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X김금희] 새로운 시작, 함께 완주
배우가 아닌 출판사 무제의 대표로 나선 박정민, 식물 외계인이 나오는 희곡과 소설 그 사이 어딘가에 발 딛고 선 소설가 김금희의 『첫 여름, 완주』 작업 이야기.
글 : 이참슬 사진 : 표기식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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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 생활에 잠시 쉼표를 찍고 출판사 무제의 대표로 나선 박정민과, 오디오북으로 먼저 공개되는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가로 나선 김금희. 익숙한 장에서 잠시 빗겨간 이들의 여정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어디로 향하게 될지 『첫 여름, 완주』의 작업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두 사람이 완주할 이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금희가 박정민에게, 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

 

김금희  대표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박정민  가장 최신 근황으로는 일본 나고야에 다녀왔습니다. 『첫 여름, 완주』 전시회에 놓을 도자기를 만들어 주신 정하현 작가님께서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계시거든요. 도자기 2개를 받아왔는데 이게 정말 무거워요. 소설에서도 삶의 무게로 은유 되는, 열매의 온장고를 표현한 거거든요. 손에 멍까지 들어가며 이걸 나고야부터 한국까지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이고 지고 오는데, 문득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집에 와서 도자기를 꺼냈는데 나무 향이 확 나는 거예요. ‘그래, 내가 이걸 얻으려고 다녀온 거지’ 싶더라고요. 피로가 쌓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놓지 못하는 이유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에요. 『첫 여름, 완주』를 작업하는 동안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인 행복으로 다가오는 거 같아요. 출판사와 책이 더 애틋해졌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김금희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전시 <완주:기록01>에 많은 분이 오셔서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온장고 작품을 보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느끼는 것과 배우로서 영화 촬영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이 다른지 궁금해요.  


박정민  좀 달라요. 영화 감독님의 마음이 혹시 이렇지 않을까 싶었어요. 배우는 촬영장에 왔다 가고, 촬영이 끝나면 다른 작품을 하러 가잖아요. 감독님들의 작업은 촬영이 끝나면 시작이거든요. 길게는 몇 년 동안 한 작품을 만드는데 너무 애틋할 것 같아요. 감독님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 느끼는 감정이 제가 『첫 여름, 완주』를 통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금희  창작물에 완전히 밀착된 기분이 드시는군요.  


박정민  맞아요. 전에는 잘 못 느껴봤던 감정이에요. 배우를 할 때와는 다른 형태의 노력이 들어간 것 같아요.  



김금희 『첫 여름, 완주』의 오디오북을 처음 들려주셨을 때, 대표님이 정말 갈아 넣어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웃음) 


박정민  그럴 필요가 있었죠. (웃음) 저도 문득 ‘이렇게까지 했구나’ 하는 몇 가지 순간들이 있어요. 배우분들이 각각 녹음을 하고 가시면, 대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쪼개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걸 다 제가 할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어요. 오디오북 제작에만 7개월이 넘게 걸렸는데, 엔지니어한테 특히 미안하고 고마워요. 제가 너무 사소한 것까지 부탁해서 원래 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해줬어요. 4월 7일 국립장애인도서관에 파일을 넘겨야 하는데 4월 6일까지 음원 파일을 만졌답니다. 나중에는 주위에서 대표님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웃음)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제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어요.  


김금희  책을 만들면서 우연도 되게 많았고, 인연도 많았던 것 같아요. 저희끼리 우주가 돕는 책이 아닐까,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죠. 무제 출판사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어떻게 출판사를 만들 생각을 했어요? 


박정민  이 질문을 받으면 항상 너무 쑥스러워요. 어찌 보면 굉장히 충동적인 결정이었거든요. 코로나 시기를 지내면서 운영하고 있던 책방을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출판사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김금희  무제라는 이름도 독특해요. 어떻게 지은 거예요? 


박정민  제가 뭔가 의미 있는 단어를 쓰고 이런 것들을 간지러워해요. 최대한 빼고 빼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제목이 없다는 뜻으로 ‘무제’라는 이름부터 무턱대고 지었죠. 사실상 무제 출판사의 방향을 정해준 것은 첫 책 『살리는 일』이었어요. 박소영 작가의 삶을 책으로 만들면서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 인생과 글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이름도 무제니까 이름이 없는 것들, 제목이 없는 것들, 말하자면 소외된 존재들의 스피커가 되어주는 출판사라면 제가 이 일을 하는 명분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첫 책 『살리는 일』이 저에게 되게 소중해요. 무제의 방향성을 정해준 책이니까요.  


