좋아합니다.
심심해서 그랬어도 그러고보니 집에 있네요.
제가 바라는 삶과 비슷합니다.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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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007

2013.11.25

남 눈치보지 말고 자신의 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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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suna

2013.11.15

너무나도 재미있게 잘 봤으며, 주위사람들에게 이 기사 내용을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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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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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철학교수를 그만두고 공동체 학교를 꾸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글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이다. 1943년에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공부는 제법 했으나 말썽도 많이 부리는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한다. 위로 형이 여덟 명 있었는데 가장 큰 형의 이름은 일병이고, 아홉 번째 막내로 태어나 구병이 되었다. 소설에서 봤던 철학과 학생이 좋아 보여 얼결에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갔고, 강의는 듣는 둥 마는 둥 바람처럼 떠돌다가 성적표에 뜬 초승달(C)과 반달(D)을 원 없이 보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도서관에 앉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희랍어, 라틴어를 독학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72년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에 들어갔고, 《배움나무》라는 사외보를 만든다. 둘째 누리가 태어나던 1976년에는 「뿌리 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충북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어린이책 기획자로도 활동하였다. 《어린이 마을》, 《달팽이 과학동화》, 《올챙이 그림책》을 기획해서 펴내고, 1988년 보리출판사를 만들어 교육과 어린이 이야기를 담아내는 책을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일러주는 전집형 어린이 백과사전을 만드는가 하면, 번역서가 판치던 유아 그림책에 한국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을 담는 창작그림책 시대를 열었다. 1989년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결성되었을 때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고, 그 뒤로 오랫동안 단독 대표를 맡았다. 1996년부터 철학 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고 싶어 산과 들과 갯벌이 있는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했다. 20여 가구 50여 명이 모여 사는 변산공동체에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젓갈 효소 술 같은 것을 만들어 자급자족하면서 자녀들에게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배우고 가르쳐왔다. '변산교육공동체' 혹은 '변산공동체학교'는 “삶터와 일터가 동떨어지고, 배움터마저 삶터와 일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근대식 제도 교육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라는 비판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스무 해가 넘도록 시간 단위로 타인에게 통제 당하고, 기계적인 시간 계획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스스로 제 앞가림하는 힘’을 기대하는 것은 삶은 밤에 싹 돋기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노릇이라는 그는 텃밭 가꾸기, 천연 염색하기, 발효 식품 만들기, 요리 하기, 나무로 생활용품 만들기, 그릇 빚기 따위를 배우며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어른들과 함께 자유롭게 지내고, 자연 속에서 자기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스스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짓에 경악하며 오늘도 그는 아이들과 배우며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조그마한 내 꿈 하나』, 『실험 학교 이야기』, 『잡초는 없다』,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있음과 없음』, 『모래알의 사랑』 등이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그의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변산공동체와 그 이후의 10여 년에 대한 생생한 삶의 기록으로, 물질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과 국가간 빈부 격차의 확대, 갈등은 심화되고 우리의 삶의 질은 점차 피폐되어 가고 있을 경고한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여러 생명체가 함께 더불어 살 때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또한 함께하는 삶을 일군 윤구병의 공동체 에세이 『흙을 밟으며 살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윤구병의 생태 에세이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일, 놀이, 공부가 하나인 윤구병의 교육 에세이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를 통해 변산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삶과 사상을 담기도 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7년 넘게 공을 들인, 남녘과 북녘 어린이가 함께 보는 『보리 국어사전』을 기획하고 감수했으며, 어린이 그림책 『심심해서 그랬어』『꼬물꼬물 일과 놀이 사전』『당산 할매와 나』『울보 바보 이야기』『모르는 게 더 많아』 들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