김금희  출판사 일은 어때요? 책방과는 많이 다른가요? 


박정민  너무 달라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책 한 권을 만드는 것이 중한 일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못 한 채로 시작한 것 같아요. 『쓸 만한 인간』이라는 책을 내면서 어림짐작으로 한 권의 책을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들고, 엄청난 공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출판사를 차리고 보니 생각보다 더 깊은 일이더라고요. 그걸 책을 만들면서 알아버린 거죠. 그런데 어떡해요. 이미 시작을 한 걸. 제 성격이 좀 그래요. 영화를 찍을 때도 재밌을 것 같아서 일단 계약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어렵다는 걸 알죠. 출판사 일을 해보니 그저 재밌기만 한 일은 아니었어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더라고요. 『살리는 일』 만들 때는 혼도 났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웃음) 당장 서점 계약하는 방법도 몰랐어요. 당시 편집자님께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죠.  


김금희  요즘 저는 취미로 판소리를 배우러 다니는데 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시니까 해방감이 있는가 하면, 저에 대해 설명해 드릴 때는 익숙한 세계가 그립다는 생각도 들어요. 새로운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구나 싶더라고요. 대표님도 2025년은 출판사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투자하시는 거잖아요. 익숙한 현장이 그립지는 않으세요? 


박정민  영화 현장은 늘 그리워요. 현장에 가면 정말 재밌거든요. 그럼에도 1년을 쉬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보통의 직장인처럼 매일 아침 출판사로 출근해서 밤까지 일하고 퇴근하고 있는데, 배우를 할 때와는 다른 능동적인 느낌이 들어요. 아직은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그걸 해나가는 과정이 되게 즐거운 것 같아요.  


김금희  유튜브를 통해 보면 사무실 공간이 되게 넓어요. 저처럼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간에 여백이 있는 게 싫거든요. ‘왜 여백을 낭비하지? 저기 식물 키우면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해요. 제가 식물을 선물해 드린다면 키울 마음이 있나요? 


박정민  너무 있죠. 원래 저는 식물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식물을 잘 가꾸려면 부지런히 챙겨줘야 하는데, 제가 자꾸 죽이니까요. 그런데 『첫 여름, 완주』 작업을 하면서 식물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놀랍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살면서는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식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번에 나고야에 갔더니 도시 중간중간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식물이 엄청 많은 거예요. 그걸 보는데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식물이 이 지구의 주인이고, 우리가 그 위에 콘크리트를 올려 쌓은 거잖아요. 그런데 쉴 곳이 필요하고 아름다워야 하니까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어요. 식물이 조경의 수단이 되어 마음이 아프면서도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식물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정민이 김금희에게, 상상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

 

박정민  무제와 함께 일하실 때 기존 작업과 다른 점이 있으셨나요? 


김금희  많죠. 독자층도 그렇고 홍보하는 매체도 그렇고, 많이 달라지고 확장되는 기분이 들어요. 얼마 전 인천에서 행사를 했는데, 『첫 여름, 완주』를 들고 오신 20대 초반 어린 연령대의 독자분들이 계셨어요. 무제를 통해 이렇게 또 제가 확장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박정민  저는 평소에도 작가님의 문장들, 특히 어떤 상황에서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들을 너무 좋아했어요. ‘듣는 소설’이라는 기획만 있을 때 저의 제안을 받으신 작가님의 생각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혹시 가소롭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김금희  되게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어요. (웃음) 소개해 주신 듣는 소설 시리즈의 취지가 너무 좋았고요. 시각 장애인 분들이 음성 언어에 상당히 기대서 책을 즐기신다는 사실을 저는 잘 몰랐거든요. 이 메일이 저를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떤 판단을 할 때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울 기회다 싶으면 해보는 성격이에요. 외계인 얘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제가 있던 장에서 갑자기 외계인 얘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안팎으로 저를 압박하는 요인이 있잖아요. 하지만 새로운 장에 들어가면 상상의 영역을 좀 더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마 제가 오래 고민하지 않고 하겠다는 답변을 드렸을 거예요.  


박정민  맞아요. 너무 빨리 답변을 주셔서 농담하시는 줄 알았어요. 믿기지 않았죠.  


김금희  되게 재밌겠다, 배울 게 있겠다, 조금 달라지겠다. 세 가지 마음이 들었어요.  


박정민  시간이 지나 작업을 수락해 주신 이유를 여쭤봤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이야기는 어스름하게 미리 생각하고 계셨던 걸까요? 


김금희  제가 어릴 때는 넷플릭스 같은 것이 없으니까 비디오 가게에서 거의 살았거든요.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많아서 언젠가는 소설로 한 번 꼭 써보고 싶었어요. 외계인 얘기도 그렇고요. 제안을 주셨을 때, 그 제안을 준 사람이 마침 배우이고 배우분들이 참여해 오디오북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정민  듣는 소설은 조금 다른 형태의 소설이잖아요. 집필 과정은 어떠셨을지도 궁금해요.  


김금희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이다 보니 앞으로 나올 작품들에 참고가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소설가에게는 이미 체화된 방식과 리듬이 있는데, 이 상태에서 오디오북을 상상하며 음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또 다른 상상을 한 채로 써 나가야 했죠.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인물에 욕심이 났고, 처음 의뢰해 주신 중편 분량보다 2배 넘게 쓰게 되었어요. 이렇게 『첫 여름, 완주』가 대작이 되었습니다.  



박정민  『첫 여름, 완주』의 완주 마을은 허구의 공간인데,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만드신 이유가 있을까요? 


김금희  처음 시놉시스를 드릴 때부터 『첫 여름, 완주』라는 제목이 설정되어 있었어요. 한 철 한 철 각자의 위기를 넘어가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넘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인 거죠. 그래서 필요한 지형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적합한 지형을 찾다 보니 차라리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상상력을 펼치기에 더욱 좋을 것 같아서 지명이기도 하고 소설의 키워드이기도 한 완주라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박정민  완주 마을 안팎에 있는 인물 중 작가님께서 가장 마음을 쓰신 인물은 누구인가요? 


김금희  아무래도 열매죠. 하지만 작가도 소설을 쓸 때 어떤 인물에게 마음을 기대서 가거든요. 위안을 맡는 인물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건 정애라였어요. 정애라를 그릴 때 기대서 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캐릭터보다 뭔가를 많이 물어보고 싶고, 언니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박정민  제가 처음 원고를 읽고 작가님께 어저귀라는 존재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잖아요. 그때 답으로 보내주신 메일이 참 좋았어요.  


김금희  거창한 이야기라 조금 주저되네요. (웃음) 저는 인간 문명이 근원적으로 허술하고 불안하다고 느껴요. 우리가 하는 것들이 본성이나 자연적인 질서와 어긋나는 형태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가운데 원래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감각을 잃지 않고 간직한 채 생을 계속하고 있는, 마치 꽃이 피고 지듯이 계속 반복하는 인물이 우리 인간 중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으로 탄생한 인물이 어저귀예요. 어저귀는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사람이죠.  


박정민  그 설명을 듣고 저도 식물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언제나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심상치가 않다. 식물이라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개념과 완전히 바뀐 계기가 어저귀라는 인물이었거든요. 『첫 여름, 완주』를 읽으신 독자분들께서도 저처럼 감각이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자연의 질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기고요.  


김금희  대표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궁금한데요. 


박정민  항상 바뀌지만, 결국에는 오디오북을 만들면서 가장 오랫동안 작업을 한 구간인 것 같아요. 숲속에서 열매와 어저귀가 구덩이를 파고 숲의 기운을 느끼는 장면인데, “친교적 조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있는 것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이 장면에서 나오죠. 들을 때마다 항상 좋은 것 같아요.  

 



함께, 완주

 

박정민  제가 작가님께 오디오북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면서 무슨 약속을 했나 메일을 다시 보니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겠다고 했더라고요.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정말 한 분 한 분 드래곤볼 모으듯이 주변 배우분들에게 연락을 드렸죠. 고민시, 김도훈, 염정아, 최양락, 김의성, 배성우, 류현경, 임성재, 김준한, 박준면… 선후배 동료 분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캐스팅이 될 때마다 작가님께 신나서 연락을 드렸는데,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김금희  기대가 막 차오르면서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판이 커지겠구나. (웃음) 제 작품이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오디오북이 너무 훌륭해서 다 듣고 나면 자리를 박차고 어딘가 달려 나가고 싶은 벅찬 감동이 일어요. 배우분들의 연기, 쓰인 음악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 느껴져요. 사실 이 작품에 나오는 손열매의 고향을 정할 때 지방이라는 것은 상정해 뒀지만, 어떤 지역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대표님의 출신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었거든요. 그래서 충청도로 설정했는데, 더 자세히 알고 보니 사셨던 건 아니더라고요.  


박정민  저는 충청도라서 너무 좋았어요. 자식들이 부모님의 고향 정서를 좀 따라가잖아요. 저희 어머니, 친척들 모두 충청도 사람이니 살지는 않았지만 정겨운 느낌이 있어요. 충청도 사투리도 조금 할 줄 알고요. 할아버지 역에 최양락 선배님을 캐스팅한 이유도 그 정서와 뉘앙스를 정확하게 살리는 분이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다른 분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라 전혀 친분이 없음에도 주변 분들을 물어물어 연락처를 수소문했죠. 녹음도 가장 먼저 하셨어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었죠. 


김금희  배우분 섭외 중 가장 놀랐던 게 최양락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께서 연기하신 할아버지 역할은 이 소설을 완전히 포근하게 감싸는 거대한 나무 같은 존재잖아요. 할아버지가 나올 때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지더라고요. 오디오북을 들을 때는 제 소설이라는 느낌이 덜하거든요. 이렇게 완벽한 오디오북을 만들어내시고도 아쉬운 부분이 있나요? 


박정민  공부가 더 되어있었더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오디오북이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소리로만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공간들이 너무 많잖아요. 우주도 갈 수 있고요. 소리의 힘, 무한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첫 여름, 완주』가 좋은 시작점이 되어서 다음에는 어떤 시도를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돼요.  


김금희  얼마 전 OST 뮤직비디오도 나왔어요. 윤마치의 ‘초록’이라는 곡이에요.  


박정민  사실 수지타산을 생각해 본다면 OST 뮤직비디오를 만들 필요는 없죠. 그런데 저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하고 있더라고요. 이 작업도 주변의 도움이 없었으면 만들기 어려웠을 거예요. 너무 멋진 뮤직비디오가 나왔고, 결국 해놓고 나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금희  되게 인생을 잘 사신 것 같아요. 


박정민  그런가 봐요. 그래서 이제 갚아야죠. (웃음) 듣는 소설을 처음 구상할 때는 10권 정도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뮤지컬 같은 방식도 좋고, 초단편집도 재밌을 것 같아요. 우리 회사가 조금 더 어엿해진다면 시도할 게 정말 많겠다는 수많은 상상을 해요. 앞으로 듣는 소설 프로젝트는 계속될 텐데, 첫 번째 작가로서 해주실 말씀이 있나요? 


김금희  간접 대화문을 되도록 사용하지 마시오. 


박정민  굉장히 직접적이고 유용한 조언이네요. (웃음) 『첫 여름, 완주』를 통해 저는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전 ‘완주’라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는 편이었는데, 이 책을 작업하면서 완주라는 것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뭔가 가로막고 있더라도 이겨내고 넘어갔을 때, 설사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결국 다다른 다음에 얻는 마음은 조금 다르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훈을 정했습니다. ‘완주’.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끝까지 한다. (웃음) 작가님 작업 소감도 들려주세요.  


김금희  저희 모두 각자 개개인은 물론이고 공동체적으로 큰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달리기를 하듯이 노력하고 완주해 나가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우연찮게 그 시간을 우리는 함께 보냈고, 이제 여름이 지나면 어느 한 길목을 돌게 되잖아요. 그런 시기에 각자에게 있었던 하루하루를 돌아보고, 바야흐로 여름을 맞아 생장할 것이라는 에너지를 주는 소설이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여름바람처럼 선선하고 마음 편한, 청량한 소설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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